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생 김계월의 해고1년

[기고] 자부심으로 이어온 해고투쟁과 원청 사장 박삼구의 구속

365일, 해고된 지 1년이 넘었다. 5월 15일이면 거리에 농성천막을 세운 지 1년이다. 김계월 아시아나케이오지부장을 포함한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노동자들의 해고투쟁은 억울함으로 시작됐다. 회사가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무기한 무급휴가를 강요했기에 민주노조는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민주노조 조합원들만 정리해고 했다. 부당해고다. 물론 그전에도 부당노동행위는 일상이었다. 무료노동을 강제한 회사를 상대로 체불임금 소송도 했으니 민주노조가 눈에 가시였을 터! 코로나19를 핑계로 정리해고하기 좋은 국면이었다. 이는 중노위도 인정했다.

  아시아나케이오 정리해고 1년 문화제 때, 발언하는 해고노동자들 [출처: 아시아나케이오공대위]

권리의식으로 드나들던 노동청

공공운수노조 소속의 아시아나케이오지부는 회사의 불법, 편법행위를 바꾸기 위해 목청을 돋웠다. 김지부장은 그 싸움의 앞에 있었다.

“사실 민주노조가 생기기 전에도 저는 입바른 소리를 많이 한 편이었어. 젊은 시절에 노조활동을 한 적이 있어서 기본적으로 회사가 지켜야할 임금이나 노동조건에 대해 알았거든. 제일 화가 난 것은 밥을 제때 안 주는 거였어. 일도 밥을 먹어야 할 수 있는 거잖아. 밥 시간이 됐는데도 밥을 안주고 계속 일을 시키는 거예요. 새벽부터 일하는데 얼마나 배고프겠어? 관리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일을 더 시키는 게 낫겠지만 그건 아니잖아. 그래서 밥 달라고 항의했지. 그리고 노조 없을 때는 사람들은 최저임금도 몰랐어. 스페셜 조(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을 꼼꼼히 청소하는 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회사가 수당처럼 몇 만원을 더 주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신나했는데, 사실 우리를 배려해준 게 아니야. 기본급이 낮아 최저임금법에 저촉되니까 수당형태라고 최저임금에 맞춰야 해서 준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수당이 아니라 최저임금 맞추려는 거다, 스페셜 조라고 특별대우해준 거 아니고 꼼수다, 그렇게 알려줬지. 사실 스페셜이라고 오히려 주임이 지적질이 많았어. 힘들었지.”

노조가 생기고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많이 나아졌다. 인체에 해로운 약품을 쓰면서도 그에 대한 안내나 마스크도 주지 않는 회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한 것도 그녀였다. 명절에 아무도 쓰지 못하던 휴가를 쓸 정도로 그녀는 권리의식이 강했다. 대체휴무를 마련하지 않으니 동료들이 휴가를 쓰지 못했다. 한번은 회사가 그가 휴가 쓴 걸 무단결근으로 처리한 걸 월급명세서를 보고 알았다. 노동청에 고발했다. 그 후 긴급노사협의회가 열리고 다른 사람들도 명절 날 휴가를 갔다. 그렇다보니 “김계월이 있으니 든든하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는 동료들이 늘어났다. 그런 자신감으로 일했다. 고발장을 쓰고 노동청을 드나드는 게 그녀의 일이었다.

그런데 노조가 아무 기약 없는 무기한 무급휴가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데 그냥 수용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서로 노력하다가 무기한 무급휴가를 결정한 것이 아니다. 무기한이니 언제 불러줄 지도 알 수 없다. 아니 회사가 부르지 않아도 된다. 정부가 기간산업이라고 지원한다는데 왜 그 효과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미치는 않는가. 게다가 회사는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억울했다.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부당해고 판정문은 노동자들이 옳았다는 것을, 민주노조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일이다. 해고싸움을 한 지 두 계절이나 바뀐 후였다.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그녀의 눈에 눈물이 쏟아졌다. 판정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경영악화를 이유로 해고하더라도 기간이 정함이 있는 무급휴직,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순환근무 등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고,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은 근로자들을 해고대상자로 선정하여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해고대상자를 선정했다고도 볼 수 없다”

12월 중노위 판정 후에도 회사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행정소송을 걸었다. 경영이 어렵다면서 수억 원의 수임료가 드는 대형로펌 김앤장의 변호사들 기용했다. 그뿐 만이 아니다. 회사는 중노위의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수천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내는 쪽을 택했다. 경영난이 아니라 노조탄압을 위해 정리해고라는 걸 보여준다.

  박삼구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단식 30닐차 김정남 지부장과 박종근 부지부장 [출처: 아시아나케이오공대위]

하청업체를 총수 일가의 경영권 수호로

원청인 금호문화재단은 공익법인임에도 아시아나케이오를 비롯한 하청업체 6곳의 지분을 100% 소유하며 부를 늘렸다. 공익법인이라서 증여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면제받는다. 그런데 공익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부당해고 하고도 모자라 사익 챙기기에 급급했다.

게다가 박삼구 이사장은 2019년 3월 경영실패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금호문화재단은 놓지 않고 있다. 이른바 날개마크를 사용하는 대가(상표권)로 박삼구에게 1년간 월별 연결매출액의 0.2% 수준인 120억 원을 금호산업에 받아갔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직원의 50% 이상이 휴직인데도 상표권 사용료로 금호산업에 매달 10억 원씩 비용을 지불하는 비상식적인 결정이다. ‘총수 일가 배 채우기’다. 부는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이 없다.

