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산업 노동자에게는 국가책임일자리가 필요하다

[연속기고③] 배 짓는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국가책임일자리를 말하는 이유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대한민국 조선 1번

부산 영도섬 봉래산 자락 아래 조선소가 있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가장 큰 조선소였던 곳이다. “대한민국 조선 1번”, 최초의 도크가 있던 곳에 세워진 석재조형물의 글귀는 이곳이 한국 조선업의 모태임을 드러낸다.

한진중공업은 1930년대 ‘부산 조선창’이라는 국영기업으로 설립된 한국 조선기술 원조기업이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등 타 조선소 기술인력 대부분이 한진중공업에서 수급됐다. 건조 능력 또한 뛰어났다. ‘멤브레인 형’ 천연액화가스운반선(LNG선), 빙하를 깨고 탐사활동을 지원하는 ‘쇄빙선’, 댐 공법으로 도크보다 더 긴 8,000TEU 컨테이너선을 한국 최초로 건조했다. 당시 한국 기업이 만든 가장 큰 컨테이너선이었다. 특수선 부분에서도 헬기수송함대인 ‘독도함’과 한국에서 제일 큰 군함인 ‘마라도함’을 건조했다. 특히 선체곡직 기술이 월등히 뛰어나 최우수 컨테이너선 건조 조선소 자리를 독차지했던 곳이 바로 한진중공업이다. 한국이 세계 1위 조선강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기술이 기초적 역할을 했다할 것이다.

1960년 후반 정권이 당시 국영기업 대한조선공사, 현재의 한진중공업을 민영화해 자본에 팔아넘길 때, 노동자들은 이에 반대하며 총파업으로 맞섰다. 군부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시절에도 기간산업 매각에 당당하게 저항했던 노동자들이었다. 저항의 결과는 참혹했다. 당시 노조 집행부는 모두 경찰에 연행되었고 핵심간부들은 해고돼 길거리로 내몰렸다.

조남호, 한진그룹 지배체제의 몰락

1989년,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은 헐값에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해 ‘한진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한진중공업은 10년 연속 흑자를 냈고, 조중훈 회장은 아들 조남호에게 그룹을 넘겨줬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지난 2004년 필리핀 수빅에 선박 블록공장을 건설한다며 노동자들에게 설명회를 열고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았고, 2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했다. 그 돈은 모두 부산 영도조선소 노동자의 피와 땀이었다.

2008년 수빅 조선소 첫 선박 명명식에서 조남호 회장은 “기존 통념을 깨고 새롭고 창조적인 큰 사고로 판단해야 한다, 수빅 조선소는 한진중공업이 추구하는 글로벌 경영의 첫 산물이자 결실”이라며 자축의 잔을 들었다. 하지만 환상에 불과했다. 2009년부터 본격화한 조선산업 침체는 한진중공업 유동성 위기를 야기했고, 10년이 지나, 바로 그 재벌총수 2세는 빈 깡통이 돼 돌아왔다.

이런 상황은 예견돼 있었다. 조남호 회장은 수빅 조선소를 건립하자마자 곧바로 조선소 인력을 빼고 건설인력을 투입했다. 집짓는 기술자가 어떻게 갑자기 배를 만들 수 있었겠는가? 배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도 없이, 재벌총수 2세라는 이유 하나로 경영권을 휘두른 조남호 체제의 필연적 몰락이었다.

산업은행이 지배하는 한진중공업, 총수일가 지배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한진중공업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019년 3월 주주총회를 열어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과 이윤희 사장을 해임하고, 전 STX조선해양 사장이었던 이병모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첫 민영화 이후 50여년이 지나, 한진중공업은 다시 국가 소유로 넘어왔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철저히 투자자금 회수에만 골몰했다. 이와 더불어 조남호 회장 밑에서 일하던 핵심 노무관리 인력을 그대로 활용해 노동자들의 저항을 무력화하고자 했다. 조남호 회장 시절 적폐 경영진은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자문을 받아 어용노조를 건설해 놓았다. 산업은행은 그들을 앞세워 금속노조를 더욱 무너뜨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노무관리자들은 기업노조를 동원해 회사 매각에 동조하게 하는 한편, 김진숙 해고노동자 복직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내도록 했다. 

