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톺아보기, 바이든 당선 배경과 신정부 전망

[INTERNATIONAL] 무거운 심판의 시작

[출처: 트럼프 트위터 계정]

자본가들의 ‘손절’

지난 11월 23일, 미국 월가 금융자본의 수장들을 비롯한 뉴욕 유수의 자본가 160여 명이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정권 이양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들은 “질서정연한 정권 인수가 늦어지는 순간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약화되고 미국의 국제적 위상도 하락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민주적 절차의 진실성에 대한 존중과 국익을 위해, 즉각 조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를 대통령 및 부통령 당선인으로 확정하라”고 요구했다. 이 성명에는 신용카드사인 비자와 마스터카드, 초거대 금융자본 골드만삭스와 블랙록, 신용평가사 무디스를 비롯해 세계 4대 회계‧컨설팅 기업 KPMG‧딜로이트‧PwC‧EY의 미국법인, 그리고 지난 수년 사이 사무실 임대업으로 급부상했던 위워크 등 각종 유명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이름을 올렸다.(1)

공교롭게도, 이전까지 바이든을 당선자로 인정하지 않으며 몽니를 부리던 트럼프 정부는 이날 공식적인 정권 이양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트럼프는 여전히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며 진흙탕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어쨌든 이 공식 인계 절차를 지시한 것 역시 트럼프였다. 그 자신이 일원이기도 한 뉴욕 자본가들의 집단 ‘손절’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르긴 몰라도 트럼프는 꽤나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4년 내내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로 자본가들의 주머니를 그렇게 두둑이 챙겨줬는데,(2) 이제 와서 마치 본인들이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것처럼 나서며 자신에게 ‘고마 해라’라는 공개 선언을 하다니?

‘뻔뻔한 배신’(적어도 트럼프에겐)의 압권은 단연 GM이었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GM 회장 매리 바라는 마찬가지로 11월 23일(우연인지는 모르나, 이 하루 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다) 환경단체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트럼프 정부가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에 반대하며 제기한 소송을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GM이 ‘친환경 기업’으로 개과천선이라도 한 걸까? 애당초 이 소송 자체가 기존 자동차 기업의 이익을 위해 트럼프 정부가 이들 자본의 지원을 받아 캘리포니아주의 환경 규제를 무너뜨리려고 제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GM은 당장 지난해 10월에 이 소송에서 트럼프 정부를 지지하고 나선 바 있다.(3)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살피다가 판세가 완연히 기울었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안면몰수하고 “바이든 행정부와 협력해 100% 전기차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선언한 것이다.

쓸모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트럼프의 상대가 바이든이 아니라 버니 샌더스였다면 이 자본가들이 이렇게 ‘민주주의’나 ‘환경’을 내세우며 트럼프와 손절할 수 있었을까? 한때 민주당 내부 경선이 본격화하기 전에 (샌더스보다 자본주의에 더 친화적인) 엘리자베스 워런이 유력 후보로 부상할 무렵, 월가의 대변자들은 워런의 ‘부유세’나 ‘독점기업 규제’ 등 대표 공약을 문제 삼으며 ‘차라리 트럼프가 낫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펼쳤다.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던 샌더스는 아예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논외’였다. 이런 자본가들에게, “내가 그 사회주의자[샌더스]를 패배시켰다”며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닌 바이든은 (조세 정책에서 다소 불편함은 있겠지만) 신뢰할 만한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으로서, 2008년 대공황 이후 전적으로 자본가들을 구제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는 걸 실천으로 입증했다. 어차피 지배계급의 이익에 근면성실하게 복무할 인사가 다수표를 얻은 상황에서, 이제 자본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체제 안정’이지 ‘공연한 분란’이 아니다. 자유주의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정치제도를 수호하는 전문성 높은 공직자들이 각자의 의무를 다한 덕분에 트럼프는 선거 결과를 뒤집지 못했다”고 치켜세웠지만,(4) 엘리트의 ‘직업윤리’보다는 자본가들의 냉철한 계급적 판단이 트럼프의 폭주를 다소간이라도 제어하고 정권 이양을 가능케 한 것 아닐까.

