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노동자의 힘 회원)
모두가 알고있는 사실들 다시 한번 보기
4월2일 총파업투쟁이 유보된 후 민주노총은 어느 언론에서 말하듯 '고난의 행
군'을 계속하고 있다. 임원진이 사퇴하고, 비대위 구성을 위한 대의원대회가
무산되고, 4차 중앙위원회에서 힘겹게 비대위 구성 안이 마련되어 다시 대의원
대회를 열기로 했으나(5월6일) 얼마나 힘있는 비대위가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
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혹자는 4월2일 잠정합의와 총파업 유보를 평
가하기 위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에 관한 한 더 이
상의 실체를 규명해야 할 만큼 알려지지 않은 비사가 숨겨져 있지는 않다. 오
히려 모두가 잘 아는 일상적인 것들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2002년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금년 상반기 투쟁
을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발전노조 동지들이 2월25일 주5일 문제와 함께
국가기간산업 사유화저지를 내건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을 제기했고, 이에 맞
서 '총파업'으로 한정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주장이 맞서 결국 표결까지 갔다.
회의 중 대의원들이 빠져나가 성원이 안 되는 상태에서 부랴부랴 대의원들을
불러모아 가까스로 성원을 채워 표결을 했으나 총파업 찬성의견이 불과 50표
정도였다. 두 달 후인 4월24일 파업유보 후 다시 열렸으나 유회된 임시대의원
대회에서는 비대위 임무로서 즉각 '총파업돌입'에 대한 투표에서는 96표였다.
이것은 공조직 민주노총의 최고의결기구의 분명한 의견 분포이며 현실이다.
아! 정말이지 현실로 인식하지 못했다. 현실로 인식할 수 없었다
상반기 투쟁계획을 입안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나 역시 국가기간산업 3사
의 파업가능성을 현실로 인식하지 못했다. 민주노총 집행부 전체가 그러했다.
연맹·지역본부에서 활동하는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의 판단이
그러했다. 아니 철도, 발전노조에 보다 깊숙이 결합하고 있던 많은 활동가들로
부터 확인한 내용도 대체로 그러했다.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보자. 정대 이전부터 실제 파업 돌입에 임박했던 시기까
지 산하연맹과 지역본부는 물론 몇 차례의 투본대표자 회의에서 항상 하달되
고 자체 결의되었던 숙제. [산하노조 투쟁 동력진단과 (연맹)총파업투쟁에 대
한 판단 현황보고]는 단 한차례도 제대로 보고서가 올라온 적이 없었다. 겨우
2월14일에 단위노조대표자 결의대회를 준비하면서 다시 동력점검 제출을 촉구
하자 일부 연맹·지역에서 보고가 올라 왔으나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발전노
조 집행부조차 연맹을 통해서나 직접 민주노총에 파업투쟁 돌입 계획에 대
한 '책임 있는' 공식·비공식보고 조차 없었다. 동력진단의 근거와 방법, 총파
업 투쟁에 대한 판단 근거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놔두자. 민주노총 조직체계
그 어떤 단위에서도 책임 있게 동력을 진단하고 판단하여 보고하는, 그리하여
이를 종합하여 최종 판단하는 기능이 발휘되지 못해 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반면에 파업투쟁을 주장하는 소리들은 많았다. 인터넷에, 그리고 항상 투쟁을
강조해온 활동가들 중에. 그러나 대부분 '동력진단과 책임질 수 있는 판
단'이기보다는 투쟁 조직화의 필요성이나 당위성을 갖고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나도 총파업투쟁을 '만들자',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는 충분히 동감했
다.
사실 3사 파업이 가능성 있는 현실로 검토된 것은 2월23일이었다
그것도 민주노총 소속이 아닌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무르익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역시 '책임 있는 판단보고'는 없었
다. 이날 사무총장이 주재하는 실·차장 점검회의에서 2월25일 발전노조만 파
업투쟁에 돌입할 경우 대책이 논의되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발전과 철도가 함
께 파업에 돌입할 경우 민주노총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제기했다. 2월26일
총파업투쟁에 돌입해야 한다는 의견과 어렵다는 의견이 맞섰다. 되돌아보면 핵
심적인 문제가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이 아니다. 2월25일 국가기간산업 3사가
파업에 돌입할 것인가 여부, 이 경우 민주노총이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에 대
한 판단은 실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력 문제 이외
에도 이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과 조직적인 결론을 내리기 위한 장치와 과정이
매우 취약했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감', 주변 인간관계를 통해 논의하며 갖게 된 소
신, 회의석상에서의 판단 등만을 갖고 회의할 뿐이다. 활용할 자체 분석보고
서, 의견서, 하부에서 올라온 객관적 보고서, 이 모든 것을 종합분석한 보고서
를 참고하면서 회의하는 것은 꿈에서도 기대하기 어렵다. 평소 파업에 비적극
적 이었던 사람은 회의 참석해도 별 말도 없다. 여러 명이 모여 회의해도 여
러 가지의 '지혜'가 모이는 것이 아니다. 실제 결정 역시 몇 사람이 한다.
