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계금융체제, 역사는 반복하는가(2)

[이종회 칼럼] 5. 무역전쟁에 통화전쟁까지

소위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달러중심 체제와 IMF에 대한 볼멘소리가 미국을 뺀 각 나라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영국의 브라운 총리는 “IMF 시스템은 21세기 경제상황에 맞지 않아 근본 개혁으로 신(新)브레튼우즈체제를 재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프랑스의 사르코지는 지난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G20 금융정상 회의에 앞서 “2차 대전 후 세계의 기축통화였던 달러화가 더 이상 그런 지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려고 내일 워싱턴으로 떠난다”고 밝혔다. 원자바오 총리는 “다양한 통화 사용으로 국제 통화 시스템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푸틴 총리도 “달러에 기반한 세계 금융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기축통화인 달러의 지위에 이의를 제기했다. 한결같이 신브레튼우즈체제 구축과 IMF 개편을 요구한다.

무너지는 달러의 지위, 그 이후는

미국의 대공황 이후 격렬해진 무역전쟁에서 각국이 수출에 유리하도록 자국화폐의 평가 절하 경쟁을 하는 가운데 무너져버린 통화체제를 대체하려고 만든 통화체제가 브레튼우즈 체제다.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협정)와 함께 2차 대전의 산물이자 세계경제 시스템의 양대 축인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국의 달러를 세계화폐의 지위를 부여했다. 따로 세계화폐를 만들자는 케인즈의 제안을 뭉갠 미국의 패권주의가 낳은 결과다. 전후 세계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세계 금의 70%를 보유했던 미국이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달러를 기축통화, 즉 세계무역의 결제통화로 하자고 주장하고, 달러를 기준으로 각국의 화폐를 평가해 고정환율로 외환시세를 정하는 IMF를 두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 말 공황과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달러의 지위가 무너지면서 1971년 닉슨대통령이 달러의 금으로의 태환을 거부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는 무너졌다. 고정환율제는 달러의 변동까지 감안한 변동환율제로 바뀌면서 환차를 노리는 투기까지 포함해 수탈적 금융화는 진전됐다.

미국발 금융위기 아니 자본의 공황기를 맞아 통화권과 일치하는 블록간 대응이 분명해지고 있다.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G7을 중심으로 그리고 통화권을 중심으로 대응이 이루어져왔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세계금융시장에서 달러 유동성 부족을 막기 위해 신흥국을 뺀 채 유럽중앙은행(ECB), 캐나다, 영국, 일본, 호주 등 8개국 중앙은행과 함께 달러화의 일시적 통화 교환예치(중앙은행간의 통화 스와프) 한도를 늘렸다. 그리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로존 15개 나라와 영국이 대규모 공적자금 조성, 은행간 자금 대차(貸借)거래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을 골자로 한 ‘유럽권 공동대책’에 합의한 것이 그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통화블록이 구체화되고 있다. 1997년 아시아지역 외환위기 당시 미국의 반대로 아시아지역 통화기금(AMF)이 좌절된 이후 2000년 5월 아세안+3 재무장관 회의에서 다자간 공동기금을 설치하기로 합의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가 부족한 유동성을 조달하기 위한 통화스왑을 매개로 현실화되고 있다. 중국은 풍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동남아 일부 나라와 위안화를 결제통화로 합의한다든지 한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할 때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하기로 결정해 엔과 위안이 경쟁을 하는 형국일 뿐 AMF 구축과 역내 단일통화의 흐름은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10월 27일 브라질리아에서 소집된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긴급 확대회의(4개 정회원국과 8개 준회원국)는 회원국간 무역 거래에서 미국 달러화 사용을 줄이고 자국 통화 사용 확대를 골자로 하는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방안’을 합의한 바 있다.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현존 국제금융질서 자체를 극복하기 위하여 달러 지배체제 폐기 등을 도모하는 한편,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통화기금(IMF), 미주개발은행(IDB) 등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작년 12월 9일 출범한 남미은행(Banco del Sur)의 가동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는 데에도 의견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지역 아랍 국가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협의회(GCC) 역시 통화동맹 협정초안을 마련하는 등 회원국 간 단일 통화제체 구축하려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세계통화체제는 무너지고 지역블록을 근간으로 하는 통화체제가 구축중이다. 당장 큰 변화는 쉽지 않겠지만 미국 헤게모니가 줄어드는 것과 맞물려 가속화할 것이다. 미국은 금융위기를 맞아 지난해 구제금융 이후 오바마 정부가 내놓을 추가 경기 부양안을 포함하면 올 상반기 2조 달러 이상의 재정적자를 예고하고, 달러를 찍어내는 만큼 달러의 가치가 떨어져 20% 정도 평가절하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폴 볼커 전 FRB의장도 달러화가 위기에 봉착할 확률이 75%에 달한다고 언급했다.

노동자 민중 수탈 않는 통화체제는 난망

기축통화로 대신할 정도는 아닐지라도 이미 결제통화의 지위를 차지한 유로를 비롯해 상대적으로 미약하지만 엔에 중국의 위안까지 가세하면서 미국중심의 IMF체제를 비롯해서 국제통화체제는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누구나 금융부문의 통제를 소리 높이지만 이미 오바마가 G7을 넘어 G20의 틀 안에서 국제통화관리가 돼야 함을 언급한 바 있듯 금융의 불안정성은 오히려 높아질 가능성이 더 크다.

WTO DDA 타결이 물 건너가고 공황기를 맞아 보호무역의 흐름이 강화되면서 GATT체제가 실제 붕괴할 조짐을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브레튼우즈 체제 역시 무너져 무역전쟁을 넘어 통화전쟁까지 예상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반복되는 역사의 흐름으로 보아 그 짐은 고스란히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의 몫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