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세력, 역사적 사실과 주관적 평가 구분 못해”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 ‘6.25는 통일전쟁’은 그 자체로 역사적 사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에 대한 강정구 교수의 주장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지난 15일 배제학술지원센터에서는 5개(교수노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학술단체협의회, 한국산업사회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교수·학술단체들 주최로 ‘국가보안법과 강정구 교수 필화 사건’이라는 제목의 학술토론회가 개최됐다.

‘학문의 자유와 국가보안법’, ‘언론자유, 그 화려한 신화와 우울한 현실’, ‘역사연구의 역사추상형 접근방법: 가치중립적 연구와 이데올로기적 공격’, ‘분단과 전쟁에 관하여’ 등 총 4개 주제발표와 토론으로 구성된 이날 토론회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강정구 교수의 논의를 진지하게 검토해보는 한편, 현재의 국가보안법이 학문의 자유를 어떻게 침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진단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토론회에 앞서 김상곤 교수노조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참담한 심정으로 토론회를 준비했다”며 “현재의 상황은 단순히 강정구 교수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닌 진보진영에 대한 보수세력의 총공격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세균 민교협 공동의장은 “다른 사람의 사상과 철학을 보장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명제라고 할 수 있다”며 “오늘의 보수세력들은 그들이 외치는 자유주의와도 배치되는 주장과 행동들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학문, 사상, 연구의 자유와 국가보안법이 도저희 양립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며 “지겨워서 더 이상 논의하고 싶지도 않다”는 역설적인 말로 현 상황을 바라보는 소회를 밝혔다. 이어 김세균 공동의장의 말을 이어 받은 안병욱 카톨릭대학교 교수는 “이제는 이 지겨운 국가보안법도 끝날 때가 되었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김정인 교수, ‘학문의 자유’의 ‘침해’에 ‘침묵’하는 학계

첫 발표자로 나선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학문의 자유와 국가보안법’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리영희, 서관모, 이장희, 최장집, 송두율 교수 등 국가보안법에 의해 학문의 자유가 침해된 사례들을 짚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학문의 자유’의 의미와 그 실현 방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전개했던 흔적을 찾기 어렵다”며 “다만, 이번 강정구 교수 사건처럼 학자가 소위 ‘시국사건’의 당사자로 등장할 때, 수면 위에 부상했다가 이내 잠수하기를 반복해왔을 뿐”이라며 ‘학문의 자유’에 대한 학계의 척박한 논의 수준을 지적했다.

김정인 교수는 또 “강정구 교수 사건의 경우처럼 학자가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발표할 자유를 명백히 침해당한 경우에도, 그를 결코 인신구속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당당하게 표명하는 학자들이 의외로 적다는 현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학문의 자유’의 ‘침해’에 대해 ‘침묵’하는 학자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김정인 교수는 그 일례로 서울대 송호근 교수의 칼럼(중앙일보 12일자, ‘민교협, 그리고 강정구 교수께’)을 언급했다. 앞서 송호근 교수는 중앙일보 칼럼을 통해 “학문적 자유를 방패막이로 하려면 우선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강정구 교수와 민교협의 논리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학문의 모양새를 갖췄다고 해도 사회적 발언은 항상 이데올로기적”이라며 “강정구 교수의 발언도 따라서 이데올로기적이고, 무엇엔가 봉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송호근 교수는 “이념적 혐의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양쪽을 같은 거리에서 보는 것”이라며 ‘학문의 자유’를 누리기 위한 ‘객관성 확보’를 강조한 바 있다.

