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 미디어 다음.
중동 지역의 끊임없는 분쟁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지역의 분쟁 원인이 이들의 종교적, 민족적 갈등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사회 시간이나 세계사 시간에 그렇게 배워왔고, 각종 언론을 통해서도 그것을 진실이라 여기도록 학습되어 왔다. 이러한 시각으로 중동 지역의 분쟁을 보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나 레바논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같은 것은 모두 종교 때문에 인류의 평화공존에 금을 가게 만들고,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철부지 국가들의 싸움이 되고, 이에 대한 미국, 영국 등을 비롯한 각국의 개입은 이들의 철부지 싸움을 중단시켜 주고, 세계 평화와 인류의 평화공존을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이 된다.
우리는 6.25 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6.25가 어디 '우리 민족끼리 못 잡아 먹어 안 달이나서' 발생한 전쟁이었던가.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개입은 우리 민족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것이었던가. 오늘, 중동의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 없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국제 정치에서 전략상의 요충지는 그들 내부의 문제와 별개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고, 결국 전쟁 당사국 중 어느 편이 승리하던 간에 그것은 진정한 그 국가의 승리일 수 없다. 역사적 사실들을 살펴보면 1,2 차 세계대전 이후 주요 요충지에서의 전쟁은 곧 세계적 패권국이 누가 되는지를 결정하는 전쟁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이라크에 쿠웨이트 침공 이후의 죄가(罪價)를 계속 물어야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 후세인을 뿌리채 뽑아내지 않는 이상 그가 언제 또다시 쿠웨이트 침공과 같은 전쟁 도발을 함부로 해댈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모르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여전히 원조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는 누구나 미국의 이와 같은 변명이 그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명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미국과 영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전쟁을 강행한 것은 그들이 이번 전쟁의 성사 여부에 따라 또 한번 세계의 진정한 패권국이 누구인지를 증명하게 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똑같이 국제 정치 전략상의 요충지이며, 아직까지 냉전 역사의 연장선 상에 있는 한반도의 미래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기획은 이와 같은 판단속에서 기획되었다.
지금, 중동의 역사와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현재의 상황과 이후 국제 정치 지형을 전망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한반도의 선택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결정 근거를 제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동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
기획을 시작하기에 앞서 중동 역사에서의 주요 쟁점과 현 정세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는 몇가지 사실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걸프지역
세계 원유 확인 매장량의 53%가 밀집한 곳이며, 천연 가스도 약 23%가 매장된 것으로 확인된 세계 에너지 공급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 레바논, 터키, 이집트, 파키스탄 등이 근접해 있다. 걸프 지역 국가들은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약 34%를 차지하고 있으며, EU와 일본 등에 석유 수입량의 반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미국도 석유 수입량의 약 10% 이상을 걸프지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으며, 한국도 석유 수입량의 약 70% 이상을 걸프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과 이라크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란과의 전쟁 후에 막대한 경제적 소실을 입은데다 전후 복구 문제가 심각한 상태였다. 게다가 친미 성향의 사우디 아라비아와 쿠웨이트가 증산을 하여 유가를 폭락시켜 이라크 경제에 타격을 가하자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병합할 전략을 세우고, 미국과 정치적 선을 그으며 독자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반면, 미국은 세계 제 1위의 화학 무기 소유국이며, 따라서 세계 화학무기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갈수록 커지는 이라크의 군사력을 막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유가 속에서 세계 제 1의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눈치도 보아야 했다.
이들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 결정적인 원인은 1990년 2월 후세인이 아랍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군대와 함대가 중동에 주둔하고 있는 것을 비난하면서 미국이 유가를 농락하고 있다고 연설한 데 있다. 미국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 직전 대 이라크 무역금지 조차를 통과시켰으며, 후세인의 화학 무기 조성설을 본격적으로 퍼뜨리면서 후세인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기 시작한다.
영국과 쿠웨이트
오스만 왕조 당시 쿠웨이트는 바스라 주에 소속된 이라크의 일부였다. 1897년 바스라 주지사 무흐신 파샤는 쿠웨이트의 족장 무바락 알 사바에게 쿠웨이트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그 후 영국이 이 지역에 식민주의적 패권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영국의 입장에서 볼 때 쿠웨이트 지역은 정치적,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무역 통로였다. 또한 쿠웨이트 역시 엄청난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영국은 쿠웨이트에 영향력을 강화하여 인위적인 국경선을 그었다. 1899년 영국은 쿠웨이트를 보호령으로 선포하고 이 지역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지방 토호에 불과했던 사바족을 왕가로 만들었다. 이후 쿠웨이트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은 이라크와 쿠웨이트 간의 국경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사바 왕가는 막대한 석유 수출을 바탕으로 호화 생활을 하였다.
시오니즘과 아랍 민족주의
로마의 박해를 받았던 기독교는 밀라노 칙령 이후 힘을 얻어 유럽 전역에 확장되고, 이후 비기독교인들에 대하여 박해를 가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들을 야만시하고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으로 간주함으로써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하였다. 이는 십자군 전쟁을 경과하면서 더욱 강화되었고, 유대인들은 이러한 박해 속에서 자구책을 강구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그들만의 끈끈한 연대로 세계 곳곳에서 경제 주요 영역에 파고들어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이후, 독일 군부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드레퓌스를 주요 문서를 넘긴 범인으로 지목한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박해받는 유대인을 위하여 신문 기자 테오르드 헤르젤이 유대 국가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시온주의가 태동하게 된다.
이들은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을 자신들의 '유대 국가 건설지'로 지목하고 본격적인 운동을 펼치는데, 이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은 영국의 '벨포어 선언' 이다. 영국은 1차대전 당시 이탈리아를 적극적으로 참전시키기 위하여 프랑스, 이탈리아와 교섭을 가지고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 향토를 재건한다는 원칙에 승인한다"는 내용의 '벨포어 선언'을 한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이미 '벨포어 선언' 3년 전인 1914년, 오스만 제국과의 싸움에서 아랍인들을 이용하기 위하여 아라비아의 태수 후세인에게 아랍국가의 독립을 약속하는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한 바 있었다. 이후 영국과 미국 지원 하에 진행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세는 아랍 민족주의 강화의 계기가 되었으며, 이것이 이후 중동 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총 4회의 기사를 연재한다.
중동, 격전의 역사와 세계의 질서 재편(2)
- 중동 지역 주요 분쟁의 배경과 영향 1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스라엘-시리아 분쟁, 레바논 분쟁
중동, 격전의 역사와 세계의 질서 재편(3)
- 중동 지역 주요 분쟁의 배경과 영향 2
: 이란-이라크 분쟁, 이라크-쿠웨이트 전쟁, 미·영-이라크 전쟁(걸프전)
중동, 격전의 역사와 세계의 질서 재편(4)
- 현 이라크 전쟁의 의미와 향후 국제 정치 지형의 변화 전망
중동, 격전의 역사와 세계의 질서 재편(5)
- 이라크 전쟁과 한반도의 선택.
틈새 / 문화사회 편집위원 rebel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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