2월26일, 민주노총 4시간 연대파업은 결과적으로 성사되었지만 4월2일 총파업
유보와 같은 잘못된 결정의 위험성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런 문제는 4
월2일 총파업까지 계속되는 문제였다. 2월26일 연대파업 후 약 3주간이 민주노
총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는 듯이 사실상 발전노조의 자체 투쟁에 모든 것이
맡겨진 채 흘러갔다. 산개 대중파업이 제대로 잘 진행되는 것에 모두들 신기
한 듯 바라만 볼 수밖에.
결국 산개 대중파업의 투쟁현실, 변화된 조건이 우리를 끌고 갔다.
발전노조 산개 투쟁에 대한 지원연대투쟁에서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으로의 발전
이 3월18일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검토되었다. 3월25일 대량해고 예고시한을 전
후해서 이 투쟁이 정리될 것인가, 발전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었기 때문이
다. 민주노총의 투쟁방향을 결정하는 투본 대표자회의에서는 민주노총 집행부
는 총파업투쟁계획을 제출하고, 연맹에서는 당위는 인정하나 현실적인 동력은
어렵다는 의견이 대립하는 양상으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집행부 내부는 어떤가? 3기 임원선거의 구도가 반영되어 있는 집행부는 일사불
란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견해도 일치되지 못했다. 집행부의 핵심인 임원진은
총파업 투쟁에 대해서는 확연하게 견해가 양분되어 있었다. 평소에 임원 중심
으로 집행부가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
는 허영구 직무대행은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제일 먼저 임원회의를 활성화했
다. 매주 임원회의를 하고 그 결과 그 이전에 비해 임원회의에서 조율된 의견
으로 집행부(상집)를 주도하고자 하는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총
파업 투쟁에 대한 견해 차이는 이러한 노력을 성과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
혹자는 3기 임원 선거 후 집행부가 이른바 '중앙파'와 '현장파'의 연합으로 구
성되었다고 한다. 이 구성이 사실이라면 이번 총파업투쟁에서는 어떤 작용을
했는가? 양자는 총파업 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데는 표면적으로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강조점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 측에서는 교
섭력 강화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총파업의 모양을 최대한 갖추려 했다. 물론 이
것은 칼로 무 자르듯 일도 양단 할 수 없다. 그러나 집행부의 주도세력은 양자
의 이런 위험을 서로 알면서 방치한 것이 사실이다. 실질적 총파업 조직에 좀
더 비중을 둔 사람들은 어떠했는가? 대중의 역동성에 근거하여 투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했지만 역동성 역시 목적의식적인 투쟁조직이 함께 할 때 발휘되
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 역시 노동운동 내의 정파적 관계에 근거한 설득과 강제 이상을 넘
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정파적 관계에 의한 투쟁조직도 그다지 성과적이지 못했
다. 결국 기존의 정파적 관계를 최대한 가동하여 밑에서부터 위에까지 공식에
서부터 비공식에 이르기까지 총파업 투쟁을 선도하는 역할을 성공하지도 못했
고, 이길 외에 정파관계를 뛰어넘는 대중운동 방식으로 투쟁을 조직하지도 못
했다. 결국 대중 스스로 이 길을 열어가게 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었
다. 물론 자기 스스로들은 자신들이 서있는 위치에서 성과 있게 잘했다고 할
것이다. 목표가 그것이었다면 모두들 각자 다 잘했다(?). 그러나 산개 대중파
업투쟁의 발전이라는 '현실'이 하루하루 쌓여가고 있는 와중에서도 이들 모
두, 아니 우리들 모두의 '관계' 발전은 도모되지 못했다. 객관적인 실체물로서
의 투쟁도, 투쟁 속에서 확인하며 발전할 수 있는 서로의 관계도 다 8부 능선
에서의 좌절이다.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
까.
