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투쟁 선봉, 한통계약직 510일 투쟁 마무리

민주노조운동의 뼈저린 반성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전국 노동자들에 감동과 눈물을 전해주었던 510일간의 투쟁

2000년 10월 설립 이후 회사측이 7천명 계약직 노동자를 정리해고하자 12월부터 도급전환 거부와 정규직화를 내걸고 파업투쟁을 벌이며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에 섰던 한통계약직노동조합(위원장 홍준표)이 지난 4일 회사쪽과 의견접근을 이루고 510일에 걸친 파업투쟁을 마무리했다.
한강대교 고공농성, 목동전화국 점거투쟁, 분당본사 노숙농성, 광케이블 고공시위, 국회의원회관 옥상농성, 국회 진입시위, 세종문화회관 옥상시위 등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은 안해 본 투쟁이 없었다.
20년 만에 가장 혹독한 추위였다는 2000년 겨울을 분당 본사 앞 농성으로 버텨냈고, 눈밭농성 등 강추위 속에서 극한투쟁을 전개하던 중 이동구 조합원이 왼쪽 뇌 혈관이 응고된 나머지 반신마비 증세를 일으키며 쓰러지는 일을 겪기도 했다.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할지도 모를 동지의 아픔에 지난해 1월 16일 한강대교 고공농성을 벌였고, 파업 480일차인 올해 4월에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한강대교 고공아치 위에 올라가 비정규직 철폐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다.
지난해 3월 29일에는 한통계약직 노동자 200여명이 구속을 각오하고 목동 전화국 점거농성을 벌였으며, 8월 28일 국회 옥상 기습 시위, 10월 31일에는 정기국회 본회의장에서 조합원 3명이 한국통신 계약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기습 시위를 벌이다 ‘국회 소란죄’로 모두 구속되기도 했다.

쓰라린 마음으로 투쟁 끝냈지만 더욱 큰 투쟁으로 일어설 것

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자들의 이토록 처절한 투쟁이 승리로 이어지지 못한 것을 보는 천삼백만 노동자들의 심정은 안타깝고 쓰라림 그 자체일 것이다. 어쩌면 “죽도록 싸워보면 뭣하나? 저놈의 자본은 끄떡도 않는데”라는 패배의식이 싹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있기 이전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음을 잊지 말자. 한라(삼호)중공업 사내하청, 볼보 비정규직, INP 사내하청, 인사이트코리아, 린나이 비정규직 투쟁 등 비록 다수 대중의 투쟁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왔던 투쟁의 역사가 있었기에 한통계약직, 캐리어 사내하청 투쟁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대중투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은 비록 자신의 요구를 쟁취해 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일하는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줌으로써 자본 측이 또다른 곳에서 이와 같은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왔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무슨 힘이 있겠냐며 큰 저항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500일이 넘도록 두려움없이 싸워나가는 이들의 투쟁에 자본은 적지않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얼마전 기아자동차 소하공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계약직 노동자 정규직화를 쟁취해낸 것 또한, 한통계약직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것을 우려한 자본의 불가피한 양보란 측면이 숨어 있다.
지난 3년간 벌어졌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발적인 투쟁이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치열한 대중투쟁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듯이,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500일 넘는 파업투쟁은 이땅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며 더욱 거대한 대중투쟁으로 성장할 자양분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투쟁의 기세는 500일 넘는 파업투쟁의 기세보다, 점거농성과 고공시위를 벌이던 절박한 심정보다, 더욱 힘차고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 또한 확실하다.

한통계약직 투쟁이 민주노조운동에 던지는 메시지

지난 3월 7일에는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 정규직화 쟁취를 위한 1000인 실천단’이 발족하는 등, 처절한 투쟁은 사회 각계각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두려움 없는 처절한 투쟁 속에서 집행유예 선고 19명, 사건계류 31명, 수감자 2명, 모두 4억여원에 이르는 손해배상과 벌금형에다 500일 이상 버텨왔던 오랜 투쟁의 과정에서 경제적 어려움, 가정파탄, 건강악화로 인해 조합원들의 어려움이 더해가고 있는 현실에, 결국 노조는 회사와의 교섭석상에서 쟁점이 됐던 고용 문제에 대해 △희망자에 한해 올 상반기 중 도급업체 취업 알선 △본인의 희망지 적극 반영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3년간 고용보장 최대한 노력 등에 의견을 모았다. 또한 노사는 △생활안정 지원 △법원과 수사기관에 계류 중인 모든 사건에 대해 쌍방 고소고발 취하 등에 합의했다.
무엇보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아니 더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작업을 하면서도 냉대와 사회적 멸시를 당해온 이들의 한 서린 투쟁을, 오늘의 민주노조운동은 뼈저린 반성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국통신 정규직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찾아온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조합원 정서가 맞지 않는다. 발언 기회 줄 수 없다”며 명동성당에서 내친 사건, 민주노총 총파업 때마다 “왜 항상 우리가 총대를 메야 하냐”며 볼멘 소리를 해대는 일부 대공장 노조 간부들의 모습, 관료화된 상층 간부들의 입씨름만이 난무하는 상급단체 회의장면 등은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을 돌이켜보면 정말로 부끄러운 민주노조운동의 현주소이다.

같은 노동자로서 훨씬 열악하고 절망스런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못한다면, 그 운동을 우리가 어찌 ‘민주노조운동’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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