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만들고 싶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정치칼럼]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발표에 즈음하여

법무부 소재지인 과천 정부종합청사 정문 앞을 지나다 보면 일부 기독교세력이 문재인 정권의 ‘성평등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 일인시위 등을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양성평등’을 ‘성평등 정책’에 대립시키는 그들 주장의 중심에는 LGBT의 부정을 상징하는 “동성애, 동성혼 반대”가 자리하고 있다. 그들이 문재인정권의 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의 실행이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즉 ‘프랑스 인권선언’이 공표된 이래 세계인권선언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더 나아가 개인이 속한 국가 또는 영토가 독립국, 신탁통치지역, 비자치지역이거나 또는 주권에 대한 여타의 제약을 받느냐에 관계없이, 그 국가 또는 영토의 정치적, 법적 또는 국제적 지위에 근거하여 차별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이에 근거할 때, 그들이 백주에 모여 “NAP OUT”을 주장하는 것은 인권선언의 기본 내용들을, 그것도 아주 당당하고 공공연하게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그런가 보다’며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부정이 단순히 그 선언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착취, 수탈, 차별, 배제 당해온 이들이 자신들의 삶 자체를 걸고 벌였던 투쟁의 역사와 성과를, 그리고 지금 현재 벌이고 있는 투쟁들을 무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페이지]

그렇다면 그들이 그처럼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3차 NAP가 이른바 ‘국가 정체성’, 그에 터하고 있는 ‘국민의 자긍심’을 훼손, 부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국가 정체성’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는데, 그들의 주장에서 그것을 유추하는데 참고할 만한 것은 애초 하느님이 남성과 여성으로 구별하여 인류를 창조하였다는 해석뿐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구별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것에 반하는 것은 그 자연스러움을 부정하는 것, 즉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기에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으며 용인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 판단과 행동의 유일한 근거는 그들이 해석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권위’다. 그들은 이 사회, 이 나라가 자신들이 맹종하는 그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다고 믿는다. 과거 일제 식민지로의 전락을, 세월호사건의 발생을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것이라 했던 일부 목사들의 발언이 시대착오적인 개인의 일탈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이다.

물론 ‘종말론’과 ‘천년왕국론’에 기대고 있는 그런 교조적인 해석, 언술들은 너무 오래되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이가 누구인가? 그들 자신도 부정하지 못하는 ‘독생자 예수’ 아니던가. 그런데 그 예수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집과 재물을, 좋은 옷을, 그리고 맛난 음식을 갖거나 먹어본 적이 없다. 교회라는 권력을 가져본 적도 없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내친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였기에 죽임을 당했고 바로 그렇기에 ‘부활’하여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항상 기득질서를 문제시하였기에 하나님의 존재 여부,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 여부와 무관하게 그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NAP OUT”을 외치고 있는 자들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 인지,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그런 예수의 존재를 부정하는 길만을 걷고 있는 자들에게 말이다.

그렇기에 문제는 그들 일부 기독교인들의 행태보다 문재인 정권에게 더 있다. 이른바 ‘헌법수호의 책무’가 있는 정권이 그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인권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여론의 반대 운운하며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의 실현을 역설해온 정권이 그저 꽁무니 빼기에 급급하기에 그렇다.

성소수자들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는 사회는 그런 나라에 부합하지 않는 것인가. 젠더 평등을 외치며 여성에 대한 착취, 수탈, 차별 등에 저항하는 것은 ‘사람이 먼저인 나라’의 실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오히려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더 이상 물러설 것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좀 더 참으라고 했듯이 그 상황을 인종하는 것이야말로 페미니즘의 진언(mantra)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그것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임을 자처했을 때, 거기에 숨겨 있던 진심 아니었는가. 이주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는 나라, 이슬람을 포함한 난민들의 피난처, 나아가 그들 삶의 거처가 되는 나라는 ‘사람이 먼저인 나라’가 이루어진 다음에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나라인가. 문재인정권의 ‘사람이 먼저인 나라’는 국민국가의 범주를 벗어나서는 도통 상상해 볼 수 없는 그런 것인가. 그토록 틈만 나면 지구화시대, 지구촌을 역설하면서 말이다.

지난 8월 13일, 문재인정권이 발표한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은 결국 소수자 범주에서 성소수자를 삭제하였다. 형식적이었지만, 이전 수구정권에서 존치했던 것조차 빼버린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는 국민 여론과 시민사회의 날카로운 대립이 있는 상황이라며 책임을 모면하였다. 물론 문재인정권의 이런 행태들은 인권이 국가가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국가를 넘어 나아가고자 투쟁할 때, 그리하여 그 국가를 끊임없이 재구성해 나갈 때,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주고는 있다. 그럼에도 도대체 그 ‘사람이 먼저인 나라’라는 언술은 그 나라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등장이후 계속 변주되며 지구촌 구석구석의 고통 받는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하릴 없이 또 묻는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나라는 도대체 ‘어떤 정체성’을 가진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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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관교

    정말 한심한 글이네 성소수자가 아니고 질병이지.. 담배도 기호소수자로 보로해주고 열심히 담배피라하하고 암걸리면 정부가 100%보상해주고 살인강도도 행위소수자이니 열심히 살인강도하라하고 문제생기면 정부가 100% 보상해주고 그러라고 하시지???

  • 을지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말라 이는 가능한 일이니라(레18:22)" 하나님께서는 동성애를 가증한 일(혐오스러운)이라고 말씀하시며 엄벌을 명령하셨다. 우주의 창조주가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며 창조주께서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창조주께서 동성애에 대한 혐오표현을 직접적으로 하신 것이다. 혐오스럽다는 것은 감정의 자연스런 표현이다. 우리 감정표현을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것은 우리의 근본적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 을지

    동성애는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 사탄의 지배를 받을 때 가능한 일이다. 동성애는 창조주의 질서에 정면으로 반항하는 행위이며 창조주를 대적하는 행위이다. 이는 제 정신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오직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영에 완전히 지배당할 때 가능한 일이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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