[출처: 트럼프 트위터 계정]

‘이번 판은 나가리’라도

하지만 이미 대세가 판가름 난 지금까지도 트럼프는 ‘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선거 조작으로 투표 결과를 훔쳤으며, 나는 이번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비단 트럼프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은 아니다. 부통령 마이크 펜스와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같은 정권 핵심 인사들은 바이든을 당선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4년 전만 해도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비웃던 공화당 주류 역시 트럼프와 섣불리 손절하기보다는 ‘아직 최종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듯 대단히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 가령 <워싱턴포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선거를 치르고 한 달이 지난 최근 시점에서조차 공화당 현직 상‧하원의원 249명 가운데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이 이겼다’고 명확히 인정한 사람은 고작 27명(11%)에 불과했다. 반면, 대다수인 220명(88%)은 ‘이번 대선의 승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침묵했다(심지어 2명은 ‘트럼프가 승리했다’고 주장했다).(5) 한발 더 나아가,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주는 ‘(바이든 승리로 뒤집힌) 펜실베이니아‧조지아‧위스컨신‧미시간 등 4개 경합주의 선거 결과를 무효 처리하라’며 주(州) 정부 차원에서 대선 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여기에 공화당이 우세를 점한 17개 주가 가세했다(다만, 연방대법원은 이 소송을 기각했다).

이는 ‘대선 불복’이 ‘트럼프 개인의 괴상한 기질’ 때문만은 아님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과연 이들이 명약관화한 선거 결과를 무리한 소송으로 정말 뒤집어엎으려 한 것일까? 법원이 연달아 선거 불복 소송을 기각하긴 했지만, 설령 ‘트럼프와 친구들’이 법적 다툼에서 승리한다고 한들, 지금의 여론 지형에서 이는 다수의 지지는커녕 암묵적 추인도 얻어내기 어렵다. “Grand Old Party”(약칭 ‘GOP’. 풀이하자면 ‘장엄하고 유서 깊은 당’ 혹은 ‘대(大)보수당’ 정도일 것이다)라는 거창한 별칭으로도 자주 불리며 민주당과 함께 미국 지배계급 정치질서의 양축을 구성하는 공화당이, 고상하게 미국 정치제도의 ‘명예’라고 자랑하던 ‘선거 승복’의 원칙(6)을 탐욕적으로 박살내면서, 현재 지배계급이 그토록 피하고자 하는 내전 수준의 혼란을 진정 도모하고 있을까? 표차가 아주 적었다면 그들의 ‘선택적 명예’는 그만큼 단숨에 무너지기 쉬웠겠지만, 이미 격차는 (전국 득표 기준) 7백만 표 정도로 벌어졌다. 트럼프 역시 ‘주(州)별 선거인단이 대선 결과를 최종 확정한다면 그에 따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가뜩이나 ‘승복’과 ‘불복’ 메시지가 난잡하게 뒤섞인 이 모순 속에서 그들의 내심을 정확히 알 순 없다. 다만, 위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이들이 ‘이번 선거 결과 뒤집기’를 노린다기보다는, ‘억울하게(또는 부당하게) 승리를 탈취당한 피해자’라는 구도를 지속적으로 제기함으로써 곧바로 2년 뒤 다시 열리는 총선과 4년 후 대선에서 회심의 탈환전을 벌이려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좀 더 타당한 것 같다. 물론, 평상시라면 7백만 표나 벌어진 선거 결과를 두고 ‘선거 조작이 벌어졌다’는 주장이 오래도록 대중의 반향을 일으키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4년 전 트럼프가 당선할 수 있었던 배경이자 그 자신이 더욱 부추긴 현상, 곧 ‘불신과 적대감으로 가득한 분열된 미국’이다.

