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말’의 무게는 다르다

[미디어택]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대하여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무시하고 떠드는 사람이 기자가 되면 얼마나 위험한지, 자기 말의 무게를 모른 채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겠어요.”

“기자들도 알았어야죠. 자기 말이 다른 사람들 말보다 무섭다는 걸....”



2014년 11월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피노키오〉기하명(이종석 분)의 대사들이다. 드라마는 잘못된 보도로 파탄 난 가정에서 살아남은 아이가 언론에 갖는 적개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 하명이 하필이면 기자가 된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언론의 역할 그리고 전문직으로써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기레기’ 논란이 벌어진 이후에 방영하면서 의미를 더했다. 우리는 기억한다. 당시 많은 언론인이 빈소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시간은 흘렀다. 누군가 ‘언론은 나아졌는가’ 라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배우 반민정 씨가 언론매체 들로부터 받은 수많은 2차 가해를 보라.

반민정의 언론 보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반민정 씨는 2015년 4월 영화 촬영 중 합의되지 않은 신체접촉으로 상대 배우였던 조덕제를 상대로 법정 싸움을 벌여 승소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언론들이 가해의 당사자로 나섰다는 점이다. 언론매체들이 반민정 씨를 괴롭히는 방법은 다양했다. A그룹 매체들은 그를 ‘피해자’라 명명했지만, 반민정 씨의 피해들을 자극적으로 전달했다. B그룹의 매체들은 성폭력 가해자였던 조덕제가 유튜브에서 하는 2차 가해 발언들을 열심히 퍼 날랐다. C그룹 매체들은 ‘조덕제는 무죄’라는 프레임으로 보도하거나, 반민정 씨를 악의적으로 ‘꽃뱀’으로 몰아갔다. A그룹과 B·C그룹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언론에 의한 2차 가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반민정 씨가 참다못해 몇몇, 그중에서도 악의적인 매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 이유다.

반민정 씨는 이번에도 (일부) 승소했다. 그로 인해 헤럴드경제는 ‘배우 조덕제의 무죄 주장이 공감되는 3가지 이유’ 제목의 기사 등을 비롯해 90여 건의 기사를 삭제했다. SBS플러스는 4건의 기사 중 1건 삭제와 위자료 3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매일신문과 영남일보에 대해서는 강제조정 명령이 내려졌으며, 판도라TV는 1천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사과했다. 성폭력 가해자 조덕제의 사주를 받아 ‘갈취O’라는 꼬리표를 붙여 허위보도에 나섰던 코리아데일리는 폐간 수순을 밟았다. 그리고 편집국장이던 이재포 씨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어떤가. 정의는 승리했다고 봐도 무방한가. 반민정 씨가 받았을 고통을 양팔 저울에 달면 어떨까. 반민정 씨가 허위보도로 인해 피해를 받기 시작한 때는 2016년 7월부터다. 그리고 법원에서 언론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이 나온 때는 2020년 11월이다. 4년 넘는 시간이 흐른 것이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반민정 씨를 향한 고깝지 않은 시선은 여전히 남아있다. 삭제되지 못한 언론 보도들과 함께 말이다.

미디어계 뜨거운 이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현재 미디어 관련 가장 뜨거운 이슈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다. 열린민주당이 ‘오보방지’를 위한 총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국회 개원 직후,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법무부가 언론사를 포함한 기업 등 상인의 영리활동 과정에서 고의·중과실로 인한 피해 유발행위를 억지하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논란이 확산한다.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 언론 3단체는 법안 폐기 및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다. 언론 표현의 자유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입법이라는 얘기다.

반민정 씨의 법률 대리를 맡았던 언론인권센터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최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인권운동더하기는〈2020인권보고서〉 발행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찬성한 것으로 알려진다. 보고서에는 “상법을 통해 모든 영리 행위로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을 확대해보자는 정부 측 제안에서 언론만 쏙 빼자는 식의 태도는 다른 산업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적시됐다. 이는 언론인권센터보다 한 발 더 나간 주장이다. 언론인권센터는 “언론 보도는 상행위가 아니다”라며 ‘상법’이 아닌 언론 관계법을 통한 도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 확대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던 인권운동 단위들이 성급한 결론을 내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의는 현 정부의 이른바 ‘가짜뉴스 때려잡기’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그 시작은 조국 전 장관의 자녀 특혜 의혹 보도 그리고 손혜원 전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보도가 문제였다는 인식에 기초해 있기도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언론’ 관련 법안들은 충격적인 것들이 많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등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다 ‘전기통신기본법’ 상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던 박대성 씨 사건(미네르바)을 기억할 것이다. 2010년 12월, 헌법재판소는 “허위사실의 표현이 사회윤리 등에 반한다고 해도 헌법이 규정한 언론·출판의 자유의 보호 영역에 해당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었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는 해당 판결 취지를 훼손하는 법안들이 다수 제출돼 있다. 정부·여당 주도로 추진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당초 반민정 씨를 비롯한 일반 시민들의 피해구제를 위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언론의 자유’라는 무게, 2021년에는 나아질까

“그래서 넌 징벌적 손해배상 찬성이야, 반대야?”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개인적으로 현재 진행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논의는 반대다. 언론의 감시기능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 사회에서 소중한 목소리를 내왔던 소규모 매체들이 사라질 우려도 있다. 작은 매체들은 허위보도를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이 소수 매체를 괴롭힐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요한 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여부가 아니라, 시민들의 언론 피해에 대한 예방과 구제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언론 현업인들의 태도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언론 현업인들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 그들의 입에서 먼저 나왔어야 할 말은 ‘반대’가 아니라 언론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자성’이어야 했다. 언론피해가 발생하는 시스템을 점검하고 적극적으로 피해구제에 나서야 할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 언론의 자유는 그들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했을 때만이 유효하다. ‘언론·기자들이 갖는 말의 무게’란 그런 것이다.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