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영광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슈2] 21대 총선, 진보정당의 ‘몰락’일까

17대 국회 10석(민주노동당), 18대 5석(민주노동당), 19대 13석(통합진보당), 20대 6석(정의당), 21대 6석(정의당). 그간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거둔 의석수다. 지난 4월 15일 치러진 21대 총선은 진보정당의 연약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번에도 보수와 리버럴, 거대 양당 정치에 균열을 내기는커녕 후퇴만 거듭했다. 진보진영은 여전히 300석 중 고작 10석 정도를 차지했던 과거를 ‘영광의 진보정당 시대’로 기록하고 있다. 《워커스》가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21대 총선 결과를 되짚어봤다.


정의당, 득표율 올랐지만 지역구 참패

정의당의 총선 목표는 원내교섭단체 진입이었다. 20%의 정당 득표율을 얻고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해 20석을 차지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지역구 1석, 비례대표 5석이었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심상정 대표만이 당선됐다. 정의당은 조직적 기반을 다진 인천에서도, 영남 노동벨트에서도 힘을 쓰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을 제치고 2위에 올라선 정의당 후보는 고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였던 경남 창원성산의 여영국 후보뿐이었다.

사실 정의당 득표율은 적잖게 증가했다. 이번 총선에서의 정당득표율은 9.67%로 지난 총선 득표율 7.23%보다 2.44%p 올랐다. 총선 득표수는 269만 7956표로 지난 총선 때보다 97만 8059표가 늘었다. 그런데도 정의당의 비례의석은 단 한 석 늘었을 뿐이다. 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이라는 ‘비례위성정당’이 등장한 까닭이다. 위성정당이 없을 경우 정의당이 9.67% 득표율을 얻었다고 가정하면 연동배분에서 10석, 병립형 비례의석 2석을 가져갔어야 했다.

하지만 ‘모든 게 위성정당 탓’이라고 돌리기는 어렵다. 지역구에서도 참패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종철 당시 정의당 선대위 대변인은 “정의당이 지난 4년 동안 원내활동에 집중하고, 조직을 강화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동시에 미래통합당을 심판하자는 여론이 강했다.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미래통합당을 심판하자는 여론이 왜 정의당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김 전 대변인은 “민주당의 색깔이 과거보다 왼쪽으로 온 건 맞다. 예를 들면 과거 FTA와 같이 완전히 거꾸로 가는 노선을 내세우진 않는다. 또 민주당의 국정 100대 과제를 보면 탈원전, 노동시간 단축 등 진보진영이 전통적으로 얘기했던 걸 대부분 흡수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진보진영의 메뉴를 많이 차려놓고 실제로는 그 메뉴를 대부분 만들지 않았다. 이를 정의당이 더 정확하게 비판하고 불평등, 노동 문제에서 따끔하게 싸웠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정의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거대 양당의 ‘꼼수 정치’ 비판에 집중했다. 정의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성정당을 고발, 위헌 소송까지 내면서 이를 주요 이슈로 삼았다. 위성정당의 최대 피해자로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에선 진보정치 독자 노선의 명확한 입장 제시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전 대변인은 “정의당으로서는 위성정당이 없으면 얻는 게 커서 그 비판에 몰두하니, ‘정의당이 뭘 하려는지’ 부각되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며 “(위성정당에 대한) 태세를 중간에 전환하지 못한 오류도 있다”고 말했다.

민중당은 의석 상실

민중당은 정당 득표 3%를 목표로 세웠지만, 1.05%에 그쳤다. 지난 총선 당시 득표율은 0.97%였다. 득표수는 24만 5437표에서 29만 5612표로 늘었다. 하지만 민중당이 유일하게 당선권을 목표로 했던 민중당 김종훈 국회의원은 재선에 실패했다. 울산 동구는 미래통합당 권명호가 38.3%로 당선했고, 김종훈은 33.8%로 낙선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선은 24.5%, 노동당 하창민은 2.4%를 받았다. 이번 선거로 민중당은 하나뿐이던 국회 의석마저 잃게 됐다.

민중당은 선거 과정에서 위성정당 참여 논란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민중당 당시 선대위 관계자는 “민중당 이상규 상임대표는 정치개혁연합이 제안한 선거연합정당 참여에 의지가 높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상임대표는 3월 17일 국회에서 “민중당의 기존 총선 방침을 수정해야 할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판단”한다며 “선거연합정당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3월 22일 중앙위원회를 통해 의사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민중당 내에서 선거연합정당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던 때였다.

또한 3월 17일은 민주노총이 위성정당 참여를 결정한 녹색당에 대한 지지 철회를 발표한 날이기도 했다. 민중당이 선거연합에 참여한다면 가장 큰 조직기반인 민주노총을 잃는 셈이었다. 게다가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이 “이념, 성소수자 문제라든가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과 연합하는 데 어렵다”고 발언하며 논란이 일었다. 사실상 민중당과 녹색당을 겨냥한 메시지였다. 결국 민중당은 3월 19일 선거연합을 거부하고 “민주노총, 전농·전여농, 빈민해방실천연대를 비롯한 광범위한 진보진영의 힘을 모아 승리의 길로 가겠다”고 밝혔다.

