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안 보고 ‘생태체험학습’ 가던 날

“시험 못 보면 혼날텐데 뛰어놀아서 좋아요” 시험지 대신 ‘꽃과 풀’ 들여다보다

  전국의 초등학교 3학년생이 일제고사를 보던 8일, 130여 명의 학생들은 경기 포천 평강식물원을 찾아 생태체험학습을 진행했다.

“높은 산에서 사는 식물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선생님이 물었다.
“작게~” “가늘게~” “땅바닥에 붙어서~” 울렁찬 목소리로 여기저기서 답한다.

“맞아요. 춥고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키가 크지 않고 바위 등에 붙어서 넓게 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보세요. 인공으로 만든 바위에 이렇게 많이 붙어있죠?” 선생님이 설명했다. “인공이 뭐예요?” 궁금한 질문이 바로 돌아왔다.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고 사람이 만든 거예요. 식물이 편하게 자랄 수 있게 바위를 놓았어요.” 선생님이 답했다.

구절초는 토 나오는 냄새 나는 꽃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모든 초등학교 3학년생 59만8524명을 대상으로 일제고사를 강행한 지난 8일 수요일 오전 11시15분.

성은(10)이는 바위 옆에 조그맣게 핀 흰 색 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친구들은 학교에서 시험지를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이다.

“킁킁” 무슨 냄새가 나나 연신 코를 벌름거렸다. 몇 번 하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옆에 있던 주연(11)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토 나와. 토 나오는 냄새야. 이게 뭐지?” 성은이는 책을 찾아봤다. ‘구절초’였다. 성은이에게 구절초는 토 냄새 나는 꽃으로 기억됐다.

“시험 안 봐도 괜찮아요. 실은 공부를 하나도 안 해서 시험을 못 보면 엄마에게 혼날텐데요, 뭐. 뛰어놀 수 있어서 너무 좋구요. 길이 울퉁불퉁해서 싫어요.” 성은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성은이는 동네 친한 언니인 주연이 아빠 ‘아저씨’와 함께 왔다. 엄마, 아빠가 오늘 일을 하기 때문이다.

성은이 아저씨 이상호 씨는 “지금도 학원이다 뭐다 아이들이 공부한다고 7시에 들어와서 미치려고 하는데 굳이 일제고사까지 봐야 할까요?”라며 “놀 때 놀고 스스로 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14일 시험 대상인 6학년 아들과도 체험학습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성은이처럼 똑같은 시험지로 같은 시간에 시험을 보는 ‘국가 수준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보지 않고 ‘생태체험학습’에 함께한 3학년 학생이 서울, 경기 등에서 온 50여 명이라고 ‘일제고사를반대하는서울시민모임’은 밝혔다. 다른 학년까지 포함하면 130여 명이 이날 하루 학교를 가지 않고 식물원에서 꽃과 식물을 보면서 체험학습을 했다.

단순히 숫자로만 보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번 체험학습이 갖는 의미는 크다는 것이 시민모임 설명이다.

시민모임 회원이자 예비학부모라는 이치우 씨는 “신청한 사람은 5~60명이 더 되는데 교과부와 교육청의 강력 제재와 학교측의 회유로 당일 못 간다고 연락이 왔다”고 귀뜸하며 “이번 일로 교육의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이고 아이들 창의력과 감수성, 인성을 위한 교육이 어떤 것인지,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오는 14일과 15일 초등학교 6학년과 중고생을 대상으로 체험학습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이치우 씨는 밝혔다.

  초딩이여! 시험 없는 세상을 만들어라! 아이들은 버튼에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일제고사 안 보는 것도 인정해 학교에 가야 하는데”

어울리지 않게 두꺼운 안경을 낀 민재(10)는 손가락으로 잡은 메뚜기를 넣을 통을 찾고 있다. 옆에 있던 기자에게 “아저씨, 물 빨리 먹고 물통 빨리 주시면 안돼요?”라고 묻는다. 신이 난 표정이 가득하다.

민재 엄마 이정숙 씨는 “단순 암기 위주 공부나 시험이 싫었는데 인터넷으로 이런 학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참석하게 됐다”며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민재가 시험을 보지 않더라고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그걸 인정해 주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담임선생님께 얘기하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대단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3월에 진단평가를 봤다는 영조는 신나기 마찬가지다. 엄마와 함께 ‘나무 곤충 만들기’에 열중이다. “시험 안 보니까 좋아요.” 짧게 답하고 다시 얼굴을 묻는다. 자꾸 뭘 물어보는 게 귀찮은 표정이다.

영조 엄마 엄경원 씨는 “1학기에도 마음은 있었는데 일을 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보게 했다”고 밝히며 “이명박 정부가 너무 아이들에게 성적, 성적만 강요한다. 아이들 놀 시간이 없다. 아이들을 더 많이 놀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일 선생님으로 나선 최종진 민주노총 서울본부 부본부장은 이론 공부 등으로 미리 강사 준비를 했다. 시민모임은 20여 명의 강사로 시민, 학부모단체 관계자를 초빙하면서 지난 3일 현장 학습을 오는 등 준비를 했다.

최종진 부본부장은 “서울교육감 선거를 지켜보면서 교육의 공공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며 “성적지상주의로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정책을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한 올바른 교육 생각하는 계기 됐으면

어느 덧 예정된 학습이 다 끝나고 오후3시30분 됐다. 널따란 잔디광장을 뛰면서 도토리 많이 주어오기 내기를 하던 성은이는 옆에 있던 아저씨와 선생님에게 “더 놀다가요, 더 놀다가요”라고 보챈다. 아쉬운 모양이다.

아저씨 이상호 씨가 “다음에 친구들과 더 많이 와서 즐겁게 공부하고 놀자”고 몇 차례 말하자 성은이는 그제서야 발걸음을 뗐다. 그래도 부족했던 지 연신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최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