산업은행의 지배는 한진중공업 경영진에게 허울 좋은 명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회사 임원들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해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 잘 해주고 싶어도 산업은행에게 요구를 하기 어렵다’는 변명을 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노동조합을 찾아와 ‘노동조합이 산업은행에 찾아가 임금상승분을 받아 오면 임금을 올려주겠다’는 말도 했다. 산업은행이 지배하는 한진중공업에서는 이런 황당무계한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산업은행이 지배하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경험은 마찬가지로 산업은행이 지배하는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의 경험과 다르지 않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운영하던 국유기업이지만, 낙하산 경영진을 내려보내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배당금만 뽑아 먹다가 실컷 구조조정 한 뒤 현대중공업에 팔아넘기려 한다. 이렇듯 국가가 소유하는 것 자체로 뭔가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한진중공업을 소유한 산업은행은 가장 가혹한 구조조정의 지휘자였고, 동시에 가장 썩어빠진 비리의 온상이었다. 

산업은행이 소유하고 있지만 공기업은 아닌, 그저 구조조정 이후 다시 매각하기 위한 ‘국책은행 소유 사기업’이라는 경영 형태가 낳은 결과다. 경영진은 그냥 세월 보내면서 고액연봉 챙기다 기회가 있으면 한몫 챙겨 회사를 떠나면 된다는 사고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 비리가 속출하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적 운영 리스크가 발생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국가경제에 중요한 기업들이 부실경영으로 도산하면 국가가 나서서 생명줄을 이어준다는 것을 종종 경험했다. 대우조선, 한진중공업 등 수많은 기간산업에 혈세가 투입되고, 그 과정을 통해 실제 국가가 경영권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국가는 이들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공기업으로 만들지 않는다. 심지어 ‘국가 소유 기업’이라고 칭하지도 않는다. 그저 구조조정 후 또 한 번 매각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동부건설이 한진중공업을 사려는 이유

지난 50년, 국가 기간산업을 재벌에 팔아넘긴 결과는 무엇이었나? 총수일가는 배를 불렸고, 노동자들은 해고와 죽음으로 내몰렸다. 재벌 총수일가 경영이 파탄나자, 정부와 산업은행은 다시 ‘조용하게’ 한진중공업을 국유화했다. 그리고 다시 동부건설에 매각하려고 한다.

4월 15일 산업은행 및 8개 은행으로 구성된 한진중공업 주주협의회는 동부건설이 주도하는 컨소시엄과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이제 실사 및 가격조정, 정부 승인을 거쳐 거래가 완료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동부건설은 왜 한진중공업을 인수하려고 할까? 좋은 배를 만들고 싶어서? 아니다. 그저 영도조선소 부지를 매각하거나, 배를 만들던 땅에 아파트나 상가를 짓고 차익을 얻기 위해서일 뿐이다.

이제, 다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국가가 조용하게 한진중공업을 국유화했다 다시 팔아치우려는 지금, 우리는 국유기업 한진중공업을 제대로 통제하고 운영하자고 공개적으로, 시끄럽게 요구해야 한다. 한진중공업을 민간자본에 다시 빼앗겨서는 안 된다.

국가책임일자리와 기간산업 국유화를 요구한다

구조조정에 직면한 노동자들이 싸우기는 쉽지 않다. 사측이 하는 말이 믿겨서가 아니라, 회사가 정말로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들이 실업에 시달리는 이유가 청년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일을 잘 못해서 잘려나가는 것이 아니다. 전체 고용을 늘리지 않고 청년실업을 해소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총수일가의 손아귀 안에서 오직 그들의 이윤을 위해 존재해온 기간산업에 대한 국가적 통제 없이 기간산업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은 불가능하다. 개별 자본이 아니라 산업전체, 국가와 싸워야 한다. 마침 민주노총도 11월 총파업 1번 요구로 “고용위기 기간산업 국유화”를 걸고 있다. 민주노총도, 현장 기간산업 노동자들도 이런 요구가 공문구로 끝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저임금 단시간 일자리만 양산한 탓에, 마치 국가는 ‘공공근로’와 같은 일당제 일자리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아니다. 필자가 누누이 설명한 한진중공업 역사에서 드러나듯이 말이다. 필자가 일하는 한진중공업이건, 대우조선이건, 쌍용차건 산업은행은 어떻게 건 팔 수만 있으면 된다는 식이다. 문제는 ‘새로운 주인’은 불황이 지나고 호황국면이 오거나, 대량해고나 자산매각을 통해 불황국면에서도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만 입찰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들이 입찰에 나서는 이유는 부동산 투기꾼이 법원경매를 기웃거리는 이유와 같다. 대체 언제까지 기간산업이 자본의 이윤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가? 배를 만들어온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국가책임일자리와 기간산업국유화를 요구한다. 또한 이것이 단지 요구에 그치지 않는 큰 싸움으로 발전하기 위해 지역과 현장에서 노력할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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