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제가 끝나고 이현중 이해남 열사 묘역 참배길에 박종필 금속노조 베스콘지회 지회장의 차에 동승해 현재 세원테크의 상황과 지난 과정들에 대한 기억, 총파업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세원테크노조 설립 당시부터 지역 연대가 왕성했던 만큼 박종필 지회장 역시 세원테크와 짧지 않은 투쟁의 연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세원테크와 열사에 대한 이야기들 하며 말문을 멈추기도, 눈시울 붉어진 눈을 연신 깜박이기도 했다.
![]() |
세원테크노조 파괴 3인 중 한 사람인 정상민 이사가 올 초 어용노조가 뜬 이후 다시 예전처럼 현장에 복귀했다. 그리고 잔인한 보복이 시작되었다. 복귀당시 20여 명이던 조합원들 중 현장 탄압과 생계 등의 이유로 떠난 조합원 말고 10명 정도가 현장에 남았다. 회사는 열사 합의를 무시하고 부지회장을 해고하고 조합원을 징계했으며 일방적으로 작업 전환 배치했다. 세원테크는 지금 2001년 노조 설립 이전의 무법천지로 돌아가 극심한 현장통제를 자행하고 있다. 그리고 예전 구사대들이 활개치고 비정규직도 90여 명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남아있는 조합원들은 수적 열세와 3년간에 걸친 투쟁의 피로도, 그리고 두 분의 열사를 무참히 보냈다는 죄책감으로 움츠러져 있다. 해고된 조합원, 동지들과 열사회를 중심으로 추스르고 있지만 2001년부터 워낙 혹독한 탄압을 당해 쉽지가 않은 상황이다. 장기적 관점으로 길게 잡고 가야한다. 어떻게든 지역과의 연대 속에서 세원테크에 열사의 염원인 '민주노조' 깃발을 다시 세워야 한다.
어용노조 등장 이전 상황을 알고 싶다
작년 12월 합의 이후 현장에 복귀 했지만 2달 가까이 파업 동참 조합원들을 현장에 배치하지 않고 잡일에 동원했다. 스스로 나가 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다 반발이 심하자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어 어용노조를 심으려는 작업을 시작했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구사대 역할을 했던 명목상 조합원들(세원테크는 유니온 샵이다)이 수적으로 압도적인 상황이었다. 열사투쟁의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총회를 소집했다. 세원동지들도 어쩔 수없이 선거기간을 최대한 늘리고 구사대 중 동요자나 수동자들을 중심으로 내부 작업을 진행했지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어용노조는 두세 달 정도 명목상 지부 운영회에 나오기도 했다. 그 집행부 간부들은 이전에 반조직적 행위로 금속노조 제명건에 상정되었다가 재심청구로 유보되어 있던 자들이었는데, 금속노조에서 징계회부를 하려하자 이를 빌미로 금속노조를 탈퇴했다. 탈퇴 결정에 회사가 개입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총회 저지 투쟁을 하러 지부에서 선전전 등을 진행하려 했는데, 세원물산과 세원정공 등 세원 관리자들이 올라와 총회장소를 에워싸고 총회 투표마저 기명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까지 세원테크의 노동 통제가 극심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탄압이 거세면 조직 보존의 변명 등으로 적당히 타협하려는 일들도 다반사인데 세원테크 동지들은 원칙적으로 철두철미하게 투쟁했다. 그리고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연대 투쟁에 언제난 헌신적으로 임했다. 세원테크 자본은 이런 타협없는 원칙적인 투쟁을 아예 송두리째 뽑아버리려는 것이다.
오늘 추모제를 지켜보던 심정은 어떤가
짠하고 안타깝다. 열사들 볼 면목이 정말 없다. 지역에서는 누구도 세원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 애기 나오면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다. 공동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감정적 책임 말고 실제적 과정의 책임도 통감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2001년 지역 연대 파업 까지는 잘 갔다. 2002년, 전년도 합의가 이행되지 않으면서 공장진입과 점거 투쟁이 벌어졌을 때 점거투쟁이 전술적으로 합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물론 필요한 논쟁이었지만 그 논쟁이 소모적으로 길어지면서 정작 현장의 투쟁에 힘있게 함께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당시 세원자본은 하다못해 집회, 노래, 구호를 부르는 것까지 가처분 신청으로 묶어놓고 있어서 파업을 시작했지만 손발이 모두 묶인 상황이었고 물량 이원화까지 진행된 상황이었다. 세원 동지들은 어쩔 수없는 마지막 선택으로 점거농성을 택했던 거고 그조차 지역에서 못 받았기 때문에 미루다 늦춰졌다. 공장 점거 같은 투쟁은 시의 적절한 배치가 중요했는데 그 시기를 놓치고 그 결과로 이후 투쟁에 그렇게 힘들게 진행된 부분이 있다고 본다.
