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 과거에만 묻혀 있을까?

[언론의재구성](100) - 개혁언론 보도, 과거청산에만 집중돼

‘인혁당 사건’으로 알려진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 사건’ 관련자 8명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우홍선, 송상진,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도예종, 여정남, 이용원 등 8인에게 사형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지 32년 만에 판결이다.

1975년 4월 이들에게는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등의 혐의가 씌워졌고, 2006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등의 혐의 모두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개혁언론은 이번 판결을 비중있게 다루었다. 32년 만에 나온 판결인 만큼 흥분도 감추지 않는다.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려면 박근혜 전 대표 입장 밝혀야 한다..과거청산의 차원에서?

한겨레신문은 23일 사설을 실었다. 한겨레신문은 사설 <‘인혁당 무죄’ 판결, 갈 길은 아직 멀다>에서 “인혁당 사건의 가해자 중 한쪽은 바로 사법부”라며 “그러나 재심 판결문 어디에서도 이런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는 대목을 찾을 수 없다. 당시 군사법정의 오류는 인정하면서 이를 추인한 법원의 잘못은 고백하지 않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또 “물론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공판조서의 증거력을 부인하고 무죄를 선고한 것 자체가 전향적인 과거청산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며 “이번 판결이 사법부가 권력에 예속된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라도 좀 더 적극적인 성찰과 고백을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사법살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이번 판결로 사법부가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받고 있는 셈. 한겨레신문은 사설에서 과거청산의 의지의 표현이라며 과거사정리의 측면에서 이번 판결을 지목했다.

오마이뉴스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을 타겟으로 잡았다. <“박근혜씨는 용기있게 인정하라”>, <“법원이 결정한 거 아니에요?”>, <‘인혁당 무죄’, 박근혜는 침묵을 깨라>, <인명진 “박근혜에 ‘인혁당 입장’ 묻는 건 당연”> 등 박근혜 전 대표 관련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오마이뉴스는 칼럼 <‘인혁당 무죄’, 박근혜는 침묵을 깨라>에서 “‘인혁당의 시대’는 30여 년전의 흘러간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해도 좋은 것일까? 그렇게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며 “박근혜 전 대표가 초야에 조용히 묻혀 살고 있다면 모르지만, 대통령이 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선 현 시점에서 만약 ‘인혁당 문제’에 대해 아무런 책임의식 없이 넘어간다면 ‘인혁당 문제’는 제대로 청산됐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과거청산의 차원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적 입장을 요구하는 것, 연좌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이 시점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적 입장을 밝히고 이를 언론에서 요구하는 것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인혁당 사건’이 과거청산의 사례 혹은 과거사정리의 차원으로 치부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레시안도 다르지 않았다. 프레시안은 <‘인혁당 재건위’ 무죄 판결 뒤에 남는 억울함들>에서 “과거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는 것조차 인색했던 점, 사법부가 ‘재심’ 이외에는 과거사 청산을 위한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점.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재심을 요구하는 공안사건 사법 피해자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번 판결은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며 “유신시절의 ‘긴급조치’에 대한 헌법 합치 여부를 묻는 것도 과거사 정리에서 피해갈 수 없는 과제 중의 하나라는 지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사법살인’으로 지목되는 ‘인혁당 사건’은 과거청산의 사례, 과거에만 묻혀있는 것일까?

“사법부의 항소심 기각이 나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최근 한 대학 교수의 석궁 사건은 담당판사라는 개인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이었지만, 최종적으로 사법부를 향한 저항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에 대한 쟁점도 여러 가지고 판단도 분분하므로 가치판단은 차치하고라도, 피의자로 주목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는 자신의 분노가 여전히 예속되어 있는 사법부, 권력화 된 사법부에 향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김명호 전 교수는 “사법부의 항소심 기각이 나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는데, 사실상 재임용 탈락을 계기로 지금의 상황까지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밖에 재임용 탈락의 고배를 마신 다른 교수들의 심정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 2005년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교원소청심사특별위원회를 꾸린 바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 특별위원회의 결정조차 법적인 강제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김명호 전 교수는 교수들의 재임용 가능성을 인정한 최초의 판례 1977년 9월의 77다300을 뒤엎고, “재임용 여부는 전적으로 임용권자의 재량이다”라는 1987년 6월9일의 대법원 판례 86다카2622에 근거해 지난 20년간 재임용 판결을 해온 것은 위법이라는 것라고 주장하고 잇다. 법률해석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법원조직법이 정한 대로 전원합의체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수 교수들이 재임용 탈락과 관련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나 법원은 재임용 여부는 학교의 자유재량이라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하고 있다. 김명호 전 교수가 주장했던 87년 86다카2622에 근거한 내용이다. 설령 소송이 진행되더라도 복직판결을 받아내기란 쉽지 않다.

이번 석궁사건과 관련해 24일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기고한 이명원 씨는 “교수재임용 판결에서도 이른바 ‘87체제’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지난 20년간 법원이 그런 과정 없이 1987년의 판례를 일괄 적용해 해직교수가 대량 양산되는 결과를 빚었다는 김명호의 주장에 대해 대법원의 명백한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법살인’ 현재에도 존재하는 것 아닌가!

언론에서도 이번 ‘인혁당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을 ‘사법 살인’의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다. ‘인혁당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는 판결 직후 성명에서 “오늘의 결과는 사필귀정”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석궁사건을 통해 여론의 사법부 불신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형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 있는 반면,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제공한 사건은 벌써 3년째 법정을 표류하고 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이번 판결은 과거청산, 과거사정리의 수준이 아니라 현재를 돌아보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과거 ‘군사법원’ 이라는 오명을, 현재는 ‘삼성법원’이라 불리며 최고 사법적 판단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사법부가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법부의 판결이 ‘사형선고나 다름없이’ 행사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사법살인’이라는 말이 현재에도 지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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