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속의 기아"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 농업지배 분석

[책] 이윤에 굶주린 자들 : "자연 순환 파괴 영농을 강요당한다"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상에서 미국 측이 제안한 내용의 대부분은 대표적인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 ‘카길’사의 전직 부사장인 암스튜츠(Daniel Amstutz)에 의해 작성됐다. 유명한 반세계화 활동가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는 “WTO협상은 카길 협상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1998년 APEC 식량체계(APEC Food System : AFS)에서 제안된 정책 내용, 유전자조작식품에 관한 정책, 수출보조금 철폐 등은 카길의 부사장 로빈 존슨의 보고서였다.

지난 2004년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다. 칠레의 과일-농업과 한국의 전자, 핸드폰을 맞바꾼 협정이었다. 그러나 칠레의 농업은 초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세계 6대 메이저기업들이 전체 수출의 70% 이상을 점하고 있는 시장으로, 미국계 다국적 기업인 돌과 유니프루티사가 업계 1,2위를 차지하며 과일 생산과 유통을 주도하고 있었다.

미국 농업부 (USDA)가 05년 2월 9일에 발표한 세계곡물 수급전망에 따르면 세계 곡물생산량은 전년대비 9.1%증가한 20억 2,087만톤이고 소비량은 2.1% 증가한 19억 8,775만톤 이었다. 세계곡물시장은 이미 ‘공급과잉’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은 2003년을 기준 식품의 50% 이상, 주요곡물의 70%를 수입하고 있다. OECD 가입 30개국 중 곡물자급률이 27위에 해당할 정도로 식량자급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밀은 쌀 다음으로 중요한 곡물이지만 9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쌀 비준 국회 통과로 쌀 시장이 개방됐고 미국, 중국의 수입쌀은 각 가정의 밥상까지 올라올 수 있게 됐다.

  이윤에 굶주린 자들 책 표지
현대의 식량 문제는 생산량의 부족에 기인한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점차 증가하고 있는 ‘식량의 전지구적 상품화’에 근거한다. WTO, APEC, FTA와 같은 국제 협약은 식량 상품의 시장을 개척하고, 국가의 정책을 강제하는 기구이다. 그리고 이들의 보이지 않는 뒷 장막에는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가 있다. 그들의 이해가 전세계 농업, 식량의 지배로 즉자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과 역사적 배경을 담은 책이 나왔다.

이윤에 굶주린 자들(Hungry for Profit, 울력출판), 이 책은 농업 자본주의의 발생부터 농업에서 소유와 지배의 집중, 자본주의적 농업의 성숙, 세계의 식량 정치까지 자본이 농업을 지배해 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미국내 농장노동자들의 투쟁과 미국내 지역 식품체계 복원을 위한 풀뿌리 운동의 과정 등 미국내 주체들의 활동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리고 쿠바의 예를 통해 환경 농업생산 체계의 대안적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더욱 강화되는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의 기업 연합을 통한 시장 지배력 강화에 대한 분석과 설명은 책이 주는 기본 정보이다.

개량(improvement), 시작은 농업 자본주의 발생의 역사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는 식품생산의 급성장과(시장과 소득분배에 대해 상대적인) 과잉 생산의 만성화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배제와 이에 따른 기아의 확대라는 모순된 현실을 분석하고 역사적으로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영국의 예를 통해 자유로운 생산 농업이 개량과 소유제의 변화를 통해 농업자본주의로 발달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정치경제학적으로 접근한 리비히, 마르크스와 토양 생산력 고갈 이론들을 근거로 다양한 현상을 해석한다. 또한 농업에서의 소유와 지배의 집중 현상과 공업적 농업이 생태계에 미친 영향 분석과 환경을 고려해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전 지구적 위치파악 기술 GPS, 수확량의 감시나 광범위한 샘플 추출과 지도 작성, 투입량 조절기기등을 사용해 경작지의 서로 다른 부분마다 추정 필요량에 따라 화학 비료나 농약을 투입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정밀 농업’의 현실화 과정,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의 기업연계를 통해 더욱 강력하게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보고는 단순한 설명을 넘어 ‘식량 산업화’의 위험성의 시각을 전한다.

