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선승인 틱 낫한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레 높아졌다. 그가 쓴 책들이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되더니, 그의 삶을 그린 기록물이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그의 책은 읽지 않았지만, 이 방송물은 나도 우연히 보게 됐다. 사실 나는 선승의 삶이나 말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이 방송물을 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보게 된 이 방송물의 어떤 장면들이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틱 낫한은 프랑스의 어느 시골에서 '공동체'를 꾸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의 삶을 그린 이 기록물에서 두가지 모습이 내게는 사뭇 인상깊게 다가왔다. 먼저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절이나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도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들은 신에게 복을 빌기 위해 그곳에 모인 것이 아니라 이 험난한 세상에서 각자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모인 것으로 보였다. 그 고요하고 평화로운 모습이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와 그 둘레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한적한 전원의 모습이었다. 그곳에는 모텔도, 카페도, 가든도 없었다. 심지어 전봇대와 전깃줄도 보이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보고 나는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우리나라는 전봇대 공화국이다. 도시는 물론이고 들판이나 뫼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봇대들이 제멋대로 들어서 있다. 크기로 보았을 때, 그 유형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첫째, 대형 송전탑이다. 소비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용량의 전력을 생산해서는 어마어마하게 큰 송전탑을 세워서 소비지로 보내는 것이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둘레에서는 이러한 송전탑 군단이 치달려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피해들이 전국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전혀 세우지 않고 있다. 둘째, 상당히 우람한 전봇대이다. 이 전봇대들은 어려서부터 보아온 낯익은 전봇대보다 3-4배 정도는 더 크다. 전력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예전의 작은 전봇대들은 이 우람한 전봇대들로 대체되고 있다. 위층으로는 고압전선이 이어지고 아래층으로는 저압전선이 이어지는 식으로 이용된다. 셋째, 예전부터 보아온 작은 전봇대이다. 이 전봇대들은 당연히 저압전선을 지탱하기 위해 세워졌다.
오늘날 전봇대는 그 이름처럼 '전보'를 보내기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선을 공중으로 치달리게 하기 위해 세워진다. 그러므로 전봇대가 마구 들어선다는 것은 우리의 머리 위에 전깃줄이 마구 늘어선다는 것을 뜻한다. 이로 말미암아 재산상 피해는 물론이고 건강상 피해도 이미 오래 전부터 곳곳에서 나타난 상태이다. 그러나 오늘도 전봇대는 곳곳에서 마구 들어서고 있다.
조금은 한가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마구 들어선 전봇대와 전깃줄은 경관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서울시가 전통한옥마을로 자랑하는 북촌을 가 보자. 골목마다 어지럽게 늘어진 전깃줄이 우리의 눈을 괴롭힌다. 부유한 압구정동이나 가난한 난곡이나 전깃줄 공해에 관한 한 똑같은 상태이다. 벼가 누렇게 익어 가는 황금벌판도 전깃줄 공해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전봇대며 전깃줄이 없는 경관을 보기란 너무도 어렵다.
집에서도 전깃줄은 보이지 않게 갈무리한다. 하물며 공유지를 전봇대며 전깃줄로 더럽히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이 나라에서는 전봇대를 없애고 전깃줄을 감추려 하지 않고, 오히려 애써 기른 가로수를 전봇대와 전깃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마구 잘라내고 있다. 초고속통신망 때문에 전깃줄 공해는 더욱 더 심각해지고 있다.
한전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한전의 경영층이야 이윤에 급급해서 그렇다 치고 공공성을 외치는 한전의 노조는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홍성태 (상지대 교양과, 사회학) rayhope@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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