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는 ‘민원’이 아니다

[질문들]

지난 12월 13일, 25회 인천인권영화제가 나흘간의 상영을 마치고 폐막했다. 매일 늘어가는 코로나19 환자를 확인하며 과연 영화제를 무사히 치를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내내 가시지 않았다. 사람들이 만나고 모이는 공간을 사라지게 하는 코로나19의 맹위 속에 열린 만큼, 영화제에서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경제적 이유로, 차별과 혐오로 공간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코로나19를 이유로 또다시 공간에서 밀려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오늘도 삶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고, 인천인권영화제는 이들과 함께 삶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코로나19 시대, 함께 만드는 공간

2020년 한해 모든 삶이 코로나19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인천인권영화제도 흔들렸다. 정기상영회와 영화제를 진행하는 ‘영화 공간 주안’은 다양성 예술영화관으로 구청이 관리하는 공간이다. 코로나19의 양상에 따라 많은 공간의 운영상황이 변했는데, 특히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간은 가장 먼저 닫히고 가장 늦게 열렸다. 영화 공간 주안 역시 2020년 극장 문이 열린 날보다 닫힌 날이 더 많았다. 극장이 닫히는 동안에는 계획했던 정기상영회를 할 수가 없었다.

25회 인천인권영화제를 앞두고 고민은 깊어졌다. 때마침 10월에 방역 조치가 1단계로 완화되면서 극장이 재개관 했다. 영화제 활동가들은 만약을 대비해 극장 상영과 함께 온라인 상영과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모두 준비하기로 했다. 물리적 거리 두기가 관계의 단절로 이어져서는 안 되며, 눈빛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생겨나는 힘이 있기에 공간을 여는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공간에 들어선 사람들이 채우는 온기로 곁을 지키는 이들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것이 용기가 됨을 알기에 오랜 고민과 논의 속에 결정했다. 더불어 이 공간을 공유하는 관객과 활동가 모두 ‘안녕’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일지도 논의했다. 활동가들이 함께 논의하면서 구체적으로 방역행동을 만들고 관객에게도 함께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참여를 제안했다. 정부의 방역지침과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일방적인 지침이 아닌 서로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을 위한 행동을 제안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혐오

3회 인천퀴어문화축제도(12월 20일) 진행 중이다.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 역시 올해 축제를 진행할 수 있을지, 진행한다면 어떤 의미로 어떻게 진행할지 깊은 논의를 했다. 혐오 선동 세력의 극렬한 방해와 폭력을 경험했던 인천퀴어문화축제는 1년에 한 번인 이 공간과 시간을 이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천 지역의 퀴어들이 지지와 연대 속에 자신의 삶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랐다. 거리에 모일 수 없는 대신 각자의 메시지를 담은 250여 개의 현수막이 부평 거리에 게시돼 ‘퀴어로(路) 물들’였다.

인천인권영화제에서도 3회 인천퀴어문화축제의 일환으로 영화 〈우리에게 남은 공간〉 상영과 대화의 시간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영화제 바로 전날 경찰서 정보관에게 전화가 왔다. 인권영화제에서 인천퀴어문화축제와 함께 하는 영화 상영 때문에 상영 시간에 맞춰 집회 신고가 접수됐다는 것이다. 확인해보니 이날 인천퀴어반대대책본부라는 단체가 인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영화 상영을 비롯한 3회 퀴어문화축제 행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이들은 극장에서의 상영이 “인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인천 전체를 코로나 확진 도시로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다”라며 공포를 조장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려와 감염을 핑계로 한 혐오는 다르다. 이들은 수어 통역사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것마저 시빗거리로 삼았다. 혐오 선동 세력이 늘 그래왔듯이 코로나19 시대에는 성소수자를 공동체의 위협이 되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감염병의 위기를 활용했다.

인천인권영화제와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는 소수의 피케팅으로 신고된 집회에는 개입하지 않지만, 관객 출입을 방해하는 행위는 경찰이 제지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관객으로 가장해 극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미리 차단할 수 없기에, 극장 안에서의 혐오와 차별 발언은 용인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알려주기로 했다. 대화의 시간에 이야기 손님과 객석에서 혐오와 차별의 발언이 나올 경우도 상의했다. 이들은 혐오 발언에 대해서는 우리도 분명히 해줄 말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누구든지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진행하자고 했다. 영화 상영 당일, 극장 문이 열리기 전부터 우리의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달려온 여러 단체 활동가와 회원들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혐오와 맞설 힘을 느꼈다. 걱정했던 마음을 물러가고 당당함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변했다.

