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할머니와 8살 어린이가 동급생! 고창 봉암초의 교실 풍경

“세대를 아우르는 통합교육, 농산어촌 작은학교의 대안입니다”

지난 3월 2일 전북 고창군 부안면 봉암초등학교 입학식장. 전교생이 38명에 불과한 이 작은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의 주인공은 궁금증 많은 8살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학교 잘 왔다. 학교 열심히 다니자. 우리도 학교에 올 수 있다.”

입학허가서를 한 손에 쥐고 최석진 교장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는 박희순(73), 한영자(73) 할머니도 8살 아이들과 동급생 자격으로 입학식을 맞이했다.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기 위해 모두가 적극 협조하고 안내를 할 겁니다. 올해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고 연말에는 모두 성취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열심히 학교생활을 합시다.”

최 교장의 입학 축하 인사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두 할머니의 곁에 필리핀에서 온 다문화 이주 여성 박보람(29)씨도 앉아있다. 보람씨도 이날 입학식의 주인공이다.

70대 할머니부터 다문화 여성, 8살 아이까지 우리 모두 1학년 동급생

고창 봉암초등학교는 작년부터 어릴 적 학교를 다니지 못한 노인들과 다문화 이주 여성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작년 초, 최석진 교장은 고창군 부안면 여러 마을 노인회관 등을 돌며 학생 모집을 했다. 할머니들에게는 세배 인사와 함께 글을 학교에서 깨우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다문화 여성들에게는 자녀와 보다 친밀한 소통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전국적으로 다문화 가정의 인구가 약 150만에 달하고, 농촌 마을을 돌다보면 한글을 깨치지 못한 어르신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리고 농촌은 독거노인이 증가하는 추세이고 이 분들의 건강을 챙기고 심리 치료에 학교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문화 가정 내 불화와 고부 갈등 등 농촌이 안고 있는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지요. 할머니와 어머니, 아이 삼세대가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다면 학교가 생활과 소통의 장이 되는 것이죠.”

평생 한국사회에서 학교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이기에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입학이 어렵지는 않다. 학교 다닐 기회가 없었기에 한글을 읽는 것도 낯설었던 이들에게 봉암초등학교는 진정 배움의 장이었다.

“농산어촌 학교들은 갈수록 학생 수가 줄어 폐교 위기에 놓여있어요. 작년부터 할머니들과 다문화 여성에게도 입학의 문을 여니 학생 수가 늘었죠. 지혜롭게 폐교 위기를 극복한 셈이 됐죠.”

최석진 교장은 작년부터 노인과 다문화 여성의 입학을 도운 봉암초의 정책을 밝은 표정으로 설명했다. 한 평생 학교 문턱에도 가볼 수 없었던 할머니들에게 ‘까막눈’은 풀고 싶은 한이다. 한글이 서툰 보람씨에게도 마찬가지. 봉암초가 입학 문턱을 낮춘 결정은 이들의 한을 풀어줬고, 학생 수가 늘면서 폐교 위기를 벗었다는 점에서 학교와 학생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됐다.

“학교를 다닐 나이에 살림을 맡아야 했어.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9살부터 밥하고 빨래하면서 동생들 학교 보내야 했지. 글을 배우지 못하고 살면서 얼마나 답답했겠어. 까막눈이라고 어디 가서 말이라도 할 수 있었겠어.” (한영자 할머니)

칠십 평생 밥 하고 빨래하고 농사일까지 고생만 하다 거칠어진 할머니의 손. 이제까지 한 번도 쥐어보지 못했던 연필이 아직 어색하고 삐툴빼툴 글씨가 엉망처럼 보이지만, 이제야 손에게 제 짝을 찾아준 것 같아 기쁘다는 박희순, 한영자 할머니. 입학 선물로 받은 노트와 앞으로 배우게 될 교과서를 쉴 때마다 만지작만지작거리며 그동안의 한을 풀어본다.


