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금반지를 모을 것인가?

[기고] 탐욕과 부패의 금융시장, 규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월가의 ‘파티’는 끝났는가?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는 미국의 월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미국 5대 투자은행의 하나인 리먼브러더스는 파산신청을 했고, 메릴린치는 BOA에 매각되면서 간판을 내렸다. 앞서 지난 3월14일에는 미국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구제금융 300억달러를 받고 JP모건 체이스에 합병되었다. 이로써 미국의 주요 5대 투자은행 중 3개가 무너졌다. 그리고 남아있던 2개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도 생존의 벼랑에 내몰리고 있다.

세계최대의 보험회사인 AIG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부터 850억 달러를 지원받고 경영권을 넘겼다. 사실상 국유화되었다. 미국의 정부보증 모기지업체인 프레디맥과 패니메이에 공적자금 2,000억 달러가 투입된 지 불과 일주만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융위기는 진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의 유동성이 문제가 되고 있으며, 금리가 치솟고 돈을 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 결과 월가에는 이제 ‘탐욕과 부패’라는 시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고,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미국의 금융위기는 1980년대부터 유행한 ‘투자은행과 금융상품화’ 모델이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금융기관이 산업의 혈맥으로 기능하는 단계를 넘어 투자은행이 되면서 회사 자체가 거대한 투자를 해 왔다. 그리고 차입자본을 활용해서 엄청난 ‘레버리지’를 일으켰고, 투자은행의 임직원들은 금융이익과 이에 동반한 성과급으로 엄청난 보너스를 받으면서 금융시장은 거대한 ‘탐욕의 도박장’이 되었다.

서브프라임사태도 결국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택을 사도록 하고, 이를 첨단 금융기법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파생상품으로 부풀려진 결과가 초래한 파국인 것이다. 결국 현재 금융위기는 탐욕으로 뭉친 카지노 자본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다

한국의 일부 언론과 금융관료들은 한탕주의와 위험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그 이유는 IMF 외환위기 이후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미국식 금융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정착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부의 관료들과 금융기관 수장들은 미국의 위기를 반성하고 위험을 회피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욱더 탐욕을 부채질하고 금융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9월 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직접 투자가 불가능하지만 간접투자 상품(펀드)이라도 사겠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땜질처방이자 선정주의에 불과하다. 미국의 서브프라임사태가 부동산 가격 하락에 의한 것인데, ‘미국 부동산 사겠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다행일 지경이다.

또한, 민유성 산업은행 행장은 “리먼브러더스가 8월 산업은행과의 협상에 합의했다면 절대 부도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리먼 인수를 위해 미국에 갔을 때 아무런 정보도 없어 상대에게 ‘한심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면박만 당하고 돌아왔다.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 대표를 지냈던 그가 50억 달러를 들여 부실규모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리먼 인수에 집착한 것은 결국 그 자신이 보유는 6만여 주의 스톡옵션 때문이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적이익 때문에 5조원을 날릴 뻔했고, 국민경제를 ‘파멸의 특급열차’에 태울 뻔 했다.

언론도 위험한 도박판을 부추기고 나섰고, 특히 조선일보는 앞장서서 투기를 권장했다. 8월9일 송희영 논설실장은 칼럼 ‘누가 월스트리트를 두려워하랴’에서 “100년래 최악의 지옥이라는 월 스트리트부터 돌아보자, 우리는 세계 일류 브랜드를 손에 넣은 후 단번에 몇 단계 뛰어 올라갈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희생은 피할 수 없고 수업료를 치르는 셈 쳐야 한다”고 선동했다.

다시 8월27일자 조선 데스크 칼럼에서 ‘월스트리트를 울리고 웃긴 산은’이라는 제목으로 김기훈 경제부 차장 대우는 “리먼을 인수하면 서울과 월스트리트를 직접 연결하는 ‘금융고속도로’가 생긴다”고 주장하면서 “만년 금융후진국인 우리가 요즘과 같은 가격에 세계 일류를 인수할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리먼의 위험만큼 기회가 커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고 도박판을 벌렸다.