차별과 혐오 앞에 중립은 없다

개막 전날부터 〈우리에게 남은 공간〉 상영일까지 우리를 괴롭힌 것은 혐오 선동 세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극장과 구청으로 매일 전화를 걸어 상영중단을 종용하는 소위 ‘민원인’들 때문이었다.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는 행사를 단지 누군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행사 주최자들이 점검 당하고 압박받아야 하는 상황이 화가 났다.

혐오 선동 세력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코로나19 전파에 대한 우려로 위장했다. 2.5단계 방역지침으로 극장은 저녁 9시까지 전체 객석의 30%만으로 운영하고 있음에도, 마치 영화제가 방역지침조차 지키지 않는 것처럼 말했다. 동시에 극장에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아느냐, 방역도 안 한다”며 대관을 취소하라고 매일 전화를 걸었다. 영화제 때문에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협박에 구청과 경찰은 매일 극장으로 출근하며 대책 회의를 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극장은 경찰의 요구라며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출입명부를 따로 작성해달라고 요구했다. 극장 입구에서 이미 체온과 출입명부를 기록하고 있는데 영화제만 따로 명부를 작성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반대집단과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대체 이 명부로 사전에 영화제 관객과 반대집단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제는 이 요구에 동의할 수 없으며, 관객이 왜 자신만 두 번씩 출입명부를 기록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경찰과 극장이 요구했다고 대답할 것이라 하니 “그것은 좀…”이라며 회피했다.

경찰에게 권한도 없이 어떤 근거와 이유로 이런 조치를 요구했는지 따져 물으니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극장과 다시 확인하겠다고 했다. 극장과 경찰이 이후에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영화제 관객만 따로 출입명부 작성하는 것은 없던 일로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것이 두 기관 사이의 오해였든, 불필요한 관객 관리를 해서라도 혐오 선동 세력의 요구에 응해야겠다는 과잉대처였든, 아무도 영화제에 사과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어디 인천인권영화제 뿐이겠는가. 혐오 선동자들은 자신의 차별과 혐오를 정당한 요구인 양 압력으로 행사한다. 당사자들이 어차피 자신들의 요구를 듣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우회적으로 행사를 무산시킨다. 주로 행사를 진행할 공간이나 공공기관을 압박해 대관이나 행사를 취소하게 만든다. 이미 이런 방식으로 효과를 제법 보았으니 계속 반복적으로 한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마치 찬/반의 갈등인 것처럼, 혹은 다수의 사람이 ‘다른 입장’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모양새로 만들면서 소수자에게 불리한 상황을 유도한다.

2020년 폐막작으로 상영한 〈학교 가는 길〉은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과 특수학교 부지에 한방병원을 짓겠다는 허황한 공약을 한 국회의원 때문에 5년째 공사를 시작도 못 한 현실을 보여준다. 특수학교 건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장애인과 그 부모들이 지역의 발전을 위한 한방병원 자리를 빼앗은 사람으로 취급하며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교육권에 대한 책임은 외면한다. 한 장애인 엄마의 “일반 학교가 들어와도 이랬겠냐”는 말은 핵심을 찌른다. 결국 교육권을 보장해야 할 교육청은 찬/반 의견을 토론하겠다며 공청회를 열고 이후 반대 주민들과 병원 부지를 약속하는 대가를 주고 합의한다.

이처럼 차별과 혐오의 발언과 태도를 하나의 의견처럼 받아들이면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는 사라질 수 없다.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임에도, 권리를 파괴하는 행위마저 민주적 토론에서의 반대의견처럼 취급한다. (이런 태도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런 과정이 결국 국가가 차별을 용인하는 꼴이 되고 혐오 선동 세력의 나쁜 학습만 강화된다. 이것이 국가가, 정치가, 공공영역이 ‘차별과 혐오로 타인의 인권을 박탈하는 요구는 수용하지 않는다’라는 태도를 먼저 보여야 하는 이유다.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차별금지법을 ‘나중’으로 미뤄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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