"‘객관성 확보’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

이 같은 송호근 교수의 주장에 대해 김정인 교수는 “진리의 상대성을 인정하면서 개별 학자의 학문적 성과를 최대한 존중하는 안목 대신에 학문의 자유에 관한 전통적 논의에서는 거론되지 않는 ‘편향되지 않는 객관성’이라는 가치를 주장하고 있다”며 “이는 양쪽을 같은 거리에서 본다는 것은 곧 양시양비론을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또 “우리 사회에서 학문의 자유를 가늠하는 잣대로 평가되고 있는 ‘객관성’은 진리 혹은 학문의 객관성이 의심받거나 부정되고 있는 학문적 현실에서 볼 때, 오히려 진리의 상대성을 존중하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라고 송호근 교수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정인 교수는 이어 “상식적인 학자의 눈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은 ‘진리는 오로지 하나 뿐이다’라는 교조주의에 빠져 명백히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 사건으로 학문의 자유 혹은 교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학자들은 강정구 교수의 처벌에 단호히 반대해야 마땅하다”고 역설했다.

김정인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번 강정구 교수 사건을 계기로 레드 콤플렉스로부터도, 국가보안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생산적 논쟁이 전개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넌센스 정국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학문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전규찬 교수, “‘공중의 적’을 끊임없이 출연시켜야 하는 전체주의적 욕망의 문제”

이어진 발표에서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강정구 교수를 빌미를 보수언론들이 전방위적 이념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교수의 논의를 ‘언론행위’로 규정한 뒤 “신문과 방송은 바로 권리와 실천을 사회적으로 용이하게 매개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그런데 바로 이들 매체 중 일부 수구적인 것이 강 교수를 빌미로 해서 언론 자체에 대해 문제를 삼고 나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전규찬 교수는 이어 이번 사건이 비단 강 교수만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두려움 없이 말하는 이들을 집요하게 추적해 고발하고 처벌하며 거세함으로써 ‘안전’을 도모하는 체제의 집착증이 문제”라며 “우리를 ‘국민’으로 동원하기 위해 ‘공중의 적’을 끊임없이 출연시켜야 하는 전체주의적 욕망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조선, 중앙, 동아, 문화일보 등 4개 신문이 ‘사각동맹체제’를 구축하고 강 교수에 대한 집중공격을 퍼붓고 있는 반면, 진보적 매체들은 대항담론 형성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돈문 교수, "‘사회주의-통일국가 건설이 더 바람직한가’ 질문은 가치판단과 이데올로기의 영역"

세 번째 발표를 맡은 조돈문 카톨릭대 교수는 해방공간 연구에서 강정구 교수가 취하고 있는 ‘역사추상형 비교방법론’(반사실적 실험)의 의미를 짚었다. 조돈문 교수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물음들은 ‘역사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라는 사실적 물음과 ‘무엇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라는 반사실적 물음으로 요약된다. 그는 반사실적 실험이란 “특정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또 특정 변인이 다른 값을 가졌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한 연구라고 지적했다. 즉 강정구 교수의 해방공간에 대한 연구는 ‘미국’이라는 특정 ‘변인’을 제거하고, 이후 역사의 전개과정을 추론해보는 연구라는 얘기다.

조돈문 교수는 “반사실적 실험은 인과관계를 규명하고 역사적 변인들의 영향력과 의미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라며 “강정구 교수의 역사추상형 비교방법은 인과관계 설명을 넘어서고, 역사전개에 대한 평가의 기준을 추출한다”고 설명했다.

조돈문 교수는 역사추상형 비교방법론을 바탕으로 한 강 교수의 연구목적에 대해 “외세 개입으로 △자주적 통일국가 수립 △식민잔재 숙청 △토지개혁을 포함한 민중권익 실현 △민주사회 구현 등 민족사적 핵심과제가 실현되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민중성과 민족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짚었다.

