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린/파리 10대학 박사과정(사회언어학)
언제나 신문 1면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채우고 그 위에 몇 개의 단어 또는 간단한 문장만을 싣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5월 14일자 1면은 육상 경주 트랙에서 출발을 준비하는 각 좌파 정당대표들의 모습을 그린 만화와 함께 “좌파가 복수한다”는 문장을 담고 있다.
이는 지난 대선 결선투표에서 극우파를 저지하기 위해 우파 대통령후보 자크 시라크에게 투표할 것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대부분의 좌파 정당들이 다음 달에 있을 총선에서는 그 ‘치욕’을 떨쳐버릴 수 있는 승리를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프랑스 좌우파간 대결의 진정한 승부처는 지난 대선이 아니라 6월 총선이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사회당 제1서기 프랑수아 올랑드가 지적한 것처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재선은 그가 대선에서 제시한 공약 및 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극우파의 부상에 맞서 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이 취한 불가피한 선택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대선 결선투표 이전부터 좌우파를 막론하고 각 정당들이 사실상 총선 준비에 들어간 것은 이러한 맥락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 역시 좌우파간의 진정한 정책 대결이 될지는 확실치 않다.
물론 좌파진영은 <리베라시옹>의 예측 또는 ‘희망’처럼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 좌파 다수당인 사회당의 총선 전략은 리오넬 조스팽 대선 후보가 제시했던 대선 공약의 전체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선 과정에서 확인된 기존 지지세력의 이탈을 의식해, 좀더 전통적인 좌파 색채를 강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자기 색깔 찾기는 사회당과 연합 정권을 꾸렸던 공산당과 녹색당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이들 좌파 3당 및 좌파급진당 등 4개 정당은 우파 및 극우파에 맞서는 총선 단일후보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좌파진영의 총선 승리 전망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먼저 총선 단일후보 논의는 좌파진영보다 우파진영에서 더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공화국연합이 중심이 되고 자유민주당과 프랑스민주연합의 다수 의원을 규합한 ‘여당 대통령을 위한 연합’은 이미 80%가 넘는 선거구에서 후보단일화 합의를 이뤄내고 있는 반면에, 좌파 4당은 아직까지 20%가 조금 넘는 선거구에서만 단일후보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대선 과정에서 중도파로 기울면서 오히려 그 기세가 약화되었음에도 총선 독자후보를 고집하고 있는 시민운동당의 행보도 좌파에게는 불리한 조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극우파 국민전선은 좌파에 대한 바리케이트 차원에서 필요한 경우 우파 정당들과 협조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고 있는 반면에, 대선에서 10%가 넘는 지지율을 획득했던 무정부주의 계열 극좌 정당인 노동자투쟁당과 혁명적공산주의연맹은 제도권 좌파 정당들과의 공조는 어떠한 형태로도 없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제시하고 있는 좌파진영의 정책과 명분이 민심을 사로잡을 만큼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다. 좌파정당들의 자기 색깔 찾기는 다소 급조된 느낌이 강하며, ‘치안문제 해결’을 중요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도 오히려 우파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지난 97년 총선에서 좌파 승리와 좌우 동거정부 구성에 기여했던 구호, 즉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이번 총선에서는 통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번 총선에서 우파진영은 우파 대통령과 좌파 총리로 구성되는 좌우 동거정부가 비효율적이고 무능력하다고 비판하는 것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는데, 이러한 비판은 이미 대선 이전에 대선 승리를 염두에 둔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진영에서부터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의 우파 핵심 전략이 현재의 제반 문제를 좌우 동거정부의 탓으로 돌리며 강력한 대통령이 이끄는 효율적인 정부를 부르짖는 공세적인 것이라면, 좌파의 전략은 기존 지지세력의 자존심 회복과 권력 집중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거부감에 호소하는 수세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좌파진영은 앞으로 극복해야할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으며, 총선 결과는 그러한 내홍의 과정을 완화시키거나 가속화시키는 상황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 88호] 5.20 ~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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