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먼저 선방을 날렸다. 한-미BIT(투자협정)를 좌초시킨 최대의 장애물인 스크린쿼터제 축소를 위해 정부가 총대를 메고 ‘73일의 축소 안’을 던졌다. 바로 그 전날 밤 문화관광부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영화계는 일방적 통보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새삼스럽게 경쟁논리를 끌어내며 ‘축소의 불가피성’을 주장한 한덕수 부총리를 향해 비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인들은 이날을 ‘반(反)문화적 쿠테타’의 날로 규정했다.
지난 해 10월 20일 전세계 문화인들은 '문화는 시장의 상품이 될 수 없음’을 공식 선언했다. 154개국 대표가 참석한 유네스코 총회에서 찬성 148, 반대 2(미국 포함), 기권 4로 문화다양성 협약을 국제협약으로 채택했다. 탈퇴 19년 만에 복귀한 미국은 유네스코 총회에 앞서 각국 대표들에게 반대 내용을 담은 서한을 보냈고, 총회 내내 28개 항목 각 각에 수정안을 제시하며 '협상 지연전'을 펼쳤으나 모두 기각되는 참패를 기록했다. 이후 문광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스크린쿼터제’를 지켜온 영화인들을 치하하며 ‘한국이 첫 번째 비준국이 되게 만들 것’을 결의한 바 있다.
정부는 역행하고 있다. 아니다. 좀더 솔직히 표현하면 2차 서비스 양허안을 기한에 맞춰 제출하고, 아펙 정상회의에서 WTO DDA 특별선언문을 채택하고, WTO DDA 서비스 협상의 의장국으로 합의문을 도출했던 한국은 국제적인 서비스 시장 개방의 선봉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역행을 주도 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는 늦었더라고 시장화는 앞서가자'라는 식의 정부 논리는 여지없이 '통상개방정책'이라는 단일한 표어로 한-미 FTA 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영화계는 굴욕적인 한국 정부라 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국회, 사회 단체들에서도 줄을 이었다. 영화계의 이런 반응에 언론은 스크린쿼터 축소와 영화계의 영향에 대해서 운을 뗀다. 이제야 영화시장 점유율의 59%를 차지한 한국영화계가 스크린쿼터라는 보호막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이익과 손실을 따지며 침체냐 성장이냐를 점치고, 집단 이기주의라고 운운하기도 한다.
그러나 핵심은 스크린쿼터의 상영일수가 146일에서 절반으로 '뚝' 잘려 73일이 됐기 때문이 아니다. 120일이면 되고, 100일이면 안될 문제의 성질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광부가 축소하는 날 만큼의 보장을 ‘돈’이나 ‘배급’ 등 제도적 지원안을 발표한다 해서 해결 될 문제도 아닌 것이다. 물론 상영 일 수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스크린쿼터제는 '문화 다양성’ 협약 도출의 바탕이 된, 세계 문화계 에서‘반시장의 상징’으로 그 위상 높은 제도 이다. 각국에서 자본으로 평정되는 문화 영역에서 생산과 표출, 표현의 ‘다양성’ 지켜 내기 위한 정당함의 상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크린쿼터를 지켜온 9년간의 싸움 과정은 그자체로 정치적인 표상이었다. 이 자신감과 표상을 사전에 제거할 필요성은 정치적인 이유이다.
또한 스크린쿼터제 축소의 의미는 결국 방송 시장 개방의 전초전 이기도 하다. 전세계 방송 시장 70%를 점하고 있는 미국 방송 자본들은 헐리우드 영화 자본을 앞세워 영화시장을 개척하고, 이 장벽이 사라진 틈을 타고 공세적으로 방송 미디어 영역까지 확장 해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다양성 협약으로 예외가 되려 하고 있는 '문화'상품들을 서둘러 협상안에 끼워 넣어야 하는데 스크린쿼터제는 말 그대로 '장애물'이기 때문에 서둘러 배수진을 친 것이다. 이는 협상의 실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크린쿼터가 실제로 축소 된다면 그 만큼 강고하게 싸우고 여론을 주도해왔던 영화인들을 비롯한 ‘문화의 상품화’를 반대한 진영의 패배 및 일보 후퇴를 의미한다. 이는 싸움 주체의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고, 자칫 주체와 동력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FTA 시작하기 앞서 이런 주체들에 대한 사전 정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한미FTA를 추진하려는 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적어도 실천 주체들에 대한 기선제압은 필수 조건일 수밖에 없는 정황이기 때문이다.
영화계는 지금 네덜란드 소년이 됐다. 그 가느다란 팔목으로 지난 9년간 영화, 방송, 미디어 시장 개방의 요구를 막아 온 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의 의미는 상영일 수 조정의 문제가 아닌 영화시장을 비롯한 한국의 방송 미디어 영역의 총체적인 시장개방을 전제로 하고 있다. 더 나아가 문화 영역의 시장개방 문제는 연이어 교육, 의료 등 그간 '상품이 되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해 온 영역의 시장화에 가속도를 붙여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인들만의, 날짜 조정만의 문제로 국한해서는 안된다.
나아가 그간 투쟁 주체들에 의해 유일하게 좌초된 한-미BIT의 전례를 고려할 때 한-미FTA 시작전에 스크린쿼터 문제를 치고 나온 부분은 '개방형 통상 국가'로 나가기 위한 한국 정부 의지의 표상인 셈이다. 물론 한국과 미국 이라는 두 국가 간의 특수성도 배제할 순 없겠지만 이는 FTA라는 양자간 협상을 앞두고 서로에게 민감한 영역을 고려하는 방식이 좀더 폭력적이고 노골적이고, 정치적으로 일어났을 뿐이다.
한-미FTA 추진은 이미 BIT가 표류된 이후 부터 예고 됐다. 정부가 돌격대장을 자처한 배경에는 정부의 의지로 관철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바로 농민들이 10년의 세월을 넘기며 싸워 왔던 쌀 비준안을 강행 처리 시킨 바로 그 자신감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스크린 쿼터 축소의 문제를 영화인들만의 문제로 국한 시켜, 상영 일수 조정으로만 한정해서 안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