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거부할 때부터 용산재판부 정치화”

억울한 철거민들의 사정에는 눈 감고 양형

한택근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총장은 “용산참사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을 거부할 때 이미 재판부가 정치화 되고 있다고 느꼈다”고 용산참사 1심 재판부의 정치화를 강하게 비난했다.

5일 민변과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교수 학술단체 주최로 열린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 원인과 해법’ 토론회 2부에서 한택근 민변 사무총장이 용산참사 재판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택근 변호사는 용산참사 피고인들의 구속적부심부터 변호인단에 참가해 검찰 수사기록 3천쪽 비공개에 항의하며 지난 8월 31일에 사임계를 낸 바 있는 초기 변호인단에 있었다.

한택근 변호사는 재판부가 정치화된 과정과 1심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택근 변호사는 “아홉 분의 피고인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특공방치사)혐의가 씌워졌는데 배심재판의 대상이라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면서 “재판부도 ‘국민참여재판을 전제로 배심원 등을 생각해 일반재판보다 쟁점을 폭넓게 하기 보다는 중요쟁점으로 압축하자’고 해 우리도 수긍했다”고 밝혔다. 한택근 변호사는 “그래서 사소한 것은 다투지 않고 가급적 쟁점을 잡아 화재의 원인과 특수공무집행방해가 되기 위해서는 적법한 공무집행이어야 한다는 한두 가지로 쟁점을 좁혀놨다. 당연히 하는 줄 알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한 변호사는 “그런데 검찰이 60명이 넘는 증인을 신청하자 준비 기일에 들어와서는 재판부가 참여재판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참여재판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부터 재판은 공정한 재판이나 순수한 법적재판이 아니라 이미 정치화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변호인단은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고등법원에 항고했지만 기각 돼 일반재판으로 진행하게 됐다.

한 변호사는 “일반재판 진행도중 경찰지휘부 수사기록 3천 쪽 문제가 나왔다. 변호인이 수사목록을 받고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수사서류 가운데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요구했는데 검찰이 주지 못 한다고 한 것”이라며 “진압책임자들의 진술조서들을 달라고 했으나 거부하고 진압과정의 적법성을 밝힐 핵심서류를 안 내놓았다”고 밝혔다. 한 변호사는 “검사가 수사기록을 안 내놓자 압수수색을 신청했더니 재판장은 ‘법원이 압수수색을 할 수는 있지만 변호인에게는 압수수색을 신청 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압수수색 신청이 정당한지 대답을 않겠다’고 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넘어갔는데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한택근 변호사가 밝힌 황당한 일은 검찰이 10월 5일 헌법재판소에 압수수색과 관련해 입장을 표명했는데 사실상 재판부를 우습게 보는 입장이었다. 한 변호사는 “검사가 수사기록을 안내놔도 법원이 필요하면 법원이 압수수색할 수 있기 때문에 안내도 된다는 의견서 였다. 압수수색을 거부하거나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되니 필요하면 압수수색 하라는 것이다. 법원을 우습게보고 가져가려면 가져가라는 것”이라며 “항소심 재판부가 압수수색에 어떤 입장 취할지 궁금하고, 1심 재판장이 이 문구를 봤을 때 어떤 생각할 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고 비꼬았다.

그는 “1심 재판에서 피고인들에게 가장 주요쟁점은 망루 내 화염병 사용과 적법한공무집행방해인지 였는데 그것을 입증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수사기록 3천 쪽을 안 주면 무슨 재판을 할 수 있겠느냐”며 “그 기록 없이 화재원인도 농성자의 화염병이고 공무집행의 적법성도 결론이 났다. 반족짜리 불공정 재판은 3천 쪽에 의해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암묵적, 순차적 공모관계 들고 나와 교묘한 조작

한 변호사는 이어 1심판결의 문제점을 짚었다. 한택근 변호사는 “특공대원들이 증인으로 나와 화염병을 못 봤다고 증언했지만 재판부는 결론을 냈다”면서 “판결대로라면 유증기가 가득한 망루 4층에서 불을 붙여 던졌다는 것인데 4층에서 불을 붙일 때는 이미 먼저 라이터 불이나 병에 붙은 불로 먼저 불이 나야 상식이다. 그 점에서도 납득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1월 19일 오후 부터는 농성자들이 길에 화염병을 던진 적이 거의 없다. 이미 주변이 포위된 상황에서 화염병을 던질 이유가 없어서 아주 평온했는데 판결문처럼 화염병이 날리는 상황이 아니었다. 20일 1차 진입 때 망루 안에 들어갔다 후퇴하는데 또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사생결단으로 들어갔다는 것인데 화재 농후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들여보낸 것은 이미 진압명령 내릴 때에 누가 죽어도 상관없는 국민의 생명신체안전에 대한 고려 없는 진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판결문에서 진압은 최소장비를 상용했고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크레인과 콘테이너 박스에 사방 물대포가 최소한의 장비 진압인가. 엄동설한에 사지 얼어붙는 것이 최소한이냐”고 반문했다.

한 변호사는 치사의 책임을 두고는 “어디서 불이 났는지도 확실치 않다. 던지지도 않았는데 치사죄의 책임을 지도록 암묵적, 순차적 공모관계를 들고 나와 교묘한 조작을 했다”면서 “당시 망루 4층에 올라간 사람은 2-3층에 있다가 특공대의 몽둥이를 피하려고 쫓겨서 4층에 갔던 사람들이다. 공포에 떨린 상황에서 화염병을 던져 누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 할 리가 없는 데도 순차적, 암묵적 공모관계를 인정하고 사망의 결과까지 예견할 수 있었으므로 치사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한택근 변호사는 또 양형사유를 놓고서도 “형사재판에 있어 범행 동기는 중요한 양형사유인데 재개발로 변변한 보상도 못 받고 억울하게 쫓겨 나야하는 철거민들의 사정에는 눈을 감고 양형을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변호사는 용산참사 재판의 과제로 △수사기록 공개 △폭력적 과잉진압 책임자 처벌 △국가와 진압책임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수사기록 은폐 책임자에 대한 처벌 및 손해배상 △형사소송법 제정 △특별법 제정 등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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