<프레시안>이 미국의 <비즈니스 인사이더> 보도를 인용해 전한 바에 따르면, 당장 이번 선거에 대해 여론조사업체 <갤럽>이 실시한 설문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83%가 ‘바이든 당선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이보다 더 많은 89%는 ‘선거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견해를 표명했다(반면,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92%가 ‘제대로 작동했다’고 응답했다).(7) 한편, ‘1900년 이후 120년 만의 최고치’라는 이번 미국 대선 투표율(현재 대략 67%) 역시 미국 내에서 상호 적대감이 고조하며 대중이 적극적(혹은 공격적)으로 의사 표현에 나선 징표라고 읽힌다. 예컨대 <이코노미스트>는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다는 공포가 양측 모두를 엄습한 게 높은 투표율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짚었다. 이 매체는 선거 직전에도 사전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미국인 5명 중 1명은 당면 선거에서 상대 당이 승리할 경우 폭력 사용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2017년보다 현저하게 증가한 수치다. (…) 상대 당에 대해 유권자의 60%는 ‘미국에 위협이 된다’고, 40% 이상은 ‘악(evil)’이라고 간주하고 있다.”(8)

게다가 미국 유권자 전체를 놓고 보면 트럼프는 충분히 ‘다음 판’을 노려볼 만한 결과를 얻었다. 이번 투표율이 상당히 높긴 했지만, 여전히 유권자의 33%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채 그 누구에게도 표를 던지지 않았다. 투표에 참여한 사람(총 유권자의 67%) 가운데 바이든과 트럼프 지지율이 51:47로 갈렸으니, 전체 유권자로 분모를 확대하면 바이든이 34%, 트럼프가 31% 정도다. 바이든 지지와 트럼프 지지, 그리고 기권(혹은 투표 거부)층이 대략 1/3씩의 비중을 점하는 속에서 소폭의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즉, 이는 당초 ‘꽤 큰 차이로 바이든이 승리할 것’이라던 민주당의 예측이 빗나갔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지난 2016년 대선보다 1천만 표 이상을 더 끌어모은 트럼프에게는 여전히 강력한 대중적 지지가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무엇보다 트럼프 지지를 형성하고 있는 핵심축인 하층 노동계급의 불만을 바이든 정부가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증폭시킬 공산이 큰 상황에서, 트럼프는 ‘어그로를 끌며’ 민주당 정권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바이든 페이스북 계정]

‘바이든-맥코널 연립 정부’

이번 선거 구도는 ‘트럼프냐 바이든이냐’라기보다 ‘트럼프냐 아니냐’에 가까웠다. 양자의 최종 맞대결에서 바이든 캠프에는 여러 스펙트럼의 집단이 뒤섞여 있었는데,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등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좌익에서부터 (민주당의 보수적 주류는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Never Trump’를 기치로 내건 공화당 내 반(反)트럼프 세력까지 모였다. 이 연합이 지속될 리는 만무하다. 이미 선거 직후부터 민주당 주류는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특히, 대선과 동시에 치른 이번 총선에서 하원 의석은 빼앗기고 상원 다수당 탈환에도 실패한 것)의 책임을 좌익에게 돌리면서 거세게 공격하고 있는데,(9) 여기에 방금 전 언급한 공화당 출신 ‘안티 트럼프’ 인사들이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다. ‘진정한 연합’이 무엇인지를 대놓고 보여주는 것이다.