결국 이는 한미FTA 협상에 앞서 미국측이 ‘한국의 농업’시장에 대한 공격을 공공연한 협상 의제로 제시하는 배경에는 ‘유전자, 종자에서부터 밥상까지’의 구호를 외치며 국제적으로 수직-수평적 통합을 이뤄내고 있는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가 베일 속의 그림자로 버티고 있음을 역사적으로, 현상적으로 폭로하는 셈이다.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의 성장과 기업 연합의 실태

예를 들어 본문에는 IBP, 카길, 콘아그라 3개사는 미국산 쇠고기의 81%를 가공할 뿐 아니라, 오늘날에는 캐나다에도 가축 임시 사육장과 도축시설을 소유하여 미국에서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런 수직적 통합과 수평적 통합, 식품 체계의 여러 분야 간의 계열화, 복합 기업화, 세계적 통합 등의 모든 경향들이 환경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런 현상은 농민들의 탈 농민화 즉 농민층의 분해를 통한 탈농민화와 농지로부터의 추방에 의한 탈농민화를 전지구적으로 야기시키고, 이런 경향이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에는 경제적 증대로 나타남을 기술한다. 이는 한미FTA협상 이후 한국 농민들이 처할 암울한 현실에 대한 사전 예고인 셈이다.

또 다른 예로 유전자 개발과 관련해 몬산토의 ‘라운드 업 레디 대두 종자’를 든다. 이 종자를 구매하는 모든 농민들이나 또는 유지 함량이 낮은 담백한 감자 칩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몬산토의 특별 품종 씨감자를 구매하는 모든 농민들이 같은 품종의 감자를 계속 생산하려면 계약조건에 따라 다음 해에도 다시 몬산토에 가서 종자를 구해야 한다. “유전자-종자에서부터 밥상까지”라는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 그들의 농업 지배에 생산자도 소비자도 결국 종속 될 것 이라는 주장을 포함하고 있다.

책의 핵심은 거대 농식품 기업군의 형성과 기업 연합의 출현의 경향이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의 경향에 따라 기업들간의 대자본 집단의 병합 그리고 이들 기업들이 생산단계 뿐만 아니라 식품 체계 전체를 통해 제품의 품질, 수량, 종류, 산지 및 가격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시장의 진정한 결정자’가 됨을 기술한다.

책에서는 단적인 예로 유전자 조작 농산물 종자 시장의 88%를 차지하는 가장 큰 종자 기업인 몬산토와 가장 큰 곡물 기업인 카길의 결합을 들었다. 카길의 곡물과 유지 작물 가공 및 전 세계 판매를 종자 단계에서 연계하는 합작 투자의 형태가 되는 이 형태는 이 기업들 간의 연계가 결국 유전자에서부터 곡물의 생산, 가공, 사료 생산, 농민과의 계약 재배를 통한 육류 생산과 가공이 이르는 일련의 농식품 체계의 단계들을 통합하는 체계로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종자 뿐만 아니라 관련 농화학 제품을 비롯해 영농 후의 가공-유통을 장악하고 톱니바퀴처럼 계속되는 이런 종속 구조는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오늘날의 지속 가능한 농업을 방해하는 것은 기술 부족 때문도 아니고 생태학적 과정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생물학적 지속 가능하며, 흙의 양분 및 기타 성분의 순환을 고려한 농업 환경 체계를 구상하고 꾸려 나갈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농민 대다수는 이러한 지식을 활용하지 못한 채 오늘날의 경제-사회-정치적인 구조 속에 살아가고 있다. (본문 내용 p.91)”

본문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몰라서 못하는게 아니라 알고 있더라도 구조에 의해 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 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종자에서부터 모든 생산 품이 카길, 몬산토, 듀폰, 콘아그라 등과 같은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에 종속되고 있는 지금, 쓰나미 처럼 밀려오는 검은 장막을 거둬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또한 한미FTA 협상과 연관된 '협상 저지'의 정당한 근거 이기도 하다.

자연순환을 파괴하는 영농 형태를 국제 경쟁력이라는 이름 아래 강요 당해서는 안된다는 원칙,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의 농업 지배가 가져온 비참한 결과를 극복하고 재생가능한 농업 생산체계에 대한 대안의 필요성, 이는 이 책이 주문하고 있는 현 시기에 필요한 '실천'의 제기이다.
덧붙이는 말

'이윤에 굶주린 자들' 이 책은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 출판사에서 2000년에 발간한 (Hungry for Profit: The Agribustiness Threat to Farmers, Food, and the Environment)를 번역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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