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쫓겨난 라파즈한라 하청노동자

[인터뷰] 채희진 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우진산업지회장

스무날 넘게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잔업을 한달에 150시간 넘게 하면서 그들이 받아 가는 돈은 130여만 원. 해마다 계약을 다시 해야 하는 이들은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몰라 숨죽이며 일만 해야 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하면, 다음날 오후 4시에 퇴근을 하는 날도 있어요. 32시간동안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일을 해요. 거의 고문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고 퇴근을 해도 언제 전화가 와서 일하러 불러낼지 몰라 불안에 떨며 잠을 잡니다. 정말 뼈가 부서져라 일을 했는데….”

  라파즈한라 정문 앞 천막농성장 [출처: 우진산업지회]

마흔 하나, 채희진 씨는 이미 폐업한 라파즈한라 하청업체인 우진산업 노동자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 정규직 되는 게 간절한 꿈이었던 채희진 씨는 지금 라파즈한라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일하고 싶다’고 외치고 있다.

뼈가 부서져라 일했는데

라파즈는 프랑스에 있는 다국적 기업이다. IMF때 한라시멘트를 인수하여 라파즈한라로 이름을 바꿨다. 건설자재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세계 75개국 7만5천명의 직원이 있다.

세계적인 기업에서 일을 하는 한국 노동자는 일년 계약직에 시급 3,150원에서 3,300원을 받고 있다. 기본급은 8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토, 일요일 없이 연장근무를 해야 받는 돈은 130여만 원. 마흔이 넘은 채희진 씨가 먹고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힘에 겨웠다.

3월 7일, 채희진 씨가 다니는 우진산업 노동자들은 사람답게 살고 싶어, 노동조합을 만들어 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에 가입하였다. 그 날 채희진 씨는 우진산업 지회장이 되었다.

“조합을 만들자 3월 11일 오전 8시까지 전 직원은 회사로 출근하라는 전화가 사장한테서 왔어요. 라파즈한라 구매본부장이 사내하청업체 3곳(우진산업, 세화산업, 대원산업)의 업무조정을 했다는 공문을 보내왔다고 하며, 업무조정이 된 사람은 다른 업체로 가서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조합에 가입한 사람은 갈 수가 없다며 조합탈퇴를 강요했어요.”

조합탈퇴 강요

원청사인 라파즈한라가 사내하청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조합원들이 이에 반발하자 우진산업은 3월 31일에 폐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위장폐업 철회하고 고용승계 하라. [출처: 우진산업지회]

“지회에서 단체협약을 위한 상견례를 3월 24일, 25일에 하자고 하니, 회사는 일방적으로 무시했어요. 27일 제가 기본 상견례 좀 하자는데, 그렇게 시간이 없냐고 요구했더니, 사장은 3월 31에 폐업을 할 테니 응할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28일에는 지회 간부를 불러 지금이라도 조합탈퇴를 하고 사직서를 쓰면 다른 하청업체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폐업을 기정사실화 했다.

3월 31일 조합원에게 사형선거와 같은 문자메세지가 왔다. 3월 31일자로 계약해지.

“우진산업이 쓰던 장비는 다른 2곳의 하청업체로 그대로 인수가 되었어요. 하지만 일을 하던 조합원은 고용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조합탈퇴서와 사직서를 쓰면 고용을 생각해보겠다며, 하지만 고용보장은 약속하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4월 1일 출근을 하니 라파즈한라 직원들과 경비들이 이들의 출근을 막았다. 우진산업의 폐업은 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 말고는 없다. 우진산업의 장비들이 고스란히 남은 2곳의 하청업체에 넘겨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은 보장할 수없다

“4월 3일에 강릉노동부 사무소를 찾아갔죠. 우진, 세화, 대원 사장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4일 노동부 중재로 만들었어요. 하던 일과 장비는 승계하면서 왜 고용은 승계하지 않느냐고 물었죠. 우리의 요구는 하던 일을 그대로 하는 거라고. 너무 과한 요구입니까?”

  거리 선전전을 하고 있다 [출처: 우진산업지회]

답은 냉정했다. 신규 입사자처럼 서류를 내면 심사 및 면접을 통해, 대여섯 명 정도 취업을 생각해 보겠다.

우진산업 지회 조합원은 4월 5일 라파즈한라 앞에 천막을 쳤다. 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위장폐업이다, 고용을 승계하라는 요구를 가지고.

“길게는 4년 넘게 일한 우리를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장폐업을 하고, 조합원들과 가족을 거리로 내쫓았습니다. 우리가 파업을 했나요? 회사에 피해를 줬나요?”

채희진 지부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조합이 생기자 하청업체 업무조정을 한 라파즈한라의 조직적인 개입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라파즈한라의 개입이다

“모른 척하고, 더 나은 일터,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곳으로 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물러서면 노동자들이 끝없이 자본과 권력에 일만 하는 노예로 살아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싸움이 언제 끝날지는 몰라요. 하지만 끝까지 사워 이길 겁니다.”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싸웠던 메이데이가 116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최소한의 삶의 요구를 걸고 거리에서 싸워야하는 현실이, 116년이 지난 오늘까지 대한민국 땅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수십 미터 고공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가 몇 인가? 이제 그 숫자마저 가물가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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