이후 민중당은 자당 조직기반을 통해 선거운동을 벌여갔다. 민중당은 지난 3년간 총선을 목표로 노동자민중당, 농민민중당, 빈민민중당 등 부문별 정치세력화에 집중해 왔다. 노동자는 민주노총을 통해, 농민은 전농·전여농을 통해, 빈민은 빈민해방실천연대 등을 통해 조직을 다져갔다. 하지만 민중당의 총선 결과를 보면 기존의 조직 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중당 당시 선대위 관계자가 “민중당이 당원을 통해 조직한 표만큼 얻었다고 판단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민중당 당원은 약 6만 5천 명. 이 당원들이 조직한 표로 1.05%의 수치가 나왔다는 뜻이다. 당시 선대위 관계자는 “민중당은 민중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정치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향후 대중성 평가 항목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총선의 여파로 민중당은 올해 9월까지였던 대표단 임기를 오는 6월로 종료하고 신임 대표단을 선출해 새 전망을 모색하기로 했다.

악재 겹친 원외 진보정당

창당 8년 차인 녹색당은 2012년 총선 정당득표율 0.48%, 2016년 총선 정당득표율 0.76%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0.21%라는 역대 최저 성적표를 받아 안았다. 녹색당은 7회 지방선거에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로 신지예를 내세우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당시 신지예 후보는 박원순, 김문수, 안철수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제주도지사 선거에서는 고은영 후보가 자유한국당을 제치고 3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몇 차례의 선거를 거치며 녹색당 나름대로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둬왔던 터라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충격은 더욱 컸다.

녹색당은 이번 선거연합정당을 둘러싸고 가장 큰 내홍을 겪은 진보정당이었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던 하승수는 정치개혁연합의 선거연합정당 추진을 주도했다. 이후 녹색당은 3월 13일부터 사흘간 당원 총투표를 진행했고, 74.06%로 선거연합정당 참여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민주당의 ‘성소수자 소모적 논쟁’ 발언, 더불어시민당의 등장으로 3월 21일 녹색당은 선거연합을 포기했다. 위성정당에 반대하던 민주노총이 3월 17일 녹색당에 대한 지지 철회 입장을 밝힌 후였다.

아울러 신지예 전 공동운영위원장의 당내 성폭력 피해 사실이 공론화되고(신지예는 이번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서대문구갑 선거구에 출마했다), 김기홍 비례대표 후보의 ‘소라넷’ 이용 논란이 잇따르면서 녹색당의 내부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특히 김기홍 후보는 논란이 일자 “10년 전 성인지 감수성이 없었던 시기에 쓴 글(트윗)이었다.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표현을 접하고 상처 입은 분들께 죄송하다”며 4월 11일 자진 사퇴했다. 녹색당은 총선 이후인 4월 16일 ‘조직진단TFT’를 구성해 당내 갈등을 비롯한 어려움들을 해결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번 총선에서 사회주의 체제 전환을 내건 노동당도 0.12%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노동당의 지지율은 2014년 지방선거 광역비례 정당득표율 1.17%, 2016년 총선 정당득표율 0.38%, 2018년 지방선거 0.24%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노동당의 전신인 진보신당이 2008년 총선에서 2.94%, 2010년 지선에서 3.13%(광역비례 정당득표)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하락세는 더욱 가파르다. 노동당 관계자는 지난해 노동당 일부 세력이 탈당한 후 기본소득당을 창당했는데도, 당원 규모가 1만 1~2천명 수준으로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원 규모에 큰 변동이 없는데도 지지율 하락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린 노동당 대표는 “정당 지지율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빴다. 위성정당, 코로나 사태 때문에 선거운동에 차질이 생기는 등 이번 총선은 소수정당에 불리한 상황이었다. 국고보조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당은 최소 1억 2천만 원이 드는 공보물도 만들지 못했다”며 “하지만 노동당은 (국회의원) 당선이 목표라기보다는 당 조직의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선거를 통해 당 내부의 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1%씩 빠지는 진보정당 득표율 합…진보운동진영의 무능

진보정당 전체 의석수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진보정당 득표율의 합이 크게 떨어진 것은 아니다. 2004년 17대 총선 진보정당의 득표율 합은 13.22%다(민주노동당 13%, 사회당 0.22%). 18대 총선엔 8.82%(민주노동당 5.68%, 진보신당 2.94%, 한국사회당 0.2%), 19대 총선엔 11.91%(통합진보당 10.3%, 진보신당 1.13%, 녹색당 0.48%), 20대 총선엔 8.98%(정의당 7.23%, 녹색당 0.76%, 민중연합당 0.61%, 노동당 0.38%), 이번 총선엔 11.05%(정의당 9.67%, 민중당 1.05%, 녹색당 0.21%, 노동당 0.12%)다. 18대, 20대 총선을 제외하곤 진보정당 득표율 합은 10%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17대, 19대, 21대 총선만 놓고 보면, 진보정당의 득표율 합은 13%, 12%, 11%로 1%씩 하락하는 추세다. 총선을 거듭할수록 진보정당은 다원화됐고 표는 분산됐다. 17대 총선엔 진보정당 2곳, 19대는 3곳, 21대는 4곳의 진보정당이 각각 선거에 나섰다. 때문에 시민사회 진영 에서는 진보정당 통합이나 ‘선거연합’ 같은 요구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양날의 칼이다. 과거 진보정당이 줄곧 시도했던 야권연대는 ‘민주당 2중대’, ‘진보정치 우경화’ 라는 비판을 받았고, 이번 총선에서의 선거연합 역시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위성정당 문제로 이어졌다.

한국 최대의 내셔널센터인 민주노총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민주노총은 이제 조합원 100만 명을 거느린 명실상부 제1노총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총선에서 ‘총선 투쟁 범국민 대회’ 등 정치 투쟁을 조직했지만, 이번 총선엔 별다른 대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민주노총은 102명의 민주노총 후보·지지 후보를 발표하면서 조합원들에게 ‘계급투표’를 주문했다. 김명환 위원장이 직접 정치위원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102명의 민주노총(지지)후보 중 당선자는 단 2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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