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하지 않은 세계를 먼저 사는 사람들

[레인보우]


지난해 1월,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전역 처분을 받고 기자회견을 연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를 몇 줄 쓰고는 이내 멈췄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도록 더는 쓰지 못했다. “군대가 지키는 것”이라는 제목을 달고 “군인이 지키는 것 말고, 군대가 지키는 것”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했으므로 어려운 글은 아니었다. 군대가 지키는 것은 사람의 삶이 아닌, 사회 통념이니 미풍양속이니 하는 말로 지칭되는 구태의 질서일 뿐이라는, 늘 하던 말을 다시 하면 됐다. 이런 시니컬한 말은 대개 싸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음에 걸렸지만 역시 큰 문제는 아니었다. 역시나 늘 해 온, 내가 싸우는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더 쓰지 못한 것은 그를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라와 국민을 지키고 국가에 헌신하는 군인을 꿈꿨다고 했다. 그 꿈을 생각하며 힘든 군 생활과 성별 불쾌감, 우울증을 견뎠다고 했다. 수술을 결심한 그는 부대 재배치 의사를 묻는 군단장에게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남고 싶다고 답했다. 어려운 이야기였다. 내 좁은 세계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종종 자신에게는—성소수자에게는, 노동자에게는, 장애인에게는, 여성에게는—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국가를 비판하고 군대를 거부하는 삶에만 익숙한 나로서는, 자신을 지켜준 적 없을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동안 언론 보도가 이어졌고 이후로도 종종 여러 소식을 접했다. 육군은 전역 처분 취소를 요구한 소청을 기각했다. 그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UN은 강제 전역은 국제인권법 위반임을 지적했다. 정부는 으레 그랬듯 휴전국의 특수성이니 의학적 판단이니 하는 말들을 주워섬긴 답변을 내놨다. 몇 달째 기사를 볼 때마다 그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그의 세계를 궁금해했다. 나는 줄곧 내 세계에만 머물렀으므로 쓰다만 글에서 한 글자도 더하지 못했다. 그러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세계는 어떤 곳인지 물어보지 않았으므로, 앞으로도 저 글은 더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가보지 못한 세계, 혹은 도래하지 않은 세계

그의 세계를 알게 됐더라면, 국가와 군대를 지금까지와는 달리 생각해 볼 일이 생겼더라면, 아마 나의 세계는 조금 혼란스러워졌을 것이다. 실은 이미 혼란스러웠으므로 쓰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저 군대를 바꾸고 싶었던 투사로 선을 그었더라면 생길 일 없는 소란이 이미 벌어졌다. 내가 가본 적 없는 세계, 내게는 도래하지 않은 세계, 그러나 그는 이미 살고 있던 어떤 세계를 상상해야 했다. 가보지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나는 이미 그를 알기 전과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불에 타 사라지는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노인의 죽음에 관한 문장으로 배웠지만 몇 년 치의 책이 꽂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그저 책을 모으는 일만이 아닌 책을 쓰는 일이기도 하므로, 우리는 모두가 서로 다른 세계이자 서로 다른 도서관이기도 할 것이다. 꼭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일이다. 그리고 군대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거리에서, 누군가를 사라지게 한다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을 무너뜨려 없애는 일이다. 이는 누군가의 세계가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남은 모두의 세계가 좁아지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가보지 못한 세계를 끝끝내 도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쫓아내고 남은 자신의 세계를 좁히는 일이다. 약간의 혼란과 함께 저 모든 가능성까지를 덮어버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울 테다. 이미 알려져 버린 세계를 온전히 피할 길은 없다. 쫓겨난 이들의 도서관에 꽂혀 있던 책은 낱장이라도 어떻게든 그들 서가에 파고들 것이다. 이미 다른 책들에 섞여 읽히고 있다. 그들의 책은 이미 다른 내용이 돼 있다. 다른 세계를 꿈꾸는 사람은 지금 이곳에서 다른 삶을 산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는 늘 이미 도래해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애써 피해 가려 하는 그 세계가 이미 그들의 세계에 찾아가 있다.

먼저 사는 우리들

몇 개의 도서관이 사라졌다. 한해가 시작되고 미처 계절이 한 번 바뀌기도 전에 세 명의 트랜스젠더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알려진 트랜스젠더와 알려진 죽음이 그만큼일 뿐이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도 있을 것이다. 죽지 않았으나 사라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수 없는 그 사라짐을 생각하는 대신 그들이 살았던 삶을, 그들이 어딘가에서 계속 살고 있을 삶을 생각한다. 먼저 살다 간 이들을, 먼저 싸운 이들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유지를 받들어 내가 마저 싸우겠다고, 그렇게 다른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사라지고 누군가의 세계가 사라졌다는 것은 누군가가 살았고 누군가의 세계가 있었다는 뜻이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관계 맺고 다른 책을 쓰고 다른 세계를 짓는 누군가가 있었고 또 지금도 있다는 뜻이다.

죽음이 아닌 삶을, 죽음으로서가 아닌 삶으로써 기억하겠다는 다짐이다. 내가 살아본 적 없는 세계를 내 곁에서 사는 이들, 그렇게 내 세계를 흔드는 이들, 함께 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이들—나는 그런 이들을 우리라 부른다—에게 답하겠다는 다짐이다. 당신의 곁에서 내가 살아가는 세계, 어쩌면 당신의 세계를 흔들지도 모를 나의 세계에 기꺼이 와달라는 청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먼저 살고 있다. 이미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나중으로 밀리지 않는다. 덮이고 묻혀도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살고 흔들고 기대는 수많은 세계가, 끊임없이 넓어지고 달라지는 그 세계가, 우리가 과거에 답하고 미래에 말을 거는 방식이다. 우리가 서로의 친구가 되는 방식이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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