조돈문 교수는 또 “반사실적 실험은 인과관계를 규명하고 특정 사실의 역사적 의의를 추론하는 가치중립적 연구방법”이라며 “예컨대, ‘사회주의-통일 국가 건설이 더 바람직한가’, ‘자본주의-분단국가 건설이 더 바람직한가’와 같은 질문은 가치판단과 이데올로기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봉 교수, "분단의 원흉은 미국, 그리고 신탁통치안 받은 소련"


이어 발표자로 나선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는 ‘분단과 전쟁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분단의 원인과 과정, 한국 전쟁의 성격과 배경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우선 국토분단에 대해 “국토 분단의 원흉은 38선을 제안한 미국과 그것을 받아들인 소련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봉 교수는 체제 분단에 대해서도 “신탁통치안을 1943년부터 먼저 제안한 쪽은 소련이 아닌 미국”이라며 “해방 정국에서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원하는 조선에 대해 될수록 오랫동안 신탁통치를 실시하면서 사회주의 대신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친미 정부가 들어서도록 하는 미국 측의 계산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소련은 이미 그냥 둬도 사회주의국가 수립이 뻔한 조선에 굳이 신탁통치를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며 “따라서 소련은 미국의 신탁통치안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꼭 실시해야 한다면 그 기간은 짧을수록 좋고,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임시 정부를 세우도록 하고 그를 4대국이 후원하는 ‘후견제도’를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재봉 교수는 이 부분에서 소련의 의도를 정확히 짚었다. 그는 “미국은 4대국의 신탁통치를 내세워 조선의 자주 독립을 늦추려고 했던 반면, 소련은 조선의 자치 정부를 앞세워 즉각 독립을 추진했다는 관점에서 우리는 자칫 반미 친소 감정으로 흐르기 쉽다”고 지적한 뒤 “방법과 과정이 달랐을 뿐, 어떻게 하면 이 땅에 자국에 의존적이거나 종속적인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은 미국이나 소련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했다.

"6.25는 내전, 1948년 북한의 정통성은 남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

한편, 이재봉 교수는 한국전쟁의 성격과 관련해 강정구 교수의 ‘6.25는 내전’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강정구 교수는 그간 한국전쟁은 ‘유엔의 승인이라는 국제적 기준에 의하면 북한이 별개의 주권 국가로 승인되지 않았으므로 내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이재봉 교수는 “국가의 정통성을 따지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며 “국제 사회의 승인뿐만 아니라 이전 정권과의 연계성 여부, 당시 나라를 세운 지도자들의 경력과 능력, 당시 인민들의 지지도 등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국가의 정통성을 당시 지도자들의 역할이나 인민들의 지지도에 초점을 맞춘다면 1948년 북한의 정통성은 남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며 “따라서 6.25는 내전이라기보다는 국제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6.25는 통일전쟁이자 침략전쟁”

또 이재봉 교수는 보수언론들이 강정구 교수의 발언 중 핵심적으로 문제를 삼고 있는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한국전쟁을 둘러싼 성격 규정에 대해 “6.25는 통일전쟁인가, 침략 전쟁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일축하며 “결론만 말하자면, 6.25는 통일전쟁이자 침략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이재봉 교수는 “통일은 여러 가지로 추구할 수 있다”며 “평화적 수단에 의한 통일, 전쟁에 의한 통일, 자본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녹화 통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퍼뜨리기 위한 적화 통일, 서로 다른 두 체제가 공존하며 수렴될 수 있는 통일, 한 체제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통일 등이 있다”고 말했다.

“보수세력, 역사적 사실과 주관적 평가조차 구분 못해”

그는 이어 “보수 세력이 어떻게 6.25를 통일 전쟁으로 볼 수 있느냐고 억지를 부리는 데는 통일을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로만 한정하는 것 같다”며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바란다면서 가장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조차 억압하고 말살하려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재봉 교수는 “보수세력들은 역사적 사실과 주관적 평가를 구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일성 주석이 항일독립운동을 했다는 것, 그리고 한국전쟁은 통일전쟁이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역사적 사실이다”며 “그런데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등은 ‘그럼 김일성을 국립묘지에 안장하자는 말인가’, ‘그럼, 북한에 의해 통일되어야 했다는 말인가’라는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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