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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전날 지리산 둘레길의 한 풍경 |
지리산 둘레길은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잇는 주능선을 바라보며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마을길과 마을 주변 산을 잇는 길을 느릿하게 걸으며 자연과 인간이 소통한다는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둘레길의 의미에 동의한 각 마을 주민들은 마을길을 관통하도록 길을 열어 줬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조용한 시골마을을 관통해 지나야 하는 둘레길의 특성상 마을주민들과 만나는 것은 필연적인데 여행객과 주민의 소통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여행객들이 기본정보조차 확인하지 않고 둘레길로 떠나는 데서 기인하기도 하고, 여행자와 주민들 사이 둘레길 여행의 개념이 다른 데서도 기인한다.
우리나라 시골마을은 이미 50대가 청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노령화 된데다 고단한 농사일이 일상이 된 곳이다. 올해는 태풍 곤파스가 지나간 자리엔 벼가 쓰러진 곳도 적잖이 있다. 한가위를 앞두고 가을 농사일은 바쁜데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농심은 둘레길을 찾은 사람을 반기기도 하고 때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둘레길의 A마을에 사는 한 주민은 “주말에 서울에 살던 자식과 가족들이 내려와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함께 세우는데 둘레길을 돌던 사람들이 웃고 떠들면서 구경거리로만 보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고 사례를 소개했다. 이 주민은 “농사일을 거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말이라도 ‘힘드시지 않느냐’, ‘벼가 다 쓰러져 안타깝다’, 하다못해 ‘안녕 하세요’라는 인사라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라도 보여줬으면 덜 화가 났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원하는 것은 공감이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라도 표현하면 쓰러진 농심도 덜 힘들었을 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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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마을의 한 주민은 “1박 2일이 다녀간 후로 둘레길을 찾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었는데 사전에 준비는 매우 부족한 듯하다”며 “엄연히 마을이름이 있는데 강호동 길이 어디고 은지원 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어떻게 하나.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1박 2일을 본 것도 아니고 무작정 강호동 길을 찾으면 당혹스럽다”고 사전준비를 당부했다. 1박 2일에서 강호동과 은지원이 걸은 길은 5-6개의 마을을 거치고 3-4개의 산길과 고개 등을 포괄하고 있어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또 일부 둘레길 여행객들이 서울 동서울발 밤 12시 차량을 타고 새벽 3시 30분에 인월면에 도착해 바로 둘레길 3구간으로 가다가, 조용한 새벽 시골마을에서 플래쉬를 번쩍거리며 사진을 찍는 일도 있었다. 일부 구간의 고사리 밭엔 둘레길 주민들이 만든 ‘고사리를 꺽지 말아달라’는 팻말이 여러 곳에서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겹쳐지면서 모 마을 이장은 둘레길이 마을을 관통하지 않도록 길을 우회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할까도 고민 중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둘레길에서 만난 한 귀농 주민은 “둘레길 주변 마을은 나이든 어르신들이 대부분인데 어르신들에겐 인사성만 밝아도 잘 대해주신다. 마을 주민을 만나면 꼭 밝게 인사부터 해달라”고 당부하고 “어르신들과 인사도 나누고 건강도 염려하다 보면 마을 어르신만 아는 알려지지 않은 둘레길의 또 다른 명소도 소개 받을 수 있고 비정규 코스도 알 수 있다. 진짜 여행의 의미를 찾고 싶다면 둘레길 구간 완주의 의미도 좋지만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만의 색다른 여행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뀌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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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전날 지리산 둘레길에서 본 천왕봉 주변 |
이렇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지리산 둘레길이 방송을 타고 기존의 관광코스처럼 인식되면서 관광지로 인식하지 않는 마을 주민들과 관광지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여행객의 기본 인식차이가 크기 때문으로 보여 진다.
내 돈 내고 내가 가는 여행인데 더 편하고 잘 먹어야 한다는 관광객의 인식으로 둘레길을 걷다가는 실망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 둘레길 상황이다. 애초 관광 장소로 둘레길을 개통하지 않았고 그냥 시골마을을 잇는 것이 주 코스이기 때문이다. 또 둘레길 일부 구간은 표지판 찾기가 어려워 길을 잃는 일도 간혹 있다.
일례로 한 둘레길 준비자가 둘레길 안내 홈페이지에 불친절한 전화 응대를 지적하자 ‘사단법인 숲길’ 명의로 답변을 냈지만 둘레길 이용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사단법인 숲길’은 답변에서 “지리산 둘레길이 관심을 받고 몰려드는 이용자의 요구를 정리하고 되새기다 보니, 우리사회의 삶은 철저하게 편리와 편익, 화폐가치를 우선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린 참 여유가 없이 사는구나를 느낀다”며 “전화 응답 대기가 길어지면 바로 불친절하다고 합니다. 길을 잃거나 자신의 뜻대로 여행이 되지 않으면 도대체 뭘했냐 핀잔입니다. 내 돈을 들였으니 그만큼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지리산 둘레길은 불편을 조금 감소하면서 걷는 길이면 안되나...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며 둘레길의 의미를 되새겼다.
또 “잘 계획하고 예상해서 모든 사항에 잘 맞는 관리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점 거듭해서 사과드린다”면서도 “이용자들께서도 이제 막 걷기 여행이 시작된 우리사회의 모습을 눈여겨 보시고 왜 걷기 여행인가? 왜 지리산 둘레길을 만들었을까 ? 어떻게 사는 게 진솔한 삶인가? 둘레길이 순례길이라 하는데 뭐가 순례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여행길이길 바란다”고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사단법인 숲길의 답변에 한 시민은 “지리산길을 개설했으며, 운영하고 있으면, 아무리 고생할 생각하고 오는 여행자들이라도 이왕이면 덜 고생하며 즐겁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사)숲길에 있는 것 아니냐”며 꼬집기도 했다. 둘레길 운영에 많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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