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얼굴]이주노동자 '준'을 만나다


평범한 청년
호텔 경영이 꿈인 24살의 청년이 있다. 락음악을 좋아하고 유난히 '사람 사는 모습'이 궁금해 여행을 즐기며, 어렸을 적부터 꿈꾸어 왔던 호텔 메니지먼트가 되기 위해 대학생이 된 인도네시아 청년.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경찰이라 네식구 생활하기에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한국에서 '준'이라 불리우는 불법체류 이주 노동자일 뿐이다.

"남산에 가고 싶어요." 처음 보기에도 앳된 준은 노랗게 물들인 머리 아래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사진 찍어도 돼요? '찰칵'하는거요." 손짓발짓 해가며 사진찍는 것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 "대신 얼굴 잘 나오면 안돼요." 이주노동자로서 자신을 공개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과 결단이 앞서야 하는 문제였다.

'불법체류자'가 된 사연
대학 1학년생인 인도네시아 청년을 한국의 이주노동자 '준'으로 만든 것은 97년 인도네시아에 들이닥친 IMF때문이었다. "대학 계속 다니고..싶었어요...그런데 돈..돈이 없어요...그래서 한국에 왔어요" 한국에 온지 3년이 됐지만 한국어는 굉장히 서툴다. 누가 한국어를 가르쳐주지도, 배울 기회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네 친구가 한국에 갔다왔는데, 일도 많고 돈도 많이 번다고 해서 왔어요." 그의 나이 21살 때이다.

"99년 처음 포항에 '연수생'으로 갔어요. 용접하는 일이었죠. 200여명의 한국인 노동자가 있었는데 나같은 외국인 연수생이 6명 정도 있었어요. '김대리'는 나한테 하루에 용접일 100개 하라 그랬어요. 저녁 8시30분부터 다음날 7시30분까지가 일하는 시간이었는데, 김대리는 일하는 시간이랑 상관없이 무조건 숫자만 맞추라고 했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도 안 쉬면서 밥먹는 시간에도 일하면서 새벽 5시30분에 일찍 끝냈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김대리가 화가 났어요. 왜 일 안하냐고. 그래서 김대리랑 싸웠어요. 그리고 그날 밤에 도망갔어요."

이공장, 저공장에서 겪은 일들
왜 도망갔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이미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이다. 준은 이 공장에서 6개월 일했는데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달에 5만원씩 "용돈"만 주고, 나머지 월급은 통장으로 넣어놨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단다. 도대체 누구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었는지, 진짜로 통장에 준의 월급을 넣기나 했는지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 자신이 도망가서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부천 사출공장, 대구 부품공장, 의정부 염색공장 등이 준이 한국에서 다녔던 공장들. 3D업종에 속하는 열악한 작업환경아래서 장시간 야간노동을 해야하는 일들이었다. 제품불량 많이 난다고 월급이 깎이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어 잘 모르는데 같이 일하는 한국 사람들이 그건 생각 안해요. 막 야단쳐요. 왜 못 알아듣냐고, 왜 시키는대로 일 안하냐고."

이쯤 되면 한국이 미울 것도 같다. 다시 돌아가고 싶을 것도 같다. 하지만 준은 2004년까지는 돈을 더 벌고 싶단다. "쫓겨나지만 않으면요."
21살의 나이에 '불법'을 각오하고 돈을 벌기 위해 낯선 땅을 밟았을 때, 준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너무 기뻤어요." 기뻤다고? 다시 물어봤다. 한국말이 서툰 준이니까. "한국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 우리나라에 많아요. 하지만 돈 있어야해요. 돈 있어도 건강하지 않으면 못가요."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IMF 경제위기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도 돈있는 사람들에게나 돌아가는 "혜택"이다.

말을 걸고 싶다
준은 "양키고홈"과 "대통령 바꿔라"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했던 의식있는 대학생이었다. 그래서 뉴스에서 불안정한 인도네시아 소식을 들으면 답답하다. "나도 사실은 싸우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독립했어도 독립한게 아니에요." 이슬람인들에게 나타나는 강한 반미의식이 그에게 없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 다시 다닐 수 있는 돈을 벌기 전까지는 고국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휴지공장엔 먼지가 많아 기관지가 많이 안좋단다. 준은 인터뷰 내내 밭은 기침을 뱉어냈다. 나이답지 않은 메마른 기침이었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 내 또래들을 보면 말 건네고 싶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나한테 말 건네지 않아요. 나는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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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지선


    저는 한의대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작년부터 구로동에서 외국인 이주 노동자분들을
    대상으로 한의사분들과 함께
    무료 한방진료를 해오고 있습니다.
    주로는 조선족동포분들이 오셨었어요.
    식당과 노동일을 하시는 분들이 꾸준히 오시곤
    하셨는데....

    그런데 자진신고 기간이 된 후,
    동포분들의 발길이 영 뜸해졌습니다.
    요즘같은 분위기에
    당신들 몸 아픈것도 쉽게 고치로 오시기가
    힘드신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들어와서 글을 보니
    상황이 많이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군요...

    같이 앞에 나서서 같이 싸우기는 힘든 상황이지만
    같이 도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글에서처럼 힘든 일과 피로에 몸이 아프신 분들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하는데...

    투쟁판에서라도 혹시, 아니면 이주노동자 분들의
    거주처에서 이러한 도움이 필요하신 곳이 있으시다면
    연락을 남겨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