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민주당 이상열의원은 집회 때 신원확인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물착용을 금지하겠다며 집시법 부분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런 발상이 70년대 미니스커트 단속이나 장발단속처럼 어의 없는 일이어서, 인권단체들은 이 개정안을 ‘복장단속’ 집시법이라고 규정하고, 이상열 의원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그런데, 답변이 더욱 가관이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가 집시법을 통해 보호되고 있으니 그리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 않느냐라는 이야기였다. 집회의 자유가 집시법을 통해 보호되고 있다고? 한번이라도 경찰서에 찾아가 집회신고를 내보고, 또 집회를 개최해본 사람이라면 과연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집회의 시작할때부터 끝날 때가지 어떤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는지 살펴본다.
집회의 자유는 신고할 때부터 가로 막힌다
집시법은 “옥외집회 및 시위에 대해서는 행정상의 참고를 위하여 경찰서장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말 그대로 집회 신고는 ‘행정상의 참고’를 위한 것이고, 그 뜻은 공공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경찰행정을 위해 집회주최자가 언제 어디서 집회를 하는지 정보를 제공하라는 것에 불과하다. 헌법이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일체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찰의 행정도 정보가 제공된 집회에 대해 이를 보장하고, 원활하게 그 집회가 진행될 수 있도록 작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만약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집회라 하더라도 과태료 같은 행정질서벌을 내리는 것이면 충분한 일이고, 집회의 보호를 위한 경찰 행정력의 작동을 거부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에서 경찰은 신고를 하지 않은 미신고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해 형법으로 다스리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집회주최자가 집회를 벌이는 과정에서 사회질서나 타인의 권리 등에 대해 어떠한 침해행위도 벌이지 않았다할지라도, 단지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며, 사실상 하위법인 집시법으로 상위법인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제한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일어나게 된다. 집시법을 두고 위헌적 법률이라고 이야기하는 데에는 이런 맥락이 있는 것이다.
집시법 악용한 경찰의 집회봉쇄
신고조항을 악용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례도 부지기수이다. 집시법은 집회가 열리기전 48시간 이전까지 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사실 이는 경찰의 행정편의주의에 기반한 것으로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시간대에 두 개 이상의 집회가 열리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 조항은 특히 대기업이나 경찰이 특정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위장집회를 신고하는 등 집회봉쇄장치로 악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05년 10월 부산에서 아펙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을때, 사회단체들이 반대집회를 위해 집회신고를 하였으나, 경찰은 이미 3000여곳에 집회신고가 되어 있다는 이유로 집회 불허를 통보했다. 3000여곳에 이르는 장소들은 부산시내에서 집회가 가능한 거의 대부분의 장소이며,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경찰이 주민과 관변단체를 동원해 집회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삼성 본관 앞 집회를 처음으로 성사시킨 삼성 에스원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특정 장소에서 집회가 열리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경찰이 어떤 식으로 개입하고 있는지 더욱 생생한 사례를 들어볼 수 있다. 먼저 집회신고를 하는 쪽에 집회개최의 우선권이 있다 보니, 해고 노동자들은 집회신고서를 먼저 제출하려고 경찰서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날락했다고 한다. 경찰이 새벽 12시를 기준으로 정문 앞에 먼저 도착한 쪽의 집회신고를 받아주는 것을 본 해고노동자들이, 다음 새벽 12시에 정문 앞에 가 있으니까 경찰은 새벽 12시를 기준으로 정문안 소파에 먼저 앉아 있는 쪽에 집회신고의 우선권이 있다고 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다음 새벽 12시에 소파에 가서 앉아 있었더니, 이제는 출입구 바닥이 있는 선을 먼저 통과하는 쪽이 집회신고의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삼성 본관앞 집회가 성사되기 까지 이런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 배후에 있었다.
차벽과 경찰에 둘러 쌓인 집회
대규모 경찰력과 차벽으로 상싱되는 경찰의 집회관리방식도 문제다. 집회에 대한 경찰의 대응은 집회 참석자의 수를 뛰어넘는 대규모 병력을 집회현장에 포진시켜 놓고, 대규모 경찰력의 위력을 과시해 집회와 시위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04년에 경찰청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도 연간 시위 인원은 2,879,840명, 연간 동원경찰은 4,603,060명이었고, 2002년에는 연간시위인원이 2,682,857명, 연간 동원경찰은 3,550,800명, 2003년에는 연간 시위인원은 2,912,260명, 연간 동원경찰은 4,279,920명 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컨대, 평균적으로 집회참가자의 1.5배에서 2배가량의 경찰력이 매 집회마다 동원되어 집회를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규모로 동원되는 경찰병력은 집회현장을 양옆으로 둘러싼 후 집회참가자들에 대해 불심검문을 진행하고 이들의 통행을 제한하기도 한다. 집회에 대한 대응에 있어 경찰이 보이고 있는 이와 같은 관행은 집회참가자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것이며, 종종 경찰과 집회참가자간의 물리적 충돌을 발생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대규모 집회에 대해서는 행진을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집회장 주변에 경찰버스를 동원해 차벽을 형성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집회의 애초 목표인 다수의 위력을 통한 여론형성을 심각히 저해하는 것으로 집회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집회참가자에 대한 경찰폭력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집회에 대한 경찰의 물리적 개입은 집시법의 독소조항과 경찰의 자의적인 법집행으로 인해 매우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집회도 미신고라는 이유로, 혹은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내려진 금지통고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지어 집회장 반입물품이 신고내용과 다르다는 이유로, 경찰은 여러 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경찰력을 동원해 강제해산을 시도하곤 한다.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재량과 권한을 축소해야..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현행 집시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경찰당국의 자의적인 법집행이다. 2004년에 개정된 집시법을 보면, 대부분의 조항이 “관할 경찰서장은 ***한 경우에 집회를 금지 또는 제한통고할 수 있다”로 규정하고 있다. 관할 경찰서장이 자의적으로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는 집회라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집회를 원천봉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집회의 자유라는 헌법적 기본권의 제한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일개 행정관청장의 재량적 판단에 일임하는 것이며, 집회의 중요한 당사자인 집회 주최측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어떠한 기회도 혀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집회의 자유가 시작부터 끝까지 보장되기 위해서는 현행 집시법의 개폐가 논의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집시법의 개폐에 있어 핵심은 집회시위에 개입하는 경찰의 재량과 권한을 축소시키는 것이 핵심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집시법의 몇몇 독소조항을 없애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집시법을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덧붙이는 말
-
이번 '헌법 21조를 지켜라' 연속기획 기사는 <민중의소리>에도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