두 할머니의 배우고자 하는 열정은 대단하다. 두 할머니는 작년에 입학 모집 시기를 맞추지 못하고 뒤 늦게 학교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한영자 할머니는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에 청강생 신분으로 1학년 과정을 빠지지 않고 다녔다. 박희순 할머니는 독학으로 한글 공부를 하며 이번 입학 모집만을 기다렸다. 간절한 기다림 끝에 봉암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된 두 할머니. 막상 입학식을 마치고 배정받은 교실에서 앉아보니 어색하기도 하다. 동급생 8살 아이들 5명의 깔깔 웃음소리에도 쉽게 표정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들떠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이 책을 보는 것이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을 수 없었어. 셈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그렇고 학교에 들어오니 너무 좋아”(박희순 할머니)

“학교를 다니고 한글을 배우니 2학년 손자에게 편지가 왔어. 할머니가 학교를 다닌다고 하니 좋아하면서 자기가 읽은 책 이야기를 해줬어. 앞으로 학교생활 하면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편지를 받고 무척 반가웠어.”(한영자 할머니)


이들에게 입학은 감동이었다. 아끼는 손주와 보다 친밀한 정을 나눌 수 있게 됐고, 남편을 여의고 외롭게 고향을 지키던 할머니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줬다. 필리핀에서 온 보람씨에게도 마찬가지. 가정 형편 때문에 일을 하는 와중에도 학교를 다니는 것도 열심이다. 아직 서툰 한국말로 이제 막 학교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어린 동급생들을 챙기는 교실 안에서 엄마 역할을 자임한다.

“평소에도 알고 싶은 것이 많고, 배우고 싶은 욕심이 많아요. 한국 속담을 공부하고 싶어요.” (박보람)

보람씨는 한 학년 진급하여 4학년이 된 아들이 있다. 아들과 함께 하는 학교생활이 즐겁다. 한국말에 익숙해지고 아들과 보다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소중한 일은 없다. 보람씨가 학교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다문화와 노인 아우르는 봉암초의 실험, 신선하고 주목해야”

문해 교육 중심으로 하여 노인들을 모여 한 학급을 구성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드물게 찾을 수 있지만, 봉암초처럼 여러 연령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학교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윤재웅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초고령화 사회에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문제, 도시와 지방간 교육과 문화의 격차 문제, 교육의 평등과 교육적 정의의 문제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실험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신선했다”고 봉암초의 통합교육에 가능성을 평가했다.

최석진 교장도 봉암초의 세대 통합 교육이 한글을 깨치지 못한 이들의 문해 교육에 방점이 찍힌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할머니들이 오랫동안 고향을 지키면서 가지게 된 지혜와 슬기가 있어요. 더불어 살아가는 정신을 이 사회에서 가지고 계신 분들이죠. 이 분들의 이런 지혜를 글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옛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지요. 그리고 배우고 싶은 의지가 대단해서 교실에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삶의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지요. 아이들은 이분들이 학교생활이 어렵지 않게 도움을 주고,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죠.”


“졸업하는 것이 꿈이야. 물론 몸에 맡겨야지”

봉암초는 올해부터 할머니와 다문화 여성을 위한 방과후 교육 등 맞춤형 교육을 보다 더 실효성 있게 배치할 예정이다. 또한, 체육과 음악 전공 교사도 따로 모셔왔다. 최 교장은 “체조를 전공한 선생님을 통해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유연성을 키우고 심신 건강을 위해 특별히 배려를 할 예정이에요. 음악도 노랫말을 통해서 문자 해독을 할 수 있는 교육을 할 예정입니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표효숙 교감은 “농산어촌 사회에서 봉암초와 같은 통합교육을 필요하고 연구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선 학교 단위에서 연구는 힘들지만 관련 기관들이 모여 국가적 차원에서 보다 더 대안을 만든다면 좋을 것 같아요. 특히 다문화 여성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학교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 등이 있으면 좋겠지요”라며 봉암초의 작은 실험이 많은 농산어촌 학교로 전파되기를 바랬다.

박희순, 한영자 할머니가 앞으로 졸업장을 받기까지 6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보람씨에게는 의무교육인 초등 교육을 마치기까지 보다 안정적인 삶이 절실하다. 이들이 보다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봉암초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 필요한 숙제들 중에는 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 고민들을 하나씩 이 사회가 풀어갔으면 좋겠다.

“할머니!! 졸업식 때 또 올게요. 꼭 졸업하셔야 해요.”(기자)
“몸에 맡겨야지. 졸업하면 좋겠지만, 몸이 견뎌야겠지. 건강해서 올해는 소풍도 같이 가면 좋겠어.”(한영자 할머니)

덧붙이는 말

문주현 기자는 참소리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참소리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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