지난 12월 22일 있었던 검열반대 문화제
'전자 민주주의'라는 말은 우리를 속인다. 도대체가 민주주의가 기술에 의해 도래한다는 설정 자체가 어느 공상과학소설보다도 공상적이다. '전자 민주주의'라는 말은 때때로 현실 민주주의의 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구실로 호출된다는 점에서 공상적이다. 아니, 공상과학소설이라 불리우는 SF는 체제의 지배와 헛된 인간의 욕심으로 자멸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현실적이다. 현실로 말하자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백혈병 치료약 글리벡이 발명되었어도 독점 기업 노바티스의 소유욕과 지배로 인하여 멀쩡히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처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전자 민주주의라는 말에 대한 기대를 버릴 수가 없다. 그것은 기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역사,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즉 이 믿음은 '전자'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자 '민주주의'에 대한 것인 게다.
2001년에는 어느 해보다도 인류의 위대한 전자 미디어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노골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신자유주의적 정권은 김우중을 잡기 보다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을 먼저 잡기로 결정하고 맨몸으로 농성 중이던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을 살인적으로 두들겨 팼다. 그러나 이 사건은, 주류 언론 어느 누구도 취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되었다. 노동자들 스스로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취재하고 인터넷을 통해 배포했기 때문이다. 피가 튀는 그 동영상은 이 사건을 전국에, 전세계에 생생하게 고발했다. 1990년대 중반에 사파티스타 투쟁이 인터넷으로 번지고, 1997년 총파업 투쟁이 인터넷으로 밀려들었던 것처럼, 인터넷은 여전히 민중의 무기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1년에는 드디어 인터넷을 이대로 두지 않기로 결심한 국가권력과 자본이 두 팔을 걷어붙인 한 해이기도 했다. 경찰이 노동자들의 인터넷 방송에 대응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것은 차라리 소박한 코미디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총공세는 가히 위력적이었다. 어느새 인터넷은 음란, 범죄의 온상으로 둔갑했다. 민주주의의 씨앗으로 칭송받던 익명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불온, 유해, 명예훼손, 저작권 등 다양한 위축적 기제들이 본격적으로 동원되기 시작했던 한해였다. 특히 신자유주의와 결탁한 신보수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청소년 보호'가 미디어 통제의 본격적인 명분으로 등장하였다. 갈수록 학교와 떨어지고 시장으로 내몰려 성과 노동 관계에서 착취받는 청소년들에 대하여 신보수주의가 질서회복과 통제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바람직한 성관념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위험한 성관계를 갖고 미혼모로, 낙태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에게 "그저 애들은 그런거 - 누드나 성관계하는 것을 보아서는 안되며 동성애에 대해 알면 안된다"는 무능한 호령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을 진정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공공영역은 갈수록 쇠락하고 있다. 즉 지금 '청소년 보호'의 명분은 오로지 미디어를 통제하기 위한 용도로 남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터넷 때문에 아이들이 유해한 내용에 노출되고 원조 교제를 하고 자살하고 살인한다고 악을 쓴다. 여기서 청소년 보호의 명분과 기능을 모두 갖춘 인터넷내용등급제는 그들이 고안해낸 최고의 발명품이다. 인터넷내용등급제는 신종 검열이자 기술 검열이다. 그러나 그들은 왜 이 시대의 청소년들이 원조 교제를 하고 자살하고 살인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결코 던지지 않는다. 청소년의 원조교제와 자살과 살인을 막기 위한 진정한 해결책에 대하여, 그들은 관심이 없다. 오로지 인터넷을 차단하고 통제하는 명분으로 동원하고 있을 뿐.
인터넷에서 아래로부터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렇게 다양한 명분으로 위축되고 있는 반면, 상품의 영역은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인터넷의 정보는 '그냥 정보'와 고급의 상업 정보로 계층화하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갈수록 확산될 것이다. 또한 부가가치 디지털상품으로 부상한 개인정보가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광범위하게 수집되고 통합되면서 개인들의 커뮤니케이션과 활동은 세밀하게 통제·제어되고 감시와 통제 권력이 증대되고 있다. 지적재산권은 이용자들이 공정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이용하는 것(fair use)에도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자본의 이해에 따라 강화되고 있으며 어느 무엇 하나도 이제 함부로 나눌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뉴라운드의 출범과 더불어 TRIPs 협정의 전세계적 관철로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이런 경향 속에서 본격화한 것이, 이를테면 실명화의 흐름이다. 실명화는 인터넷의 익명이 범죄와 무책임을 부추긴다는 담론의 유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일탈자이고 범죄자이므로 '그 어느땐가를 대비하여' 모두가 실명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주장이다. 실명화로 청소년 범죄가 줄고 온갖 야만적인 인터넷 범죄가 사라질까? 무엇보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투명해질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인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익명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은 단지 담론적 수준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인터넷의 '주류적' 기술의 실물적인 흐름이 뒷받침되면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먼저 정부나 언론의 홈페이지, 그리고 대형 상업적 서비스 등 인터넷의 '주류'가 스스로 '실명화' 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대한 수많은 수입 모델이 줄줄이 실패하는 가운데 개인정보의 수집 및 판매와 마케팅화가 몇 안되는 유력한 사업 모델로 부각되면서 인터넷 기업들은 기를 쓰고 실명 회원 정보를 수집했다. 물론 온 국민에게 고유한 주민등록번호를 부과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한 실명 정보의 수집이 매우 용이하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에게 인터넷은 특별히 위험할 정도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적어도 숨어서 완전 범죄를 꿈꾸는 일이 생각만큼은 간단치 않다는 사실 말이다. 서버를 운영해본 사람이라면 인터넷은 애초에 너무나도 투명하고 추적이 용이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별히 설정을 변경하지 않는 이상 인터넷의 모든 행위는 아이피 주소로 남는다. 아이피 주소를 알면 누구라도 그것이 '동대문구에 있는 인터넷 천국이라는 PC방'에서 올라왔다는 사실을 추적할 수 있다. 경찰은 여기서 더 나아가 지금 그 글을 올린 사람이 PC방의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는지도 알 수 있다 - 지난해부터 경찰은 각 PC방의 아이피 주소와 맥 주소를 관할 파출소에 등록하게 했었기 때문이다. 익명에 대한 조장된 두려움은 수사기관의 이메일 감청이 남발되고 있고 프라이버시 침해가 위험수위에 올랐다는 국회의 지적도 압도해 버렸다. '팩트'는 왜곡되었고 익명의 위험은 과대포장되었다.
