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현장]비비드광학 투쟁현장을 찾아서

"임금인상보다 더 소중한 민주노조 사수! 아줌마들이 지킨다"

정호선(노동자의 힘 회원)

대전 신탄진 공단 끄트머리에 천막을 치고 붉은 조끼를 입은 아줌마 부대들의 농성장이 있다. 대명광학이라는 사업장 앞에 처있는 농성천막의 주인은 비비드광학 노동조합.
7월20일자로 폐업처리가 되어버린 비비드광학을 떠나 이곳 대명광학 앞에 자리를 눌러앉았다. 비비드광학 사측은 회사폐업을 하기 전 7월 2일부터 18일동안 직장폐쇄를 하였는데 이는 당시 임단협 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비비드광학 노동조합의 투쟁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직장폐쇄가 노조의 투쟁을 잠재우기는 커녕 더욱 강고한 투쟁력을 확인한 사측이 마지막 갈때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칼을 드리대었는데 그것이 회사폐업이었다. 바로 위장폐업이다.
비비드광학의 위장폐업의 근거는 분명하다. 사장은 노조가 해산하면 회사를 재가동할 수 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내 안경렌즈 생산업체에서 내수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비비드광학은 회사설립 이후 12년동안 단 한번도 적자를 내본 적이 없는 알짜배기 기업이다. 폐업이 되었다고는 하나 채권단의 움직임도 전혀 없는 상태이다.
뭔가 뒤에서 대주는 제2의 배후가 있단 이야기이다. 그것이 대명광학이다. 대명광학 대표이사가 비비드광학 지분의 45%를 갖고 있고 비비드광학(구 대명케미칼)이 대명광학에서 분리되기 전에 대표이사는 같은 인물이었다. 비비드광학 노동조합을 와해하기 위해 두 회사가 합작으로 위장폐업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의 이번 임단협의 핵심쟁점은 사실 전임자 문제였다. 위원장의 월 5일만 전임을 인정했던 것에서 완전전임을 요구한 것을 사측은 끝내 거부하면서 이 참에 노조의 문을 닫지 않으면 회사 문을 닫겠다는 각오로 위장폐업까지 간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사실 결코 길지 않은 역사가 있다. 99년 8월에 설립된 비비드광학 노동조합(당시는 대명케미칼 노동조합)은 설립 이후 32일간의 파업투쟁의 승리 끝에 임단협을 체결하였고, 사측은 이 투쟁으로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하였다고 비비드광학이라고 회사 간판을 바꿔 달기까지 했다.
사측은 노조의 조직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일부 부서에 소사장제를 도입하여 대명광학으로 이동시키고, 소사장 자리에 계약직을 투입시켰다. 이때부터 자연퇴사한 조합원의 자리도 계약직으로 채웠고, 조합원 수도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2001년 노조의 임단협투쟁에서 계약직 일부를 정규직화하는 성과를 얻어냈고, 또한 계약직 인원을 전체 조합원의 25%로 제한하는 규정을 두게 되었다. 이 조항을 2002년 단협투쟁에서는 10% 제한으로 감축시키는 방안을 내놓은 바가 있다.
이번 노조의 요구는 임금 15% 인상, 상여금 100% 인상. 그러나 무엇보다 쟁점이 되었던 것은 임금도 상여금도 아닌 전임자 문제였고, 계약직의 정규직화였다. 이 문제는 결국 민주노조 사수투쟁으로 발전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싸움을 이끌어가는 것은 역시 조합원들이다. 남성조합원 3명에 나머지 모두 여성조합원으로 특히 아줌마들의 파워가 있는 노동조합인데 일상시기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조합원들의 투쟁력이 일단 투쟁에 돌입하면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한 여성조합원들은 말한다. '우리가 임금 15%를 요구하였는데 사측은 끝내 4% 인상안을 내놓았고, 전임을 거부하였다. 우리가 임금인상에만 안주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노조전임자만 따내면 임금안은 아무래도 좋다' 이러기 까지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노조가 있기 전 대명케미칼 당시 연월차 휴가도 눈치가 보여 제대로 못쓰고, 중간관리자에게 찍히면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하는 현장이었다. 하루 근무시간 마감이 5시 30분이지만 6시 30분까지 의무잔업이라는게 있어 무조건 따라야 했고, 연장잔업도 8시30분까지 2시간을 더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회사였다. 토요일도 평일과 똑같이 일을 해야 했고, 현충일, 식목일 같은 공휴일도 없었다. 휴식시간도 없었다. 통상임금도 없고 하루 일당제로 지급되는 임금을 받고 돌아가야 했던 사업장이다.
이곳에 노동조합이 설립되면서 이 모든 것이 개선되었고, 이렇게 되자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다.

아줌마 조합원들은 이번 투쟁과정에서 의식강화 교육을 시켜달라고 스스로 말하곤 한다. 그동안 너무 모르고 살아왔다고 하면서 말이다. 위장폐업에 맞선 투쟁, 어찌보면 앞이 보이지 않는 투쟁일 수 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표정은 여전히 밝다. 장기투쟁에 지친 모습보다는 민주노조를 사수해야 한다는 공통의 인식으로 하나가 되고 있다.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이라는 당장의 실리(?)앞에 노동조합 강화, 민주노조 사수라는 가치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현실, 집단의 이익보다 나 개인의 실리를 더 먼저 앞세우는 요즘의 추세에 이 투쟁에서 보여지는 조합원들의 의식과 단결력은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지금 지역에는 비비드광학 노동조합 투쟁을 사수하고 함께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공대위가 구성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투쟁을 사수하는 것은 임금보다 민주노조 사수, 노동조합 강화 정신을 사수하는 것이다. 단순한 투쟁지원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가치가 상실되고 무너지고 있는 현실속에 진주같이 지켜져야 할 우리 모두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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