또한 조선일보는 9월4일자 사설에서 ‘산은의 리만브러더스 인수는 철저한 손익계산 위에서’라는 제목으로 찬반을 소개하면서 “리먼 인수야말로 세계 금융 중심 월스트리트로 가는 직행열차에 올라탈 기회”라는 찬성론에 방점을 찍었다.

‘사적이익’을 위해 카지노 자본주의를 부추기는 금융관료와 언론과 엘리트들의 동맹

미국의 금융위기와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처를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들 지경이다. 정부는 아무런 근거 없는 낙관론을 퍼뜨리고 있다. 정부가 16일 개최한 경제·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리먼 사태가 파산신청으로 일단락됨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국제 금융시장에 팽배한 불안전성을 빨리 제거, 신용경색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펀드투자와 리먼 인수와 같은 도박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대통령에서부터 은행장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윤과 탐욕을 추구하는 미국식 금융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는 지금, 위험을 관리하고 국민의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인사들의 투기권유와 도박에 가까운 발언은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들이 금융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적 이익의 추구다. 이탈리아 철학자 노베르트 보비오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현대사회에서는 ‘경제를 관리하는 영역’에서 확대된다고 주장하면서, 민주적이고 사법적인 통제가 불가능한 권력이 커지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보았다.

한때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해 법률과 회계의 지식을 제공한 자들이 국가 관료가 되었다. 김앤장과 함께 국제 투기자본의 이익을 위해 헌신한 딜로이트 회계법인 출신의 금융위원장, 리먼브러더스 한국대표라는 지점장 지낸 산업은행장, 이들이 한국 금융의 요직을 차지했다. 언론은 월스트리트를 찬양하고, 이들의 행동을 선진금융 운운하면서 미화하고 있다. 언론과 투기자본, 관료사회를 넘나드는 브로커들이 합창하면서 도박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들은 ‘영혼 없는 군상’들이며, 이들의 목표는 ‘사적 이익’이다.

파산하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를 따라가는 행보를 멈춰야 한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는 한다. 그 이유는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망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 자본주의가 당장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망한다’고 하는 것은 인디언의 기우제와 같다. 그렇다고 지금의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영원히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자본시장의 ‘탐욕과 공포’ 대신에 누구도 무너지기를 바라지 않는 ‘공포의 균형’ 때문에 당분간은 지속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또 다른 변형과 제도가 나타날 것이며, 이는 ‘사회적 부를 나누는 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계급 간의 싸움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에서도 버티는 것은 기축 통화국이기 때문이다. AIG와 패니메이, 프레디맥의 경우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시장에 역행한다고 비난받을 국유화를 단행하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조치가 가능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금융시장이 혼란하거나 우리시장이 불안하면 바로 외환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점을 망각하고 ‘몇 단계 뛰어 올라가는 급행열차’를 잡기 위해 도박을 한다면 그 피해는 누가 감당 할 것이며, 누구에게 돌아올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전가된 것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기축통화국 미국마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금융세계화의 위험열차’에 우리가 동승해서는 안된다. 내년부터 시행될 ‘자본시장 통합법’은 미국식 투자은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 미국 금융위기를 계기로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최근의 전 세계 금융상황은 ‘탐욕과 부패의 시장’에 대해 ‘규제와 감시’, 그리고 ‘견제’가 얼마나 필요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경제위기’라는 것이 누구에게 부담을 떠넘길 것인지를 정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한다고 금반지를 모은 것은 한번이면 족하다. 금괴를 장롱에 숨겨둔 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사회적인 부를 더욱더 챙기면서 부자가 되었다. 노동자들은 가진 것 별로 없으면서 국가위기를 막는 ‘방패’가 되어 ‘바보’소리를 듣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말

장화식님은 투기자본 감시센터 정책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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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 투자은행 , 월가 , 자본시장 통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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