무엇보다 이제 주류의 공간에서 인터넷은 쌍뱡향적 공간이라기 보다는 일방향적인 정보 제공과 출판의 공간으로, 과거의 관성으로 회귀하는 것 같다. 이제 인터넷의 쌍뱡향성은 결국 그들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간당간당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들은 '통신질서확립법'이니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법'이니 '저작권법'이니 하는 그들만의 법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인터넷을 점유하려는 민중의 끊임없는 노력에 비즈니스모델 특허를 적용하고 소리바다를 불법화하면서 맞서고 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민중이 먼저 쟁취한 아래로부터의 커뮤니케이션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고 선포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민주주의처럼, 전자 민주주의도 기술이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눈물과 땀과 투쟁으로 오는 것이다. 2002년에는 인터넷에서 우리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그리고 자유롭게 읽고 공유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 보다 본격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누가 무엇 때문에 그것을 위협하고 있는지를 보다 분명히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정보통신 인프라와 관련 정책들이 그 계급성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싸움은 매우 질기고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싸움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인터넷내용등급제 반대로부터 불붙은 남한 사회 인터넷 표현의 자유 운동은 문제 법안이 처음 공개된 2000년 7월부터 1년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쉬지 않는 불길처럼 타올랐다. 기술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위험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제기하면서 정부가 처음 법안에서 후퇴하도록 만들었고 네티즌과 사회단체들이 온라인 시위, 사이트 파업, 릴레이 단식 농성을 비롯한 여러 공동 행동에 동참하면서 이 문제를 대중적인 논의 주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막연한 '청소년 보호' 논리의 포섭력은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체제 속에서 생각 이외로 강고할 것이다. 계속되는 항의와 농성에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사회운동진영 일부는 '청소년 보호' 논리를 정면돌파하는 데 대하여 부담감과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상정한 '표현의 자유'의 개념이 막연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마치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가 대치하고 있는 것 같은 구도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 보호는 정책적인 청소년 보호와는 무관한 미디어 통제의 레토릭에 지나지 아니며,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장하는 자유 또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는 평등한 사회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2002년에는 지금까지의 왜곡된 대치 구도에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풍부한 담론과 대응 논리들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며, 대응틀 또한 인터넷내용등급제를 반대하는 여러 사회단체들의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더욱 강고해져야 할 것이다.
한편 인터넷으로 가속화된 개인정보 유출과 스팸 메일 공세로 우리 사회에서 자기정보에 대한 권리의식이 미약하게나마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감시의 본질은 권력의 불평등이기 때문에 반감시 운동은 감시와 피감시자 사이의 권력 관계에 대한 폭로와 전복에서 그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 남한 사회에서 프라이버시권을 가장 위협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국가 권력이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대부분의 문제들은 "모든 국민은 17살 때 자신에 대한 개인 정보에 대한 권리를 국가에 위탁하고 불문한다"는 설정 - 즉 지문날인과 주민등록제도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이 제도들에 대한 반대 운동은 1996년 전자주민카드 반대운동과 1999년 지문날인 거부운동으로 시작되어 지난해 [지문날인 반대연대]가 결성되고 경찰청에서 보관 중인 십지지문 원지에 대한 반환 및 폐기 청구 활동을 하면서 다시한번 활발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2개의 선거가 있는 2002년에는 지문날인을 거부하여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지 못한 국민들의 참정권이 어떻게 보장될 것이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한편 '범죄와 사고를 예방한다'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거리와 작업장에서 CCTV 등 감시 기계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특히 지난 해에는 대용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작업장에서의 감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작업장 감시의 문제는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직접 연관되는 문제이자 자본의 생산 전략과 노동과정 통제 전략과도 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2002년에는 작업장 등 감시가 작동하는 공간에서 표면적인 명분을 넘어 그 통제의 본질을 폭로하고 시민과 노동자들이 자기 통제권을 회복하기 위한 싸움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01년 소리바다 논쟁에서 접할 수 있었던 지적재산권의 강화 경향은 매우 우려스러운 흐름이다. 지식 공유의 가치와 권리를 압도하는 재산권의 논리가 확산되고 있으며 이제 이것은 국제적인 수준에서 형성되는 법과 제도로 인하여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초국적 자본은 독점적 지위로 보장받은 강력한 영향력을 유감없이 휘두르며 시장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어가고 있다. 과거 공기업이었던 한국통신은 초·중·고등학교 인터넷선 제공의 대가로 청소년들의 개인정보를 요구해 물의를 빚더니 마이크로소프트와 업무상 제휴 관계를 맺어 인프라의 공공성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성의 확보이다. '공정하게 이용할 권리'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할 때이다.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에 맞서 공공성을 확보해야 하는 사회운동 전반의 과제가 정보운동에서도 역시 피해갈 수 없는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