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적 기업의 착취에 기댄 월드컵" ― Fair Play는 허구다
글 / 레이
개최 국가 선정에서부터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던 월드컵이 드디어 개막되었다. 사실, 스포츠를 즐기고 아니고는 다분히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싫어요!' 한마디를 공개적으로 내뱉고 다니다가는 길 가다가 돌이라도 얻어맞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벅차 오르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화려한 축제 뒤에는 하루종일 실내에 처박혀 생계를 위해 하루종일 노동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
세계적인 스포츠 용품 기업인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노동착취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상상할 수 없는 체공시간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에어 조던"(마이클 조던)을 희화화한 어떤 삽화에서는 나이키 제품을 착용한 조던 앞에서 아동노동자들이 남루한 옷을 입고 고된 노동에 시달린 표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서 4만 8천원 축구공을 만드는 노동력의 대가는 120원이다. 축구공을 꿰매는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인노동자의 경우 하루 4개 이상을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하루 열심히 손이 부르트도록 일해도 480원을 넘지 못하는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이다.
아동노동의 문제는 바로 성인노동자의 착취 문제와 연결된다. 대부분의 아동노동자들이 생계부양의 문제로 노동현장에 뛰어든다. 부모들이 벌어오는 돈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노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인도의 한 아동노동자는 5살 때부터 축구공을 꿰매는 노동을 해오다가 시력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일해도 하루 임금으로는 우유 1리터를 사지 못한다"는 말은 노동착취의 강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5월 27일부터 31일까지 15개 단체들이 모여서 <노동자·아동노동착취 월드컵 후원 초국적 기업 반대 공동행동> "월드컵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캠페인에서는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홍콩,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동착취 사례들이 보고되었다. 비단 월드컵 용품을 생산하는 것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특히 월드컵을 후원하는 초국적 기업들의 생산품이 대부분 제3세계 국가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만들어진다. 맥 도날드사의 어린이 햄버거 세트 '해피밀'에 제공되는 장난감을 만들기 위해 베트남의 Keyhinge에서는 17세의 여성노동자들이 매일 9-10시간, 주 7일 노동을 하고 있으며, 시간당 6센트의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노동환경 역시 열악해서, 화학약품으로 인한 질병 때문에 피해자는 점점 늘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제3세계 국가에서 초국적 기업의 하청업체 공장을 국내로 끌어들여 고용창출을 유도하고는 있지만, 온전한 의미에서의 고용창출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인다. 보고된 사례들을 통해 본 바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을 견디어 내면서도 적절한 수준의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노조활동에 대해 탄압을 받고 있다. 코카콜라를 생산하는 콜롬비아 내 한 공장의 조합원들은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4년 전에는 노조간부가 총에 맞아 살해당하는 사건까지도 일어났다. 그러나 사측에서는 '콜롬비아 음료기업은 코카콜라와 독립적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말한 "월드컵 캠페인"기간 내에 열린 <왜 월드컵이 문제인가? - 초국적 기업의 착취에 기댄 월드컵> 토론회에서 한 일본 전노협 소속 활동가는 지난 70년대의 일본 상황에 빗대어 한국에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이 일본의 노동착취와 노조 탄압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기를 바란다며. 이미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 사례를 익히 알고 있지만,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의 한국기업의 노동착취 사례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 고용주들은 무례하고 오만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한 공장에서는 잔업 강요는 물론이고 인도네시아 노동법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로만 임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노조원들에게는 일상적인 협박이 가해진다.
특히 이런 산업 현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성인노동자에 대한 적절한 임금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아동노동이 일상화되어 있다. 파키스탄의 한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7세 때부터 축구공에 구멍을 뚫고 꿰매는 등의 노동은 거의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이미 1996년에 FIFA는 '축구공 제조에 관한 노동관행규약'을 만든바 있다. 이 내용은 아동노동금지,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상 권리 존중, 고용 차별 금지, 노동시간 초과 금지, 공정한 임금 지급, (기업들이)규약에 대한 이행과 조사에 협조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나 현재는 전혀 실효성이 없다. 월드컵 캠페인에서 전시된 한 사진자료에서는 12세 정도의 소녀가 '아동노동금지'라는 로고가 선명하게 찍혀있는 축구공을 꿰매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국제적인 화합과 축제의 장"으로 표현되는 월드컵은 사실 그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사실, 처음부터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아니, 월드컵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 행사는 이제 국력의 시험장이 되어 버렸으며, 금메달이나 주요 스포츠 기구의 권력을 잡기 위해서 온갖 협잡과 비리가 난무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스포츠 산업이 곧 돈이 되는 오늘, "초국적 기업의 착취에 기댄 월드컵"은 그닥 새로운 이슈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 경기가 보여주는 현란한 선수들의 동작과 골을 넣는 짧은 순간의 쾌감, 사라져 가는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다는(혼자 보면 재미없지만 같이 보면 즐겁고 쉽게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경향들. 붉은 악마가 이런 결성된 이유중의 하나가 아닐까?)점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에 열광한다. 아동노동에 대한 사례를 접하면서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아동노동자들에 대한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는 것도 잠시, 전국에 퍼져있는 월드컵에 대한 열풍에 휩쓸려 어렵사리 경기 표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스포츠의 힘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 캠페인"은 식상하지만 새로운 문제제기였다. 일상 속에서 난무하는 현란한 월드컵의 선전문구 속에서 잠시나마 월드컵 이면에 가려진 불유쾌한 현실을 드러내놓은 것이다. 아동노동 착취의 문제제기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월드컵'이라는 행사를 통해 실질적인 연대의 가능성까지도 확인했다. 월드컵을 통해 바라본 아시아 노동자들의 현실은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체감하게 한다. 이미 생산공장의 대부분이 환경이나 비싼(?) 임금의 문제로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는 지금의 추세에서 노동착취의 문제는 더 이상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노동운동의 세계화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과제이다.
사족 : 한가지 흠을 잡자면, "월드컵 캠페인"의 영문구호인 "Fair Play in Workplaces"는 그래서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Fair Play라는 말이 이제 스포츠에서도 적용되지 못하고 의미를 상실해 버린 요즘, 작업장 내에서의 페어플레이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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