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여성행진에 함께 하자"

[여성행진]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의 의의


여성의 가정 '안'과 '밖'에서의 노동

현재 한국의 여성들은 전쟁을 동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더욱 심한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IMF 당시보다 더 먹고 살기 힘들어진 지금, 여성들은 부족한 가계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하고 있다. 대다수 여성들은 저임금-불안정한 일자리에 시달리고 있다. 여성들은 소위 가정 '밖'에서 노동을 해도 항상 가정'안'에서도 육아, 자녀교육, 보살핌 등과 같은 노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노동은 으레 여성들이 해야 하는 일로 치부되고 여성들에게만 부당하게 할당되고 있다.

최근에 정부가 여성인력 활용한답시고 내놓은 여성 일자리들이 죄다 아이들을 돌보고 아프고 나이든 사람들을 돌보는 것과 관련한 일들이다. 여성들이 그 동안 집 '안'에서 해왔던 일들을 이제는 집 '밖'에서도 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보육과 간병 등의 일이 사회적으로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그것을 여성들에게'만', 그것도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서, 강요해선 안 된다.

여성이여! 아이도 낳고, 가사노동도 하고, 생계도 책임져라

노무현 정부는 재생산 노동의 일차적 책임자이자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유연한 노동력으로서 여성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여성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여성인력의 계발과 활용",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으로 표현되는 여성정책의 기조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펴는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시대 남성 혼자 생계를 부양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이 자리잡고 있다.

사회 유지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여성을 동원해서 위기를 해결해보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담당하던 여성들이 이제는 '저출산-고령화'로 표현되는 재생산의 위기를 극복할 '인적 자원'으로 호명되고 있다. 2004년 제정된 건강가족기본법은 자녀양육과 노인부양의 역할을 수행하는 가족 형태를 '건강가족'으로 장려하고 이러한 형태의 가족에 한정하여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은 여성들이 이혼을 선택할 권리보다 가족을 지킬 의무를 더욱 강조하며, 출산·양육에 대한 책임은 강조하는 반면 피임에 대한 지원은 포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 정부는 각종 출산장려책을 제시하며 출산과 양육에 대한 여성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양성평등의 실현’을 목표로 내세운 ‘여성부’가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옹호하고 재생산의 일차적 책임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여성가족부’로 재편된 걸 보면,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대응을 여성정책의 일차적 목표로 삼는 데에 따른 일련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고 여성의 발전을 꾀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은 노동의 불안정화에 조응한 ‘빈곤의 여성화’를 정당화하거나 관리하려는 시도이고, 여성의 권리를 축소하면서 이중적인 의무는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적확하게 비판되어야 한다. 주류 여성운동 진영이 이러한 것들을 비판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조응했던 지점들 또한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은 이런 현실에서 여성들의 진정한 요구와 권리가 무엇인지를 모색하고 제기하고자 한다. 여성행진은 여성들이 진정으로 가져야할 권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운동이 필요한지를 모색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불안정한 삶과 노동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여성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권리, 자신의 몸을 자신이 통제하고, 결혼, 출산 등과 같이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권리, 나아가 여성이 온전한 권리를 가진 당당한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어떤 투쟁과 운동이 필요한지 밝혀나가는 기나긴 길의 시작이 될 것이다.

여성들을 신자유주의 하에서 활용하고, 결과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심하게 제약하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여성운동의 공동 행동과 연대는 더욱 절실해진다. 하지만 그동안 적극적인 계기를 마련하지 못했던 게 안타까운 현실이고, 여성들의 투쟁과 사안을 갖고 여성들을 주체화하고 조직화했던 경험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행진'은 전세계 릴레이 여성행진을 계기로 여성들의 다양한 요구를 모아내고 확산하는 행동을 조직하고, 이 행진에 동참하는 전 세계의 여성들과 연대를 형성하고자 한국에서의 여성행진을 제안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세계화반대 여성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학생연대회의, 광주민중행동이 공동행동 준비모임을 구성하여 초동모임을 갖고 제안을 하게 되어 현재 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모임, 문화연대, 빈곤사회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장애여성공감 등이 모여서 여성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7월 3일 여성행진에 함께 하자"

7월 3일 헌장과 퀼트가 한국에 도착하는 날 진행하게 될 '7·3 여성행진'과 10월 17일 각국에서 정오에 열리는 투쟁들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커다란 활동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토론회와 순례 행진, 선전전, 간담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7월 1일 세계여성행진 아시아지역을 담당하시는 필리핀 분이 오셔서 진행하는 토론회와 6월 30일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바탕으로 성매매여성들과의 연대를 모색하고자 하는 토론회가 준비 중에 있다. 내일부터는 전주, 새만금, 광주, 대구, 부산 지역 등을 순회하며 여성행진의 의의와 사업 등을 제안하고 논의하는 전국순례단 계획도 진행할 계획이다.

아직은 '여성행진'이 미약한 흐름이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연대와 투쟁의 절실함에 공감한다면, 그리고 이런 여성들의 투쟁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불러온 파괴적인 영향에 대한 저항으로 보편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할 과정이다. 7월 3일 마로니에에서 빈곤과 폭력에 맞서서 여성들의 권리를 밝히고 쟁취하려는 활기차고 중요한 투쟁을 함께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