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2002년 유럽 이념지형의 풍향계

프랑스/손영우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원
지난 5일, 프랑스 대통령 선거는 '16명 후보 출마'라는 새로운 기록(74년, 12명)을 세우며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여성후보 4명을 비롯, 좌우 각각 8명이라는 많은 후보의 출마에도 불구하고, 1차 투표(4월 21일)를 앞두고 있는 선거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7년 임기에서 5년으로 바뀐 후 처음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1차 투표의 결과가 리오넬 조스팽과 자크 시라크로 모아질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하는 후보가 없을 경우 1, 2위 후보만으로 재투표를 치르는 '결선투표제'라는 선거방식 덕분에 보통 1차 투표는 서로의 이념적 차이를 분명히 하며 좌우 각각 내부의 대표를 선출하는 의례로, 그리고 2차는 좌우간의 경쟁 속에 대통령을 선출하는 투표로 자리잡아 왔다.

많은 1차 후보 출마로 결선투표 실시가 기정사실화된 이번 대선에서는 2차 선거 준비가 벌써 시작됐다. 몇달 전 시라크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조스팽 후보를 3∼5% 앞서고 있었으나 지난 2월, 파리시장 재임시 공공주택 사업 시행과정에서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시라크 후보의 스캔들이 불거져 나오고 조스팽이 발빠르게 출마선언을 하자 그 누구도 결과를 예견할 수 없는 박빙의 상황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14명의 후보가 들러리인 것은 아니다. 주목을 받고 있는 후보는 지지율 10%를 넘나드는 세부류다. 첫째로,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코르시카 섬에 대한 특별지위 부여에 반대하며 '하나의 프랑스'라는 슬로건으로 들고나온 슈벤느망 후보는 14% 지지율을 얻으며 코르시카 섬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둘째는 극우파의 후보들로, 인종차별로 유명한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 팽은 80년대초 폐지된 '사형제 부활'과 '프랑화로의 복귀' 주장으로 화제가 됐고, '프랑스 질서의 재확립을 위하여'라는 기치로 국민전선에서 탈퇴한 메그레 후보는 실업의 발생 원인을 외국인들의 유입으로 규정하고, "프랑스의 경제를 위해서 외국인과 이민자들보다 프랑스인에게 일자리, 주택, 복지 분야에 혜택을 제공해야 하고, 안전을 위해 군사와 경찰의 수를 증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들 후보는 지난달 27일 낭테르 시의회 의원 8명이 살해되고, 20여명이 부상당한 이민자 총기 난사사건 발생 후에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1차 선거에서 돌풍을 예고하는 스타는 단연 노동자투쟁당의 라귀에 후보다.

'해고금지'와 '은행과 기업의 비밀공개'를 주요 강령으로 내세운 그녀는 공기업인 프랑스텔레콤, 에어프랑스에 이어 프랑스전력(EDF)에 대해서도 민간자본의 참여를 허용하려는 조스팽과 시라크의 정책에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시라크와 조스팽의 정책이 엇비슷하다고 못마땅해하지만, 그렇다고 공산당 후보인 휘에게 투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유권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렉스프렉스>지에 따르면, 열정적인 극좌 트로츠키주의자가 지지자의 대부분인 또 다른 좌파후보 브장스노와는 달리, 그녀의 지지자들은 43%의 사회당, 14%의 녹색당, 11%의 공산당, 8%의 공화당 지지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지지층은 결선투표를 준비하는 조스팽으로 하여금 '결선투표시 선거거부' 가능성을 제기하는 라귀에의 주장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정책적으로 주목할 점은 사회당의 세금감면 공약이다. 기업의 활성화, 만성적인 실업해결을 위한 총체적인 경제계획 중의 하나인 1백80억 유로 규모의 세금 감축계획은 사회당에서 오래전부터 준비한 야심찬 기획이다.

사회당은 먼저 '수입에 비례하여' 전체 주민세의 50% 감축, 또한 직접세인 소득세 인하로 납세자에게 이익을 제공하고, 이를 은행이자, 토지세 등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로 충당하고자 한다. 또한 기업에 70억 유로의 세금 감면을 통해 경제활성책을 제공하여 고용문제의 탈출구를 찾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이 선거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둘 것인가와 경제성장과 소득 재분배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한 사회당의 기획이 유효할 것인가는 흥미롭게 두고 볼 일이다.

5월 5일 결선투표를 앞두고 있는 이번 프랑스 대통령 선거는 단지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닌 유럽 전체의 태풍이다. 이탈리아, 덴마크, 노르웨이로부터 잇달아 불어닥친 유럽의 우경화 바람이, 오는 6월 프랑스 총선, 9월 독일총선을 앞두고 어디로 향할 지를 가늠할 수 있는 유럽 이념지형의 풍향계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83호] 4.15 ~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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