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박근혜 대통령되려면 장준하 의문사 해결해야”

장준하 타살 확실, “아주 날카로운 쇳덩어리를 가지고 때린 것”

백기완 선생이 20일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박근혜 의원에게 대선에 출마하려면 1975년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부터 진상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땅의 대통령을 하겠다면 오늘의 역사적인 현실이 무엇을 요구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며 “이번에 장준하 선생에 대한 잔인무도한 학살, 암살, 내막을 밝히는 데 책임이 있는 분”이라고 밝혔다.

  1974년 1월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으로 인해 긴급조치 1, 2호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군사법정에 선 장준하 선생(우)과 백기완 선생(좌)

또한 유신시대의 과오를 박근혜 후보에게 물으며 연좌제를 적용한다는 논란에 대해 백기완 소장은 역사적 과오를 과학적으로 밝히는 일은 연좌제와는 관계 없는 일이라며 “그런 애매모호한 신문용어를 가지고 역사의 범죄를 눈 가리는 현장에 가담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백기완 소장은 또한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에도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때 그 비리를 밝힐 만한 역사적인 사명의식이 모자랐던” 것이라며 “아직도 그 진상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은 지금도 박정희 유신독재가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20일 청와대에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재조사 요청서를 전달한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는 21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타살을 확신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밝혔다.

장준하 선생 타살, “아주 날카로운 쇳덩어리를 가지고 때린 것”

장호권 씨는 먼저 타살 의혹 제기 후 장준하 선생 유골 두개골의 가로 6cm, 세로 7cm의 동그란 함몰흔적이 타살의 확증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타살의 확증이 아니다 라는 얘기는 또한 추락사의 확증도 아니다라는 얘기”라며 당시의 정황과 가족 그리고 가까운 지인의 증언을 토대로 타살에 대한 근거를 밝혔다.

그는 “첫 번째 아버님 시신의 상태, 아주 온전하신 상태였다”며 추락사로 힘든 모습이었다고 지적하는 한편, 당시 일관성이 전혀 없었던 목격자들의 진술, 유신시대라는 정치적 상황과 이에 대한 장준하 선생의 입장과 실천, 아는 친지로부터의 경고, 제재들을 복합적으로 볼 때 타살을 확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장호권 씨의 진술과 관련하여 백기관 선생은 앞선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는 새벽 1시쯤에서 암살 현장을 가봤다”며 “나는 다리하고 허리를 들고 머리를 들고 다른 손에 피가 묻어나는 걸 보고. 아, 여기를 맞았구나. 그랬어”라고 밝혔다.

백 선생은 또한 “동그란 걸 보라고. 이건 아주 날카로운 쇳덩어리를 가지고 때린 거야”라며 “그렇지 않고서는 그 동그란 게 자국이 안 나오게 돼 있어. 이번에 진짜 얼마나 잔인무도하게 학살했느냐 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데 앞장을 서야 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백기완 선생은 당시의 유신반대 투쟁과 장준하 선생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장준하 선생과 함께 등산을 했다고 주장한 최후 목격자 김용완 씨의 추락사 주장에 대해 “중앙정보부, 요새 국정원 직원이 그 사람은 중앙정보부의 사설기관에 정보원이었다”라고 밝힌 입장을 지적하고 “장준하 선생 주변에서 나하고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장준하 선생하고 등산을 같이 갈 수가 있는 거야?”라고 반문했다.

장준하기념사업회와 선생의 유족들은 개묘를 한 후에는 유골이 빨리 부패되기 때문에 최대 6개월 안에 진상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적어도 다음 정권 초기에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과학적 검시를 통한 사인을 밝힐 수 있는 상황이다.

장준하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서 광복군과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53년에 월간 사상계를 창간하고 당시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등 유신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1975년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는 거사를 준비 도중 8월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유신정권은 장준하 선생의 사인에 대해 하산 도중 실족사로 발표했으나 사건 직후부터 박정희 정권에 의한 타살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1993년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 사건을 재조사했지만 현재까지 명확한 사인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백기완 선생은 부산 피난 시절 장준하 선생이 부인과 길거리에서 사상계를 손수레에 싣고 끌며 팔러 다녔던 상황에서 장 선생을 알게 됐고 이후 함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긴급조치 1호 발령 후 공동으로 첫번째 구속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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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인수

    박정희의 명백한 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