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월드컵의 시대다. "한국 사회에서 모든 둥그런 것은 축구공이고, 대통령은 히딩크 아저씨이며, 모든 숫자는 '16'으로 끝나고, 당분간은 반드시 붉은 색 티셔츠만을 입어야만 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니까. 더욱이 "월드컵 성공개최"를 위해서라면 도시환경에 대한 반생태적 난개발이나 노점상, 노숙자 등 민중 생존권에 대한 탄압마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월드컵의 힘"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문화 월드컵"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처럼 획일화된 집단적 열기에 비해 문화 월드컵의 전제 조건인 우리의 문화 환경, 삶의 조건은 어떠한가? 쓸만한 동네 체육관 하나 없는 생활체육 정책과 인프라, 획일화된 매스 미디어 외에는 경험하기 힘든 문화적 빈곤, 신자유주의적인 투자협정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화교류, 삶의 여유와 여가보다는 더 많은 경제력을 소유하고 소비하기 위한 임금기계로서의 일상....
아니 월드컵과 좀더 가까이 있는 우리의 체육정책은 어떠한가? 정작 민주주의의 기본인 생활체육 정책은 포기된 지 오래고, 메달 전사로서의 엘리트체육만이 과열된 출세주의·입시제도와 손잡은 채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 한국 체육정책의 현실이다. 또한 이러한 엘리트 체육문화는 언제나 전근대적인 국가주의, 민족주의와 손을 잡고 국가 경쟁력, 민족 우월성 등 과시적 외향성을 알리바이 삼아 한국 사회의 체육문화정책 및 생활체육시설의 빈곤함을 감추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우리의 척박한 문화 현실과 월드컵에 대한 과도한 집착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기에, 나는 현재의 월드컵 열풍이 한국 사회에 또 다른 상처로 각인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월드컵이 끝나고 모두가 떠난 그 자리에는 자본주의의 주판알로 환원될 수 없는 난개발된 각종 시설들, 급조된 보여주기식 문화 행사들, 낭비된 공적 자금, 길을 잃은 문화체육정책 등의 상처만이 깊게 각인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신화 버리기
따라서 월드컵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주체를 민족주의, 국가주의, 경쟁주의, 자본주의의 화신으로 만들려는 현재 우리 사회의 월드컵 신화는 과감하게 포기돼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최소한(!) 16강, 붉은 악마, 대한민국, 스포츠 산업 등에 앞서 다양한 문화교류, 축제, 놀이, 여가 등과 관련된 우리의 문화적 권리들이 문화사회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재배치돼야만 한다. 국가주의적, 자본주의적 이윤 창출 중심의 문화정책은 필연적으로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사회적 공공성과 민주성을 거세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문화라는 것이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삶의 질의 문제이고, 그것의 구성 과정과 목적 자체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문화정책과 월드컵 열기는 자본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언제나 산업, 시장, 경쟁에 대한 관심만으로 매몰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일상적인 문화생산과 향유를 둘러 싼 사회적 공공성과 민주성을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언제나 제일 먼저 외면한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문화인프라와 인적 자원에 대한 홀대는 다시 문화적 빈곤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사회적인 문화 인프라의 공공성에 입각한 투자, 이를 결정할 수 있는 정책 과정의 민주성이 부재함으로써, 결국 문화정책, 생활체육정책 등은 언제나 월드컵 열풍과 같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근시안적인 경제정책으로 변형된 채 사회 곳곳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시민이라 불리는 우리는 바로 빈곤한 문화정책, 생활체육정책의 최대 피해자이며, 동시에 경제제일주의에 의해 언제나 지체되고 보류된 우리의 문화적 권리는 곧바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상적인 삶의 궁핍으로 마무리된다.
척박한 생활체육 인프라, 엘리트 체육 중심의 빈곤한 문화정책, 아무런 근거와 준비 없이 "하면 된다"식의 헝그리 문화산업, 다수의 시민이 아니라 정부의 위상을 뽐내기 위한 문화행정..... 이것에 대한 판타지와 알리바이로서의 과잉된 월드컵 열풍. 이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 현실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월드컵을 성공 개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 이전에, 너무나 오래 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문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문화를 노동 후에 남는 여가나 돈을 벌기 위한 투자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삶의 질 자체를 향상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민주화를 통한 가치관의 변화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문화민주주의나 문화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월드컵과 같은 개별 정책과 일회적인 행사의 문제를 넘어 바로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구조와 개인적 권리를 되찾는 지난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에 대한 그 놀라운 집단적 열정의 아주 조금만이라도 우리의 일상, 삶의 문화에 아주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선전용 알리바이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적 실천이 절실할 때이다. 진정한 "월드컵 성공 개최"란 추상적인 국가 경쟁력과 국위 선양이 아니라 우리의 빈곤한 문화 환경과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향상시키는 과정이자, 집단주의에 의해 호명된 응원기계보다는 문화와 체육을 의미화하고 즐길 수 있는 주체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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