비단 이 ‘공화당의 배신자들’에게만이 아니라, 바이든 정부는 공화당 주류를 향해서도 손길을 내밀고 있다. 법안 거부권을 비롯해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는 상원의 다수당 지위를 공화당이 유지할 가능성이 상당한 상황에서(내년 1월 최종 확정), 바이든은 일찌감치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맥코널과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만약 실제로 공화당이 계속 상원을 장악하게 된다면,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으로서는 자신들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 가운데 재정 확대를 통한 저소득층 지원이나 노조 가입 활성화 등 자신들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의회에서 가로 막힌다’는 좋은 핑곗거리가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단순한 핑계를 넘어, 바이든과 맥코널은 ‘초당적 협력’의 발을 맞춰본 경험을 충분히 갖고 있다. 오바마 정부 시절 부통령이던 바이든은 당시에도 공화당 원내대표였던 맥코널과 수차례 협상하며 “민주당원을 분노하게 하는” 수준의 예산안 삭감 합의를 들고 왔는데, 이는 “고용보험을 팔아넘기고, 고소득자 세금은 줄이면서, 의료보험과 사회보장을 축소하는” 것이었다.(10) 더욱 큰 문제는 이때가 2008년 대공황 직후로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얄궂게도 바이든이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는 현시점 역시 코로나를 동반한 경제위기가 불어 닥치며 미국에서만 2천만 명 이상의 실직자와 수백만 명의 영구실업자가 발생한 상황이다. 그리고 미치 맥코널은 이번 대선 직전 (민주당이 아니라) 트럼프 정부가 제시한 경기부양책조차 ‘재정 균형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던 인물이다. 게다가 올해 양적 완화와 경기부양책으로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국채 발행을 폭발적으로 늘리면서 이미 국가부채가 2008년 대공황 수준을 뛰어넘어 GDP 총액의 100%에 다다른 만큼,(11) 백신 투약과 락다운 해제 등으로 경기가 반짝 회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재정 긴축론이 대두할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그 선봉에 설 게 빤한 맥코널과 ‘협력’하겠다고 하니, 벌써부터 ‘바이든-맥코널 연립 정부’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간

바이든 정부가 경제위기를 타개할 만한 다른 뾰족한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무작정 양적 완화를 확대하기도 어렵다. 올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통칭 ‘Fed’)는 지난 2008년 대공황 이후 거의 5년간 시행한 것과 맞먹는 액수의 대규모 양적 완화를 불과 몇 달 사이에 전격적으로 단행했는데, 이렇게 풀린 돈이 자산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주식을 비롯한 금융자산 가격을 폭등시켰다. 이는 한편으로는 자산 소유자들의 부를 증폭시키면서 불평등을 확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산시장 거품을 키움으로써 리스크를 높이는 문제를 야기하는데, 양자 모두 새 정부에겐 감당하기 부담스런 상황이다. 최근 바이든이 오바마 정부 시절 연준 의장을 지낸 재닛 옐런을 재무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중앙은행의 돈 풀기가 더 확대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실제로 옐런 휘하의 연준은 2014년 말 양적 완화를 중단하고 2015년 말부터 (트럼프 정부 집권 이후 현직 제롬 파월로 의장이 바뀌는) 2018년 초까지 계속 기준금리를 올렸다.

