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특구법안, 노동기본권 말살 예고

월차-생휴 폐지·파견근로 무제한 허용…노동계 강력반발 '경제특구법안'의 문제점 특정지역 이유로 노동보호 제외는 헌법권리·평등권 침해

경제특구법안, 노동기본권 말살 예고

재정경제부가 입법예고한 '경제특별구역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노동3권과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어 노동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재경부는 지난 8월19일 △경제특구에 입주하는 외국인투자기업에 유급 월차·생리휴가 적용 제외 △파견근로 기간제한 적용 제외 △파견근로자 사용시 노조와 사전협의 규정 제외 등 노동기본권 제약 내용을 담은 이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재경부는 "관련부처 협의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오는 10월 정기국회에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수도권 서부 송도신도시·영종도·김포 매립지와 부산 신항·광양항 부근에 지정될 경제특구 노동자들은 이 법을 적용받게 된다. 그러나 노동계와 법조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법제정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노총은 즉각 성명을 내 "법안은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외국기업을 필두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확대하려는 잔꾀"로 규정하고 "입법 저지활동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노총도 "외국인 투자기업에는 무제한의 노동착취를 가능케 하는 악법"이라며
반발했으며, 민주노동당도 "외국기업의 이윤보장을 위해 우리나라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도록 하면서 노동자의 고혈을 최대한 짜내겠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김갑배 노동위원장은 "오는 28일까지 법안검토와
자체회의를 거친 뒤 9월초까지 재경부에 의견서를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경부 뜻대로"…다른 곳에 적용될 수도

노동계가 '경제특별지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은 노동법에 규정된 최소한의 권리보호마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이 법안은 비정규직을 양산함은 물론 임금저하와 노조약화까지 부를 것으로 보여 단호한 대응이 요구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법규제 제외조항. 법안 9조 5항과 6항은 경제특구 입주 사업장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 57조(월차휴가)와 71조(생리휴가), 근로자파견법 5조(파견대상)와 6조(파견기간)의 적용을 제외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에 따라 월차휴가와 생리휴가가 폐지될 경우 임금이 저하되고 노동강도가 세질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또 파견대상 업무를 제한하는 파견법 5조와 그 기간을 최장 2년으로 규정한 6조를 무력화함으로써 모든 직종에 비정규노동자를 무기한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재경부의 이같은 의도가 관철될 경우, 파견노동자의 특성에 비춰 노조설립 자체가 사실상 가로막힘은 물론 설립되더라도 사용업주와 파견업주가 서로 교섭을 회피하는 등 활동제약을 불러올 것으로 우려된다. 사용업주가 파견업체를 선정할 때에도 '노조 유무'를 따질 게 뻔하다. 노조무력화에 따른 임금수준 저하와 노동조건 악화도 예상된다.

민주노총 권두섭 법규차장(변호사)은 "파견법 5조와 6조 적용제외는 파견법 전체를 무시하겠다는 의미"라면서 "특정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법 상의 보호조항 적용을 제외하는 것은 헌법적 권리인 노동3권과 평등권에 정면도전 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야말로 '노동법 적용 제외선언'이라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 법안 적용대상이 명목상 '경제특구'로 한정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국 사업장에 확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 법안 2조 1항은 '경제특별구역위원회'가 경제특구를 지정토록 하고 있는데, 이 위원회의 장을 재경부장관이 맡도록(23조) 하는 등 사실상 모든 권한을 재경부에 일임하고 있다. 지정요건 역시 △지역경제에 대한 파급효과 △교통망·용수·전력기반시설 공급수준 △기타 대통령이 정하는 사항 등 모호한 내용으로 규정해 재정부장관이 모든 권한을 휘두를 수 있도록 했다.

해당기업도 외국인기업은 물론, 외국인 투자기업까지 포함하고 있어 현실적으로는 모든 사업장에 문호를 개방한 셈이다.

나아가 경제특구 안에서 노동법이 무력화될 경우 다른 지역의 노사관계도 나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은 이밖에 외국인의 경영·생활여건 개선을 위해 구역 내 외국교육기관 설립과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개설도 허용하고 있다. 내국인이 외국인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으며, 내국인의 진학에도 문을 열었다. 서비스분야에 대한 시장개방에 대해 사실상 특혜를 주는 것이다. 앞으로 WTO등의 협상과정에서 이같은 전례가 불리하게 작용할 것임은 당연하다.

권두섭 차장은 이에 대해 "정책기획실과 법률원이 함께 법안을 검토해 의견서를 작성해 재경부에 전달하는 등 법제정 저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승철 keeprun@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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