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반월공단에는 2천여 업체가 들어서 있다. 여러 업종의 갖가지 기계소리가 뒤섞여 있지만 드릴 등 전동공구를 만드는 계양전기의 기계들은 작동을 멈춘 지 한 달을 넘어섰다. 커다란 스피커가 뿜어내는 투쟁가와 조합원들의 함성이 기계음 대신 귓전을 울린다. 작업장의 기계들에는 가지각색의 깃발이 꽂혀 있다.
"어제 파업프로그램으로 진행한 깃발제작 시간에 만든 겁니다. 기계에 딸린 조합원들이 한 조가 돼 같이 만들었죠." 금속노조 이춘영 지회장을 따라 작업장을 한바퀴 돌다보니 조합원들의 요구와 분노가 한꺼번에 다가왔다. 서툰 그림과 글씨였지만 깃발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고용안정'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따위의 문구부터 '사원 우롱하는 계양전기 사훈 → 거짓, 불화, 잔대가리, 짠돌이'라는 비아냥도 섞여 있었다.
지난 18일에는 금속노조 투쟁단 5백여명이 몰려와 '악질사업장'이라는 오명을 씌워주고 한바탕 신명나는 파업지원 집회를 연 바 있다. 이번 파업이 아니라도 계양전기는 이미 금속노조에서는 소문난 악질사업장. 금속노조 경기지부는 다른 곳보다 기본협약을 많이 체결한 편이지만 완성품업체인 신흥과 계양전기만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집단교섭을 꺼리고 있다.
"경기지부 소속 사업장은 대부분 하청인 반면 신흥과 계양전기는 완성품업체입니다. 특히 계양전기는 물량이 조금 달려도 전국 4백여 대리점에 재고물량이 있어 공장이 멈춰도 사업주가 서너 달은 버틸 수 있지요."
전 지회장인 이상곤 씨는 사측이 계속 대화를 회피하고 타결이 늦어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계양전기는 이를 뽐내기라도 하듯 해마다 임단협 교섭을 해태하며 몇 달씩 버티곤 했다. 지난해는 두 달, 올해는 한 달을 넘어섰지만 "조금 더 남았다"는 분위기다.
11시가 되자 기계별로 모여 있던 조합원들이 대열을 지어 작업장 입구로 모여들었다. 5분만에 1백여명으로 불었다. 교섭에 나서는 대표들을 배웅하기 위해 약식집회가 열린 것. 하지만 교섭장의 사용자쪽 자리는 늘 비어 있다. 그래도 오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커다란 목소리와 함성으로 교섭에 나가는 간부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준다.
파업이 한 달을 넘었으니 조합원들의 분위기가 걱정될 만도 한데 이 지회장은 "걱정없다"고 잘라 말한다. "조합원들이 회사쪽 태도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결코 쉽게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렇듯 단단히 뭉쳐 있으니 여느 사업장처럼 조합원에 대한 회유와 협박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다만, 조합원들이 지치지 않고 창조적으로 파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지회 간부들의 몫이다. 기계별로 윷놀이같은 놀이프로그램도 진행하고 깃발제작, 교육 등도 병행한다.
그러나 회사쪽의 태도도 그리 녹록치 않다고 있다. 이상곤 전 지회장은 "우리가 무릎을 꿇던지 아니면 회사가 무릎을 꿇던지 할겁니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작업장을 나서는데 회사가 내건 표어가 눈에 들어왔다. '혼이 담긴 부품을 가공하자.' 그러나 노동자의 혼을 그렇게 쉽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본에게 노동자들이 진저리치는 건 필연일 뿐이다.
이상근 lsk530@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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