그렇다고 양적 완화를 축소하는 것 역시 선뜻 택하기 어렵다. 세금을 대폭 인상하지 않는 이상(물론 이것 역시 간단하지 않은데, 자본가들과 부유층에 세금을 물릴 것이냐 아니면 노동자들에게까지 세금 부담을 씌울 것이냐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정 지출을 늘리려면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하는데, 이러면 채권 금리가 상승하게 되고 이는 시중 금리 인상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현재 2008년 수준에 버금가는(중소기업의 경우 그보다 더 악화된) 적자를 보고 있는 미국 기업의 악성 부채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 기업은 올해 고위험 채권(신용도가 낮은 기업이 돈을 빌리려면 높은 이자를 지불하는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데, 이자도 높지만 그만큼 부도 위험도 큼)만 3,600억 달러(약 400조 원)어치를 발행했는데, 이는 2012년의 3,450억 달러 이후 최대치다.(12) 이자율이 상승하면 이 부실기업들이 부채를 버틸 수 없게 되는데, 그간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를 통해 국채를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매입하면서 채권 금리가 튀어 오르는 것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양적 완화를 축소하거나 중단하면 이자율이 점프하며 기업 부도를 야기할 공산이 커진다. 현재 아마존이나 구글, 애플 등 일부 대형 기술 기업을 제외하면 기업들의 신용 수준이 상당히 하락한 상황에서, 기업 부도는 연쇄적 파산으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에 직면한 바이든 정부로서는 대처 방안이 마땅치 않다. 위기의 파고가 점증하는 가운데 신정부의 무능 혹은 공화당과의 담합이 계속될수록, 노동계급 하층의 불만은 오바마 정부 말기 때처럼 재현될 수 있다. 트럼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파고 들어야 할 자리를 우익 포퓰리스트가 점하는 사태를 되풀이할 것인가의 문제가 미국 사회주의자들의 앞에 다시 다가왔다. 쳇바퀴처럼 당장 2년 뒤 치러질 총선을 앞두고 ‘현실 논리’로 민주당 안에 계속 남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민주당과 다르다’는 것을 조직적‧실천적으로 대중 앞에 입증할 것인가. 대선이 끝을 향해 치닫는 지금, 또 다른 무거운 심판이 시작되고 있다.

[각주]
(1) “164 New York business leaders urge the Trump Administration to Move Forward with Transition: Open Letter on Presidential Transition”, 2020.11.23.

(2) 부유층과 상대적 고소득층이 투표에서 트럼프 지지 성향을 보인 것 같기는 하다. <뉴욕타임즈>가 집계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연간 소득 10만 달러(약 1억 원) 이상인 유권자층에서는 54:42의 비율로 트럼프 지지가 우세했다(, “National Exit Polls: How Different Groups Voted”). 물론 출구조사는 표본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결론을 일반화할 수 없지만, 마르크스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 역시 이번 대선 결과를 분석하며 “여러 조사에서 백만장자들이 대거 트럼프를 찍은 것으로 드러난 점으로 미뤄볼 때,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트럼프 지지세가 강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Michael Roberts blog(), “US election: women, the young, the working class, the cities and ethnic minorities get rid of Trump”, 2020.11.8.).

(3) Reuters, “GM hits reverse on Trump effort to bar California emissions rules”, 2020.11.24.

(4) The Economist, “The resilience of democracy”, 2020.11.28.

(5) The Washington Post, “Just 27 congressional Republicans acknowledge Biden's win, Washington Post survey finds”, 2020.12.6.

(6) 물론 여기에서 ‘선거 승복’의 ‘상대’는 철저히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한정된다. 가령 1920년 미국 사회당 지도자 유진 뎁스는 사회주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투옥된 채 대선에 출마해야 했고, 이후 미국 공산당 역시 1950년대 반공주의 광풍(매카시즘)이 불기 이전부터 대대적인 검거와 탄압에 시달렸다. 미국 밖으로 나가면 더욱 노골적인데, 대표적으로 중남미에서 좌파 정당이 집권한 경우 미국이 군사 쿠데타를 조직해 정권을 전복시키는 사례는 흔했다.

(7) 프레시안, “공화당 지지자 83% ‘바이든 승리 안 믿어’”, 2020.12.8. , “83% of Republicans polled after the 2020 election said they didn't believe Joe Biden won”, 2020.12.8.

(8) The Economist, “The presidential race: Hello, 46”, 2020.11.7. “The Trump audit: Four years on”, 2020.10.31.

(9) 변혁정치, “혼란한 선거, 어정쩡한 결과, 공격받는 사회주의”, 2020.12.1.

(10) Jacobin, “A Biden Win and a GOP Senate Spells Stalemate-or worse”, 2020.11.4.

(11) The Economist, “Treasuries: The bonds that bind”, 2020.11.7.

(12) The Economist, “The outlook for corporate America: Still ailing”, 20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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