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민영화 안한다더니 속으로는 딴 짓

[연속기고-팔려가는 공공부문](5) '붕어' 수준의 기억력 이명박 정부

‘유린타운’이라는 뮤지컬이 있다. 우리말로 바꾸면 ‘오줌마을’ 정도 되겠다. 독점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기업인 ‘유린 굿 컴퍼니’에서 유료로 급수를 해야 하는 극심한 물 부족 도시가 작품의 배경이다. 가난한 서민들은 ‘용변비’를 낼 수 없어 몰래 숲 속 등에서 볼일을 보지만, 적발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유린타운’으로 보내진다. 이 작품은 원작자 그레그 커티스(Greg Kotis)가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느낀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2001년 뉴욕에서 초연되었다. ‘배설’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독점 기업이 횡포를 부리는 과정에서 가난한 서민들이 이에 대항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비꼰 작품으로 각종 뮤지컬 관련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하지만 더 이상 뮤지컬 속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겉과 속이 다른 ‘거짓말’ 정부

분명히 약 두 달 전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가 ‘물·전기·가스·의료보험’ 4대 분야 민영화는 없다고 말했다. 그가 ‘기억상실’이 아니라면 몇 달 전에 스스로 ‘거짓말’을 시인하게 된 경위는 무엇일까. 당시 대통령의 발언은 ‘여론 진화용’이라는 심증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정부의 일련의 흐름을 보면 그러한 혐의는 더욱 짙어진다.

지난 4월 25일 행정안전부에서는 ‘지방공기업 개선명령’이라는 것을 내렸다. 총 9개의 공기업 중에 3곳이 상수도 공기업인데 포항, 경주, 통영의 상수도 사업소가 그 대상이다. 이 ‘개선명령’에는 1년 이내에 상수도 전문기관에 민간위탁할 것을 실시할 것과 여기에 포항, 경주 등 인근 지역의 광역화를 감안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개선명령’은 지방 공기업법 제75조에 따라 경영 개선 명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이행해야 하며, 이후 인사상의 불이익, 재정지원 불이익 등이 따른다. 말 그대로 ‘명령’이다.

그래서 포항시 상수도 사업소는 이 개선명령에 따라 6월 2일 경영개선 명령에 따른 세부이행계획을 작성하게 된다. 그 내용역시 ‘명령’에 따른 포항과 경주, 영천, 영덕, 울진을 묶는 경북-포항권을 광역화 한 후 1년 이내에 전문기관에 민간위탁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리하면 4월부터 6월까지 행정안전부가 중심이 되어 ‘광역화 민간위탁’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환경부는 8월 27일 토론회에서 '수도사업 구조개편 추진방안'을 통해 현재의 164개의 수도사업소를 26개 중권역으로 광역화하는 계획과 수도사업의 전문화를 통해 위탁과 11개 유형의 민간자본의 출자까지도 고려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분명 대통령은 안하겠다고 했다. 8월 24일 당정협의로 물산업을 민영화하겠다고 하더니 또 바로 다음날 한나라당은 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물 민영화 반대 여론도 주춤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현재 포항-경북권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흐름을 보면, 분명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촛불에 밀려 원했던 것들을 미뤄두어야만 했던 정부의 고뇌가 느껴진다.

정부가 말하는 ‘효율화’는 기업의 이윤보장일 뿐

민간위탁은 민영화인가? 정부는 말한다. ‘소유권’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운영권’만을 이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며 여러 부작용은 ‘기우’ 혹은 ‘괴담’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민영화된 도시의 수도 값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30%가 비싸진 프랑스도 ‘운영권’만 넘긴 형태였다. 수도산업이 파탄 나버린 대표적 사례인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도 역시 운영만을 넘겨주었다. 도대체 뭐가 ‘민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며, 괜찮다는 것인가.

해외사례를 언급하면 정부는 말한다. 우리의 경제현실과는 맞지 않는 남미의 후진국 예시일 뿐이며 성공한 선진국의 사례도 많다고. 환경부 자료에 의하면 볼리비아나 아르헨티나, 필리핀의 경우 실패원인은 ‘외환위기’, ‘빈곤층 확대’, ‘부패권력 스캔들’ 때문이라고 한다. 도대체 여기 나열한 것 중 한국과 거리가 먼 단어는 무엇인가. 9월 위기설이나 제2의 IMF와 같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으며, 바닥을 모르는 주가폭락, 그리고 고환율 위기 등의 경제 현실과 점차 극심화되는 양극화, 각종 지자체장의 부패 비리 스캔들...(서울시 뇌물 수수 시의원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것들이 단지 ‘후진국 남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인가? 남을 비난하기 전에 자기반성은 현대인의 필수적인 교양 덕목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좋아하는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들을 보자. 미국에서는 유수율 저하를 위해 수압을 낮추는 바람에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지 못했던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영국은 민영화 4년 동안 50% 이상 물 값이 올랐다. 5년간 단수 가정이 3배로 증가했다. 한때 450%까지 물 값이 치솟은 적이 있다. 물 기업들은 1989년에서 1997년 사이에 수돗물 누수에서부터 폐수 불법방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혐의로 128차례나 기소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의 월급은 50%에서 200% 인상되었고, 90년에서 97년까지 10개 물 회사의 이익은 147%가 증가했다.