맞고 틀리고는 추후에 판단하더라도 당장 싸우는 동지들과 연대를 우선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세원이 그런 시련들을 겪었던 게 아닌가 후회가 남는다. 그랬다면 혹 두 분의 열사를 안 보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죄스러움이 있다. 이런 내 개인적 평가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지역에서는 그 누구도 세원테크의 투쟁에 대해 자유롭지 않다.
두 열사와 개인적 친분도 있었나
2001년 노조 설립 당시부터 이현중 이해남 동지를 알고 있었다. 함께 교육하고 농성도 했다.
이해남 지회장은 워낙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수배 받았을 때 한 번 만나 점심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게 열사 분신 2주 전이다. 그 때 “세원은 탄압이 하도 심해서 누구 하나 죽어야 해결 될 거다”라고 말했는데 무심코 흘려 들었었다. 그게 아직도 마음에 많이 아프다.
배달호 열사를 시작으로...작년에는 정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올해는 어떤가
궤도부터 LG 칼텍스노조 까지 노무현은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를 운운하며 이데올로기 적으로 철저히 준비해서 이제 정말 파렴치한 노동법 들고 싸움을 시작했다. 제대로 대치선을 못 잡고 일부의 노사정위 환상에 대해서도 깨지 못했다. 너무 늦게 방향을 잡은 거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공무원 파업 때 총파업 들어갔어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최대한 공무원 투쟁과 총파업을 분리시키려 했다. 이미 총파업 찬반투표가 가결된 상황에서 실천적으로 싸우는 단위에 대한 융단 폭격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투쟁과 총파업을 분리하고 26일로 총파업을 박은 것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대부분 대공장이 주 5일인데, 금요일에 총파업에 돌입하면 그 다음 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리 늦어도 다음 주 월화에는 돌입한다는 계획으로 일정이 준비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작년 근기법 개악 때 힘 한 번 못쓰고 돌아서면서 각 사업장 별로 열심히 단협 하자고 했지만 올해 대공장에서도 대부분 그 개악안 결국 다 받게 되지 않았나. 작년 상황이 재현되지 않을 지 걱정이다.
총파업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금속은 간부파업을 잡든 뭘 하든 시작은 할 거다. 물론 그 대오가 강력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후 얼마나 제대로 다른 연맹의 동력이 붙느냐에 달려있다.
현실적으로 파업 일정이 떨어지면 돌입한다는 동의 외에, 선전전을 돌리고 교육을 해도 조합원들이 파견법이 정규직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을 피부로는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유라고 보는가
민주노총이나 금속이 비정규문제는 구호에 그쳤다. 임단협 요구안에 비정규 요구안이 늘 있었지만, 실제로 비정규를 조직하고 정규직을 설득해서 함께 싸우는 과정이 거의 없었다. 깨져도 그렇게 훈련되는 과정들을 통해 비정규 문제를 체감하는 기회가 없었던 거다.
참고로 우리 사업장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을 제외하고는 비정규직이 없다. 3년에 걸쳐 파견, 아르바이트 까지 정규직화 했다.
작년에는 미조직 영세 노동자들에 대한 근기법 공격이었다. 이제 파견 확대로 정규직 발등에 불이 떨어져 투쟁을 배치하지만 현장에서는 앞서 말한 훈련의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못 믿고 정규직은 비정규 문제라는 것 자체를 자신의 삶 속에서 못 느끼는 거다.
그만큼 민주노조 운동이 퇴행했다는 거고 이 싸움 놓치면 노무현에게 날개 달아주는 거라는 것 뻔히 알지만 그 위기의식이 현장으로 관철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