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열린채널>, 차라리 <닫힌채널>이라고 불러라!

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의 이마리오 감독

2002년 1월, 난 KBS<열린채널>에 다큐멘터리<주민등록증을 찢어라!>를 편성 신청을 했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는 지난해에 45분으로 완성된 것이었지만 <열린채널> 방영시간이 28분으로 한정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줄여 신청을 하게 되었다. 굳이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열린채널>에 편성 신청을 한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일명 퍼블릭 엑세스)이었으므로 공중파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주민등록제도는 결코 당연한 것만은 아니다’)을 효과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모든 법적인 책임을 진다’ 서약서까지 내야했으므로 별문제없이 당연하게 방영이 될 거라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이 너무 순진한 것임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주 후에 받은 KBS시청자프로그램운영협의회(이하 운영협의회) 의결사항은 마치 80년대 언론의 ‘보도지침’을 연상케했다. ‘박정희 생가장면을 다른화면으로 대체하라’ ‘주민등록제도가 파시즘적인 제도라는 주장을 삼가라’ ‘-놈, 개판 등 언어순화’ 등 문서의 표현은 내용수정에 대한 의견이라고 씌여져 있었지만 만약 이것을 수정하지 않으면 당연히 방송이 안될것이라는 것은 세살박이 아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결정을 해야만했다. 전면적으로 거부를 할 것이냐 아니면 원칙을 정해 내용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수정을 할 것인가?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어차피 신청을 할 때 공중파 방송의 한계를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므로 언어순화의 요구에 대해서는 ‘놈,개판’부분을 ‘삑’소리를 넣어서 수정을 했다. 그리고 자료화면 사용에 대해 자막으로 표시를 했고, 공무원 등장부분에 대해서도 화면을 뿌옇게 처리하고 자막을 ‘관계자’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고 증거자료들과 의견을 작성해 운영협의회에 다시 제출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났다. 하지만 회의결과를 알려달라는 나의 요구에 담당 PD는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면서 계속 미뤘고 두달이 지나서야 겨우 재수정요구를 담은 의결사항을 받을 수 있었다. 내용은 ‘박정희 생가장면 삭제’와 ‘제목의 순화’ ‘공무원 등장부분에 대한 증거제출’ ‘미친놈들 발언 삭제’ 이렇게 4가지였다. 지난 1차수정요구에는 수정이유 및 근거가 씌여져 있었지만 재수정요구에는 단지 수정사항만 명기되어 있었고, 특히 1차수정요구에 없었던 제목순화요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담당 PD와 전화통화를 해서 제목수정의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이유는 ‘국민정서상 문제가 있고 실정법 위반이다’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제목이 실정법 위반이라니... 그렇다면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도 실정법 위반이 아닌가? 핑계가 참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미친놈들 발언’은 삭제를 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증거를 제출하고 의견을 쓰고, 제목의 실정법 위반에 대해서는 변호사와 헌법교수의 의견서를 첨부하고 1차수정요구에 없던 항목이 왜 추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답변 요구도 함께 제출했다. 그때까지 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한의 수정을 했다. 공중파방송이므로 그 정도는 감수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면서 말이다.(하지만 이것 또한 스스로 자기검열을 한 것이었다)

드디어 최종결정 통지문을 받았다. 편성불가 방침! 이유는 ‘제작자가 수정요구에 대해 전면수용하지 않아서’였다. 나중에 운영협의회에 참석했던 시민단체쪽 사람을 만나서 확인해 본 결과 프로그램 승인에 대해 표결에 부쳐졌고 총 9명 중 1명은 기권, 4대4로 동수가 나와 내부운영규정을 확인했다고 한다. 규정에는 운영위원의 2/3이상 동의가 있어야 방영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서 편성불가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열린채널>은 퍼블릭 엑세스채널로 기존의 공중파에서 다루지 않았던 영역의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방송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방송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편성불가 방침은 이 프로그램의 근본취지를 무색케 하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운영협의회의 수정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해서 편성불가 방침이 내려진다면 모든 제작자들은 운영협의회가 요구하는데로 수정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열린채널의 근본적인 취지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제목순화요구’라든가 ‘박정희 생가장면 삭제’ 등 내용에 대한 수정요구는 분명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심각한 검열행위라고 생각한다. 몇해전 영화 사전심의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졌고, 음반 또한 사전심의가 없어진 현상황에서 공영방송인 KBS에서 거의 검열에 가까운 사전심의를 한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검열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이 된다면 결국 제작자들이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는 상황까지 이를 것이다.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표현에 제한을 가할 것이며 미리 사전에 움츠려들어 상상력을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점이 표면위로 드러난 것은 이미 2001년 말에 예고되었다. 전농에서 제작한 ‘농가부채’에 관한 프로그램이 방영되지 못하고 3-4달 표류를 거듭하다가 결국 방영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의 논쟁점은 ‘보증보험’ 문제였지만, 사실은 논란이 될 만한 내용에 대해 ‘KBS도 공동의 책임(제작자와 더불어)이 있다’라는 방송위원회의 유권해석이 내려짐으로써 KBS는 논란의 소지가 있을만한 내용에 대해 더더욱 검열에 가까운 심의과정을 하게 된 것이다. 제작자가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서약서까지 제출한 상황에서 보증보험까지 가입해야 하는가라는 논란이 결국은 보증보험료를 낮추는 선(400만원 정도에서 50만원으로 조정됨)에서 마무리가 된 것이다.

이렇듯 <열린채널>에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개인적으로는 운영협의회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운영협의회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되어 <열린채널>의 근본취지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에서 운영이 되기 위해서는 방송위원회 산하에 독립적인 기구로 존재해야 하는데, 현재는 KBS 시청자위원회 산하에 있음으로 인해 내부운영규정이 외주제작프로그램운영을 그대로 갖다가 적용(<열린채널>에 방영을 위해서는 외주제작프로그램의 질이 되어야 한다는 기준 등)한다거나 운영위원 구성이 KBS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대할 수 없는 사람들로 구성(9명 중 과반수 이상이 KBS직원이거나 KBS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 시민단체에서는 2명만이 들어갈 수 있다)되어 있는 문제, 또한 운영협의회에서 승인이 나더라도 다시 KBS 심의실에서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 2,3중의 검열의 문제, KBS에서는 최종방영본(디지베타)만을 받아 송출만 한다는 문제 등등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논란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편성불가’ 결정이후에 두번에 걸쳐 시민단체들과 함께 항의집회를 했고, KBS시청자위원회에 ‘편성불가 방침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접수했다. 시청자위원회에서는 이에 재심의 결정을 내렸지만 편성불가를 결정한 운영협의회에서 다시 재심의해야만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6월 초면 재심의에 대한 최종결정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시민단체들은 <열린채널>의 문제점과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6월 초에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지문날인 반대연대는 6.13총선을 맞아 <주민등록증 안쓰기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대부분이 대체신분증(운전면허증,여권,기타 자격증 등등)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문이 찍혀져 있는 주민등록증을 거부함으로써 지문날인 철폐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으려는 것이다. 그 첫걸음에 여러분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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