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북한 핵무기 문제가 또 터졌다. 90년대 들어서 벌써 몇 번째인가. 출발은 1991~1992년일 것이다. 당시 걸프전 이후 기고만장한 미국은 합창의장이었던 파월(현 미국무장관)이 “다음 차례는 김일성과 카스트로다”라고 할 정도였다.
1994년 영변 핵위기 때는 한두 시간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전쟁의 국면을 벗어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1998년에는 금창리 핵위기가 조성되어 미국이 플로리다에서 BDU-38이라는 모의 핵탄두를 북한에 투하하는 핵전쟁연습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99년에는 미사일위기가 펼쳐졌다.
바로 올해는 벽두부터 ‘악의 축’ 전쟁위기가 진행됐다. 정작 이곳 한국 땅에는 ‘붉은악마’에 신들린 채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에 미국은 한국정부도 모르게 북한에 대한 비밀 전쟁계획을 입안하고 있었다.
정작 또 하나의 당사자인 우리는 어떻게 했는가. 1991년에는 국방장관이 엔테베 작전 운운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미국의 전쟁책동 앞잡이 역할을 하자는 식의 대응까지 나올 정도였다. 1994년의 경우는 전쟁직전인 6월초까지 전쟁 부추기기로 일관했다.
그러다 전쟁 초읽기 국면으로 접어들자 그때서야 제 정신을 차려 김영삼은 부랴부랴 클린턴에게 전화를 걸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전쟁은 안된다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미국은 미동도 하지 않고 전쟁프로그램을 밀고 나가 카터와 김일성 주석간의 긴급합의가 아니었더라면 전쟁은 필연적이었다.
남한 정부나 언론 등의 행위는 그야말로 반민족적이고 반평화적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정작 당사자인 미국 땅이 아니라 이곳에서 우리 남과 북이 공멸의 늪으로 빠져드는 데도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달라진다. 물론 여전히 미국은 그야말로 악의 제국이었지만 말이다.
금창리 핵위기에서는 비록 정상회담 이전이었지만 나름대로 중간자로서 역할을 해 베를린 합의를 이끌었다. 결과는 미국이 북한에 60만톤 정도의 식량지원을 하고 금창리에 사찰을 해 본 결과 인공위성 사진에서 제기됐던 핵무기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임이 증명됐다.
사진 하나로 전쟁을 일으키려던 미국의 전쟁 미치광이에 여전히 국내의 주류 정치세력이나 주류언론은 부화뇌동했다. 이 경천동지할 일을 벌린 막가파 미국과 꼭두각시 노릇만 자행한 국내 주류들은 사과나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미사일 위기 때 김대중대통령은 “미사일 문제는 북한 주권의 문제이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당장 미국은 한국 대통령이 이웃의 안보는 뒷전이라고 질타를 했고 이를 국내의 주류는 맞장구 치면서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다운 사이비한국인 짓거리를 자행했다.
‘악의 축’ 전쟁위기 때는 주류 중의 주류를 빼고는 정부나 민중시민단체가 제법 우리다운 목소리를 냈다. 6백~7백개의 사회단체가 ‘전쟁반대’와 ‘미국반대’를 전면에 내세워 전쟁의 불길은 잡았다. 여전히 미국은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번 여름 비밀전쟁계획을 입안하고 있었다.
이번에 불거진 핵문제 역시 핵무기 개발인지, 정말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인한 것인지, 우라늄 농축인지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한의 우라늄 등 핵개발은 발전용으로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핵개발과 핵무기개발을 구분하지도 않고 무조건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기정사실화하는 낙인론이 난무한다.
금창리 인공위성 사진의 엉터리 소동과 같이 확인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마치 북한의 핵무기개발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몰고 가는 미국정부, 미국언론, 이에 덩달아 춤추는 한국의 주류언론과 정치세력의 친미예속사대주의자들에 부화뇌동한다면 결과는 파국이다. 남과 북이 주인이면 주인답게 주도적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 109호] 10.28 ~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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