외국까지 볼 것도 없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수도사업이 워낙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이걸 효율화 하려면 ‘전문기업’에 맡겨야 한다고 한다. 일단 우리나라에 각 가정까지 수도를 배달하는 ‘전문’성을 가진 집단이 어딘가? 서울만 하더라도 100년 동안 서울의 상수도를 담당했던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와 각 지자체 상수도사업소이다. 댐 장사를 중심으로 생산과 도매만 담당해온 수자원 공사도 ‘전문’성은 별로 없다. (처음 수자원공사에 의해 민간위탁을 실시한 논산이 2004년부터이다.) 그럼 민간기업은? 한국에서 상수도 서비스를 해본 경험이나 있나? 그렇다면 ‘전문성’을 가진 지자체 수도사업본부가 수도사업을 하는 게 맞다.

기업이 운영하면 ‘효율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맞다. 기업은 효율적이다. 다만 그 효율은 가능한 ‘낮은 생산원가’를 들여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는 효율이다. 기업은 이윤이 없는 곳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그런 기업이 50%를 밑도는 농어촌 수도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설비투자를 하고, 고용을 보장하면서, 안전한 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아무리 ‘비즈니스 프렌들리’라 해도 너무 ‘프렌들리’한 생각 아닌가?

그럼 업체들 간의 경쟁을 통해 가격은 낮추고 서비스 질은 높인다는 계획은? 지역 독점적 구조의 상수도 사업에서의 경쟁은 ‘입찰경쟁’에 불과하다. 다만 우리 동네에 수도회사 10개, 관망 10개, 수도꼭지 10개. 이 시스템이 가능하다면 정부가 말하는 ‘경쟁’은 충분히 가능하다. 물도 아이스크림처럼 골라먹는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원래 ‘망 산업’의 특성이 그렇다. 초기투자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중복시설이 불가하고 필수공공재의 성격을 가지는데다 지역적으로 독점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이제껏 도로, 전기 등은 공공이 관리해왔던 것이다.

‘붕어’ 수준의 기억력 이명박 정부

분명 수도사업은 조정이 필요하다. 낮은 읍면동 단위의 수도보급률, 수질에 대한 신뢰, 설비 투자 등 해야 할 일이 산적하다. 그런데 그 답이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형태의 ‘사유화’는 절대 될 수 없다. 민간에게 운영권이든 지분이든 민간이 개입하는 순간 ‘이윤’을 위한 도구가 되어 올바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있어 원칙이 흔들리게 된다. ‘공공성’이 최우선의 평가지표가 되어야 하는 ‘필수 공공재’에 대해서 만큼은 공공이 소유하며 운영하고, 끊임없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의 방식은 ‘정답’이 아니다. 그것도 겉과 속이 다른,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정부의 방식은 ‘사기’에 가깝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 대기업의 행보는 정부가 ‘민영화는 없다’는 말의 공허함을 증명하고 있다. 한때 이상득 의원이 이사로 있기도 했던 코오롱 그룹은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상수도 사업을 선정했다. 하수종말처리회사이며, 환경관리공단의 자회사인 환경시설관리공단을 07년 초에 인수하고 설비 시설을 대대적으로 구축했다. 세계적인 물 기업 베올리아와 합작한 삼성 엔지니어링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다. 역시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의 움직임에 역시 가장 발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기업’이다.

오락가락 정부의 말, 그리고 전혀 다른 행동은 국민을 ‘피로’하게 만들 뿐이다. 대운하도 안한다고 하더니 ‘여건이 되면’ 재추진 할 수 있다는 국토해양부 장관의 발언을 보면 도대체 이 정권은 ‘붕어’수준의 기억력을 가진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진다. 그게 아니라면 이는 명백히 ‘사기’다.

제발 솔직해지기를 권한다. 없어서는 안될, 숨 쉬는 공기와 다르지 않은 ‘물’을 장삿속으로 판단하지 말라. 이명박 대통령은 정수기 물로 샤워하는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절대 다수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안전한 물을 안정적으로 충분히, 누구나 공급’ 받고 싶다. 적어도 그것이 우리가 정부에게 바라는 ‘효율성’이다.
덧붙이는 말

공공부문 사유화저지 공동행동 연속기고 - "팔려가는 공공부문”을 연재합니다. 정부의 방송장악 시도가 이어지고 있고,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상수도 민영화와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 계획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과연 정부는 공공부문을 어떻게 민영화 하는 것일까? 선진화, 경영효율화는 민영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각 영역별 민영화(사유화)의 현재 상황과 정부의 의도를 짚어보는 연속 기획을 <공공부문 사유화저지 공동행동>과 마련했습니다. 이 글은 미디어스, 참세상, 프레시안, PD저널과 동시게재 됩니다.<편집자주>
공공부문 사유화저지 공동행동은 물사유화저지공동행동, 미디어행동, 보건의료단체연합, 범국민교육연대, 빈곤사회연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입시폐지대학평준화범국본 등 공공부문의 강화를 위해 200여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