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 연합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화상을 입은 아이가 고통에 겨워 울부짖고 있다. [출처 www.jordantimes.com]
꽃으로도 어린이를 때리지 마라고 했다.
작고, 약하며, 상처 받기 쉬운, 그리고 예쁜 백지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라크 땅에서는, 예쁜 백지가 피로 물들고 있다. 추악한 폭력 앞에 여린 살과 영혼을 드러내고 있다. 꽃으로도 맞으면 안될 아이들이 미사일의 금속 파편에 맞고, 거대한 불덩이에 화상을 입고, 산산이 부서지는 돌이며 유리 조각에 다쳐 죽어가고 있다.
24일 위성방송 알 자지라는 미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머리 뒷부분이 날아가버린 아이의 주검을 화면에 담았고, 그 사진은 외신을 타고 세계로 보내졌다.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한 어린이가 고통에 겨워 울부짖으며, 엄마의 품에 파고 드는 사진도 언론에 보도됐다. 엄마의 가슴 속은 더 깊은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이 사진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달리 표현할 필요 없이, 추악한 범죄이며 양민 학살행위임을 증언했다. (미국은 으레 그랬듯이, 전쟁의 ‘부수적인 피해’라고 말할 것이다.)
같은 날 ‘우리나라’ 국회 정문 앞에는 낯익은 얼굴이 모습을 나타냈다. 개그우먼 김미화씨였다.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 국회 비준을 하루 앞두고, ‘파병결정 반대 1인 시위’를 벌인 것이다.
김씨는 ‘엄마의 이름으로’ 그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그의 등 뒤에는 국회 의사당이 버티고 있었다. 웅장한 건물이 이날은 왜소해 보였다. ‘엄마의 이름’은 그만큼 컸다.
현실의 왜곡은 언어의 왜곡을 낳는다. 현실은 언어와 함께 병 든다. 어느 게 먼저랄 것 없이.
언제부터인가 백악관에서 ‘평화’ ‘자유’ , 이런 말이 흘러나오는 빈도가 잦아지면, 세계는 불안해 한다. 미국이 곧 전쟁을 벌이고 싶어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직감해서다. 백악관이 유난히 평화를 강조할 때 전쟁이 벌어졌으며, 자유를 외칠 때 저개발 국가들에서는 친미독재정권이 하나씩, 둘씩 세워졌다.
이번 전쟁의 작전명도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이다. 한데, 이라크 양민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미사일 세례일 뿐이다.
백악관의 언어는 역설을 넘어, 파괴로까지 치닫고 있다. 그들이 유난히 즐겨 쓰는 ‘선과 악(good and evil)’의 수사 또한 전도된 가치를 강요한다.
오죽하면 지난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통해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을 한 것과 관련, 작가 노먼 메일러가 이런 말을 했을까.
“나는 10분 동안 ‘악(evil)’이라는 단어를 무려 열 여덟 번이나 사용하는 사람은 신뢰하지 않는다.”
언어의 왜곡, 파괴는 25일 우리의 국회 의사당에서도 그 힘을 발휘할지 모른다.
이른바 ‘국익’의 이름으로….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국회의원의 수를 어쩔 수 없이 산술적으로나마 헤아려보면, 우리나라는 결국 추악한 전쟁에 가담하게 될 것 같다.
파병을 옹호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국익’은 한·미 동맹관계, 그리고 국제사회의 역학관계라는 현실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마디로, “외교는 명분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파병 불가피론자’들은 우선, 대적할 곳 없는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그토록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침공이 유엔의 승인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현실이 따라가기에도, 유래 없을 만큼 명분이 부족한 바로 그 ‘현실’에 눈 감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이 ‘이라크-알 카에다 연루설’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 보유설’을 집요하게 퍼뜨렸지만, 끝내 입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라며 침공 명분을 새롭게 내세웠지만, 미국이 특히 남미에서 독재정권을 지지하거나 또는 수립하도록 지원한 사례들에 비추어 그것 또한 명분이 없다는 건 해묵은 진실일 따름이다.
그래서 ‘명분이 아닌 현실’을 들먹이는지 모른다. 이들이 첫째로 내세우는 현실이라는 ‘동맹 관계’를 보자.
아마 1953년에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근거로 한 것일 터이다. 이 조약에서 특히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대한 공동방위’ 조항을 내세운 듯하다.
미국이 ‘외부로부터 무력 공격’이 없는 상태에서 침략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는 잘 알려진 바대로 ‘예방 전쟁’이라는 개념 하에, 자의적 결정에 따라 ‘잠재적’ 위협 국가를 선제 공격할 수 있다는 ‘부시 독트린’에 바탕을 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전쟁에서 우리나라가 백번 양보하더라도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해 ‘동맹국의 도리’를 할 ‘현실적’ 필요도, 명분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백한 침략전쟁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헌법 제5조 1항)
헌법 조항이 틀린 게 아니라면, 파병 결정을 한 노무현 정권과 이를 승인하려는 국회의원들은 파병 불가피론 또는 현실론을 내세우며, ‘위헌 선언’을 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국익’은 그래서, 곰곰이 짚어보면 실체가 없다. 80%에 이르는 국민이 반대하는 전쟁에 참전하겠다는 건 국민의 '국익'일 수 없다.
기껏해야 “아마 그러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가 고작이다. ‘거래’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거래는 명분도, 현실도 아니다. 파병은, 반인륜적 범죄의 공범자가 되겠다는 선언일 따름이다. 이미 미국의 이라크 침공, 아니 침략을 지지할 때부터 정권은 국제 범죄의 대열에 들어섰다. 국회로부터 파병 승인까지 받게 된다면, ‘전범’이란 손가락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25일, 국회에서 파병 결의안을 통과시킬 '듯한' 의원들에게 부탁한다.
끝내 그 범죄 선언을 통과시킨다면 당신들은 앞으로, 정치인의 이름을 가질지라도 아빠와 엄마의 이름은 버려야 한다. 그 이름으로는 어떤 행위도 하지 마라고 충고한다.
내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이라크의 아이들을 죽였다는 자책에서 잠시도 벗어나지 말기를 바란다. 이라크 사막에서 직접 미사일을 발사하고, 총을 쏜 미군, 그리고 영국군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 고맙겠다. 평화라는 말은 제발 떠올리지 말기를.
당신들은 앞으로도 필요할 때마다‘국익’을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당신들의 얼굴에서, 이라크에서 죽어간 아이의 떨어져 나간 머리를, 화상의 고통으로 울부짖는 아이와 그보다 더 아파하는 엄마를 기억해 낼 것이다. ‘국익’이란 악취 나는 말을 떠올리며….
우리는 ‘엄마의 이름’을 ‘현실’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던 누추하고 왜소한 국회 의사당을 잊지 않을 것이다.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될 아이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한 당신들이 누구인지, 내 아들에게 상세히 알려줄 것이다. 엄마의 이름으로, 아빠의 이름으로.
Georeport 유만찬 geo@georepor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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