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증 없어도 군대는 가지만 투표는 안된다는 정부

병무청, “생활기록부 확인해도 군대갈 수 있어” vs 선관위, “신분증 없으면 투표 안돼”

청소년 인권 활동가인 따이루 씨는 주민등록증이 없다. 주민등록 발급에 요구되는 지문날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따이루 씨는 운전면허증이나 학생증 등 대체할 만한 마땅한 신분증이 없기 때문에 금융거래를 비롯한 본인확인이 요구되는 거의 대부분의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출처: 다큐멘터리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선관위, “신분증 없이 본인확인 안되면 투표 불가능”

18대 대통령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따이루 씨가 이번에는 선거를 하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본인확인이 가능한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으면 투표소에 가더라도 투표용지가 배부되지 않는다.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인 따이루 씨는 ‘지문날인’을 거부한 까닭으로 참정권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 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선거권을 가진다”고 명시한다. 또한 공직선거법 제 6조는 “국가는 선거권자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본인확인이 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히며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신분증이 없어 선거를 하지 못하는 경우는 처음 접한 일이라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밝혔다.

선관위 관계자는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동사무소에 가서 ‘임시 신분증명서’를 발급받아 투표에 참여하면 될 일”이라며 문제를 일축했다. 그러나 선관위 관계자가 언급한 ‘임시 신분증명서’란 주민등록증을 분실한 경우 재발급까지의 시간동안 발부되는 임시 증명서로 애초부터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은 따이루 씨는 발급받을 수 없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어 “국가에서 발급한 본인식별이 가능한 신분증이 없으면 투표의 본인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본인확인이 철저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선 투표가 안된다”고 말했다.

병무청, “여러가지 방법으로 손쉽게 본인확인 가능”

그러나 까다로운 국가의 ‘본인식별’이 병무청에서는 손 쉬운 일로 둔갑한다.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따이루 씨는 병역의무 이행을 위한 징병검사에서도 신분증이 없어 고충을 격었다. 그러나 병무청은 “업무협조를 통해 학교생활기록부를 전달받아 본인식별을 하겠다”고 대책을 내놨다.

병무청 관계자는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해마다 35만에서 40만 명의 검사자가 있는데 신분증이 없거나 본인확인이 어려운 경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학교생활기록부에도 사진이 있으니 본인확인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국가에서 발급한 신분증이 아닌 학교생활기록부를 통한 본인확인은 허술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금융권에서 하듯, 집주소나 주민번호 뒷자리, 간단한 몇 개의 질문만으로도 본인확인은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학교생활기록부에도 사진이 부착되어 있으니 본인확인이 목적이라면 굳이 주민등록증이 없더라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간단히 본인확인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관계부처와의 간단한 업무공조만으로도 본인확인은 어렵지 않고 정부기관으로서 충분히 협조해야 할 내용이라는 것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권리행사는 어렵게, 의무이행은 손쉽게?

‘본인확인’이라는 똑같은 절차를 놓고도 각 부처의 태도는 이같이 판이하다. 이는 ‘의무이행’에 대해선 손쉬운 기준을 적용하고 ‘권리행사’에 있어선 높은 장벽을 치고 있다는 지적도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병무청 관계자는 “총기지급 등 보다 철저한 본인확인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어떤 방법이든 본인확인을 하려고 하면 바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금융권이나 다른 분야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본인확인을 한다”고 답했다. 반면에 선관위는 “모든 국민이 참정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노력해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대해 “국가에서 발행하고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이 아니라면 본인식별이 불가능”하다고 답해 차이를 보였다.

선관위는 또 “범법자, 금치산자 등 여러가지 이유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 하더라도 선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주민등록증이 없더라도 선거권이 부여되는지 행정안전부에 먼저 문의하라”고 말했다. “모든 국민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취지를 위배한 발언이라 볼 수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투표시간 연장’을 놓고 여야가 대치 중이다. 때마다 선거시기가 되면 선거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선거가 끝나면 참여에 인색한 국민들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선거에 참여할 의사를 갖고 있는 국민에 대해 정부는 ‘철저한 본인확인’만을 내세우며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따이루 씨는 현재 주민등록증 발급거부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불편사항과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따이루 씨는 앞으로도 “일괄적으로 과도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지문날인과 주민등록증 발급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표율 제고와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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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 , 선관위 , 선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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