3월26일 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투쟁이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솔직히 여기까지 오는데도 힘들었다. 운동집단이나 활동가들의 '관계'가 발전
된 것은 아니다. '노력'이 축적되어 온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발전 조합원들
의 장기투쟁이라는 현실 앞에 그냥 손들은 것인가. 파업이 불가능하다 생각했
든 소극적이었든지 간에, 총파업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건, 모
두 결과적으로 만장일치로 나아가는 과정에 별다른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50표에서 90여 표를 오가던 총파업 찬성표가 만장일치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별안간 연맹 지역본부등 각 조직의 투쟁의지는 눈에 띄게 변화가 있었
다. 저마다 무엇인가를 해 보고자 고민하고 결의했다. 그 배경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그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항상 저마다의 해석
과 불신이 따라 다녔다. 어디가 투쟁한다고 하면 한다고 하고선 과연 할 것인
가? 항상 서로들 물어본다. 그래서 나 혼자만, 우리 조직만 투쟁하는 것이 아
닌가? 정말 투쟁하기 위한 결의인가? 교섭타결 될 것을 전제한 결의였던가?
알 수가 없다. 이런 불신들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파업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조직할 것이었다면 왜 진작 파업을 조직
하자 주장하고 움직이질 않았던가. 한두 달 남짓한 시간 차이 뿐인데 그사이
자기조직의 조건이 급변했단 말인가. '파업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
던 사람들은 바로 이때라도 무엇을 신중해야 한다는 것인가를 소상히 말해야
했다. 교섭을 중심에 두었거나 중요하다고 했던 사람들이라면 교섭을 어떻게
무슨 내용으로 해 들어가야 했는지를 교섭전문가답게(?) 제기해주어야 했다.
파업 때문에 아리랑축제 참석이 조직 안 된다고 투덜거렸던 사람들이라면 아리
랑 축전 참가조직 동력을 어떻게 총파업동력에 붙여내고 그리하여 축전참가 동
력을 어떻게 확대하겠다는 포부라도 밝혔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같이 있질
않았다. 각자 있었다. 보이지 않는 불신만이 음산하게 퍼져 있을 뿐이었다.
투쟁 그 자체의 위기
실제로 교섭타결의 압박은 현장, 연맹 등 도처에서 있었다. 4시간 파업이나 하
루파업으로 투쟁을 가둬두려는 신사적 노력(?) 역시 퍼져있었음에 틀림없었
다. 심지어는 '파업돌입 선언만이라도 걱정말고 분명히 해라…'고 눈맞추기도
했을 터. (그 다음 말은 "파업돌입전 타결할(될) 것이니 걱정마라"는 것이었으
리라.)
3월25일 투쟁본부대표자회의에서 민주노총으로의 교섭권 위임이 논의된 배경
도 '발전소 매각에 대한 노코멘트'를 발전노조의 내부 역학관계에 의해 이리저
리 끌려 다니지 말고 민주노총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때문에 4월2일, 총파업 투쟁을 목전에 둔 민주노총의 상황은 매우 불안정한 상
황이었다. 투쟁동력에 대한 불안함, 교섭의 혼돈이 방치되었다. 집행부는 이
투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결의와 구체적인 대책
을 방치한 채 4월2일을 맞이했다. 투쟁의 향기에 취해 있었다고나 할까.
총파업 1단계 투쟁 동력에 대한 판단, 발전노조 전술에 대한 판단이 조직적으
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판단에 따른 투쟁계획을 조직적으로 수립하지 못했
다. 이런 점이 조직 운영의 핵심적인 문제일 것이다. 더 나아가 4월3일 이후
의 투쟁동력이 일정 약화된다고 할 경우 민주노총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점이 조직적으로 사전에 논의되었다면 오히려 더 많은 논란이 발생했을 것이
다.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한다는 결사투쟁을 할 태세가 되어 있는가? 그랬다고 자
신 있게 답할 사람은 없다. (있었다면 이 지면을 통해 답해주기 바란다.) 항
상 우려하고 그 우려에 의해 투쟁이 망쳐져 왔던 점, 즉 동력이 약화되어 투쟁
이 퇴각하고, 교섭의 성과가 없고, 탄압만 남는 상황에서 꼬리를 내렸던 우를
다시 한 번 범하게 되었다.
100%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정부 교섭으로 이미 피를 본 적이 있
는 민주노총이 이번 교섭에서도 교섭단의 실책을 사실상 방치, 방조했다. 교섭
에서 무엇인가 나오기를 바라는 심정들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공범자가 되었
다. 설사 교섭에 기대하지 않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도 허약한 교섭구조
의 문제를 방치하여 사태를 자초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우리들 모두는 이렇게 무너졌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