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자체가 투쟁인 작은거인

경남 거제시 대우병원에 입원 중인 대우조선 노동조합 조직1부장 정병권 동지를 만났다. 8인실 병동은 노동조합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부위원장, 사무국장 등 상집으로 가득했고 심야회의가 끝나 어수선한 중에도 비장함이 감돌고 각자의 역할분담에 분주하다.

마다하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빈 병동으로 들어섰다. 먼저 4월4일 회사 인력부의 폭력사태와 이후 사태추이에 대해 물었다. 정병권 동지는 "작년 4·3 폭력사태 기념식이지요." 하며 농담을 건넨다. 회사 인력부와 주먹다짐은 이골이 나있는 눈치다. 그는 2000년 말 9대 집행부가 들어선 이래 집에 못들어간 날짜가 더 많을 거라며 회사와의 치열했던 1년 반을 회고한다.

"4월4일의 폭력사태는 노동조합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근골격계 투쟁에서 회사가 너무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인식하에 탑제1부의 불법적 혼용작업과 조직개편 무효화 투쟁을 무력화하고 이를 계기로 올 임단협투쟁에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계획적인 테러입니다." 신나를 들고 인력부 점거농성을 결심한 것은 여기서 밀리면 올 임단투는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정병권 동지는 2살 박이 딸을 두고 있는 전남 곡성이 고향인 만 30세 젊은 청년노동자이다. 그는 소작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곡성에서 먹고살기가 어렵자 전남 담양 이모의 주선으로 빈집을 한 채 얻어 소작농으로 호구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도 잠시. 정병권 동지 가족도 서울 사람들의 땅투기와 귀농바람에 소작할 땅이 없어 도시변두리 빈민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게 된다. 아버지는 광주 양동시장에서 인력꾼으로, 어머니는 대전에서 돗자리 장사로, 자신은 아시아자동차(지금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하청노동자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군대를 제대하고 마찌고바(중소영세공장)를 전전하다가 "살아가는데 안정된 직장"으로 대우조선을 선택했다고 한다.

96년에 안정된 직장을 찾았는데 노동운동가로 변신한 그 몇 년이 궁금했다.

"96~97년 노개투 총파업 때 부서 형님들 권유로 '규찰대'에 가입하면서 열심히 쫓아 다녔습니다. 하지만 투쟁이 마무리되면서 규찰대는 그냥 해산됐어요. 뭔가 허전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규찰대는 노동조합 집행부가 일회용으로 써먹는 그런 거였지 않나 생각됩니다. 규찰대가 해산되고 나서도 대원들끼리 자주 만나면서 새롭게 98년 임단투 실천단을 구성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에 꼬였다고 한다. "99년 매각저지투쟁이 흐지부지 끝나고 당시 실천단장이던 노승복 동지가 해고됐는데 이를 노동조합 집행부가 방치하면서 실천단 대원들이 화가 많이 났지요. 실천단은 공식적으로 항의도 했고, 위원장 면담요청도 했고 해볼 것은 다해봤지만 허사였습니다."

이후 실천단원들은 노동조합 집행부에 대립하면서 새롭게 현장조직을 독자적으로 결성하게 됐다. "당시 노동조합집행부는 노민추(노조민주화 추진위원회) 사람들이었는데 노민추가 해왔던 것은 항시 타협과 임단투시 '실천단'을 활용하여 분위기를 높였다 낮췄다 하다가 마무리는 틀에 박힌 타협으로 일관했지요. 이런 게 싫어서 무언가 현장중심으로 해야되지 않는가? 라는 생각에 이름도 '현장중심의 노조민주화 추진위원회'(현민추)라고 했습니다."

9대 집행부가 들어선 뒤 현민추는 '현장중심의 민주노동자 투쟁위원회'(현민투)로 발전했다. 현민투에 대해 더 물어 보았다.

"현민투는 단순합니다. 현장중심으로 사업하는 것,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것, 짜고치는 고도리처럼 조합원을 기만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전부죠"

4·4 인력부 점거농성과 폭력사건으로 고소고발돼 있다. 또한 그는 '전술담당 주무부서 선임부장'으로서 구속을 각오한 심정을 물어보았다. "암투병중인 엄마와 집안에 대한 미안함이 앞서고, 가타부타 말 안하고 걱정스레 지켜보고만 있는 마누라한테 미안하죠. 솔직히 가정에 소홀하고 일밖에 모른다고 지적하는 마누라를 떨쳐버리기 힘듭니다." 면서 노동운동가는 감정문제와 집안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을 털어놓는다. "노동조합 간부로서 구속-해고는 당연합니다. 현장에 돌아가서 일하더라도 '니네 집행부 열심히 했다, 잘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소망"이라고!!

"만일 구속된다면 몸 관리도 잘하고, 공부도 왕창 해서 논리도 쌓을 계획"이라며 갑자기 집행부 올라와 준비되지 않은 데서 오는 부족함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80년대말 90년대초 대표적인 투쟁사업장 대우조선 노동조합이 직권조인1호, 무노동무임금1호 노동조합을 거쳐, 신경영전략의 대표적 성공사업장으로 '5년 무쟁의 기념탑'이 우뚝 서 있는 사업장으로 변했다. 이제 노동운동의 귀감에서 자본의 귀감이 돼버린 대우조선에 노동자의 새로운 희망 만들기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말주변이 없어 걱정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체구의 청년노동자가 현장중심과 비타협을 외치는 현장활동가!로, 노동조합 간부로서 항상 구속을 각오하고 있었다고 호언하는 투사로 변해가고 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

노동자의 힘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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