10억으로 사들인 하청업체는 매년 9억에서 10억을 벌어줬다. 아니 하청노동자들을 쥐어짜서 10억을 가져갔다. 하청노동자들은 땀을 흘리면서 일해도 쉬지도 못하고 최저임금을 겨우 받으니 말 그대로 피땀을 긁어간 것이다.

박삼구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동으로 재산만 늘린 게 아니다. 박삼구 총수일가의 경영권 방어에도 활용했다. 금호문화재단은 2012년 금호산업 지분을 매각한 뒤 금호타이어 유상증자에 참여해 박삼구의 우호지분은 늘렸다. 2015년에도 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설립된 SPC 금호기업에 400억을 출자하기도 했다.

우리의 투쟁이 역사에 의미가 있겠지

김계월 지부장은 해고 투쟁을 하면서 항공재벌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불법행위를 잘 알게 됐다. 해고투쟁이 부패와 불법으로 쌓아온 재벌과의 싸움과 연결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해고 1년을 앞둔 전날 밤, 그녀는 점점 말라만 가는 단식자들을 보고 속상함을 달래듯 필자에게 말했다.

“처음 아시아나케이오에서 일할 때 놀랐어. 20대에 모토로라공장에서 일했지만 노조가 있어서 그랬는지 이렇게 열악하지는 않았어. 30년 이상이 흘렀는데도 사람들은 (회사가)시키는대로 다했어. 노예처럼. 나는 속으로 생각했어. ‘이렇게 일하면 안 돼. 이러면 더 시킬 거야. 환경을 바꾸어야 해.’ 그러다보니 바른 소리도 많이 하고 민주노조 활동도 한 거지.”

그녀는 젊은 시절 노조활동을 했던 즐겁던 때를 떠올렸다. 선전홍보부장을 하느라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글도 쓰고 사진도 찍으며 치열하게 생활했다. 결혼 후 일을 그만두었다.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시간제로 일하다 자녀들이 큰 후 다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생계비를 벌기 위해 직장을 구한 곳이 바로 아시아나케이오였다. 항공사 하청업체다.

젊은 시절부터 노조 일을 했던 그녀는 노동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다. 주변에는 청소노동을 하는 걸 숨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기내청소하는 게 왜 부끄러워. 우리가 청소한 비행기를 사람들이 타고 다닌다는 자부심이 있어. 난 사람들이 무슨 일 하냐고 물으면 비행기청소한다고 말해. 사실 노동의 가치는 나부터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청소일 한다고 깔보는 사람도 있지만 노동 자체를 인정해 줘야지.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뭐가 더 좋은 게 아니고) 단지 나눠져 있을 뿐이잖아.”

그녀는 30년이 흘렀는데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싸움을 여전히 할 줄은 몰랐다며, 변하지 않는 게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자본가들의 변하지 않는 탐욕이라고. 회사가 노동자들을 하찮게 여기고 막 대하면 안 되지 않냐며, 노동자 없이 회사가 굴러 가냐며 힘을 주어 말했다.

“처음에는 분하고 억울함으로 싸웠어. 중노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을 때 조금 억울함이 사그라졌어. ‘내가 옳았구나’ 법에서도 인정해주니까. 그리고는 자존심으로 싸운 거 같아. 내 자존심이 포기를 허락하지 않았어. 노동자라고 해서 자존심이 없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최근에 연대하는 사람들 중에 연배가 많으신 분들, 오래 활동하신 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 ‘아시아나케이오지부 해고 싸움은 아시아나케이오만의 싸움이 아니라 가진 자와 빼앗긴 자의 싸움, 대재벌과의 싸움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부담감도 느꼈지만 자부심이 더 느껴졌어. 우리가 세상의 희망이 되면 좋겠다. 우리의 투쟁이 역사에 의미가 있겠지?”

박삼구가 구속되던 날

박삼구 금호문화재단이사장이 영장실질 심사를 하던 날, 김계월 지부장은 서둘러 중앙지방법원으로 갔다. 심사를 받으러가는 박삼구 얼굴에 대놓고 그의 범죄를 기억하고 싸우는 사람이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박삼구가 쫓아낸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그의 잘못을 꾸짖고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를 핑계로 법원은 출입을 통제하고 사진 촬영도 통제했다. 박삼구가 몰래 들어올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다. 범죄자를 더 챙기는 국가기관들이라니! 그렇다보니 당당하게 법정에 들어가는 박삼구에게 큰소리 치는 걸 놓쳤다. 나올 때라도 소리쳐야겠다 싶어 기다렸다. 영장실질심사는 6시간이나 이뤄졌다. 온갖 변명을 하고 지은 죄가 많으니 심사가 길어진 것이다.

간간이 복도에 판사와 변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내식 대란’, ‘금호고속’ 등의 말이 들렸다. 드디어 박삼구가 법정에서 나왔다. 법원의 방해로 가까이서 말하지는 못했지만 목이 터져라 외쳤다.

“박삼구는 부당해고 해결하라! 박삼구는 감옥으로!”

  영장실질 심사가 열리기 전 법정 앞에서 기다리며 피켓을 든 모습 [출처: 아시아나케이오공대위]

자정 쯤 결과가 나온다는데 조마조마했다. 그녀는 밤새 TV를 켜놓았는데 깜박 잠들었다. 새벽 1시 40분쯤 뉴스 자막으로 박삼구가 구속된 것을 알았다. 비록 아시아나케이오 부당해고를 사유로 구속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마음이 시원해졌다. 사필귀정이란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박삼구 구속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지만 해고자 복직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랐다.

이렇게 63년생 김계월의 해고1년은 역사의 자리에 조금씩 자국을 남기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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