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복을 단언하기

[레인보우]

  영화 《트랜스젠더의 행복은 진짜다(Trans Happiness is Real)》 스틸컷 [출처: https://www.bfi.org.uk/flare/films/trans-happiness-real]

“트랜스젠더의 행복은 진짜다”

루카는 영국 옥스퍼드에 사는 젊은 트랜스젠더다. 퀸턴 베이커(Quinton Baker) 감독의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트랜스젠더의 행복은 진짜다(Trans Happiness is Real)〉(2020)는 오케스트라 연습실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좇는 것은 루카의 연주가 아니다. 8분 남짓 동안 영화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루카의 모습을 담는다. 스프레이 페인트로 거리 곳곳에 “트랜스젠더의 행복은 진짜다”라는 문구를 새기거나 “연대는 혐오보다 강하다”, “트랜스 자매들과 함께하는 레즈비언” 같은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는 모습이다.

“트랜스젠더의 행복은 진짜다”는 옥스퍼드의 한 트랜스젠더 미술가가 시작한 캠페인 프로젝트다. 그리고 잠시지만 함께 미술을 공부하는 사이였던 루카가 합류해 “널리 알려야 할 것 같은 것들을 소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적어도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가 정말로 행복한지 혹은 행복할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가 비추는 루카의 생활이나 루카가 말하는 트랜스젠더의 삶은 불행에 가깝다. 그는 자살이나 하라고 적힌 스티커와 자주 마주친다. 젊은 트랜스젠더의 40%가 자살을 시도한다는 통계를 읊는다.

그래피티를 새기는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자살이나 하라는 문구부터 성기 그림을 곁들인 원색적인 비난들, 혹은 교묘하게도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깃발 위에 “남성 섹슈얼리티 운동”이라고 적어둔 혐오 세력의 스티커들을 제거하는 일이다. 요컨대 영화가 비추는 루카의 생활은 트랜스젠더는 행복할 수 없다고, 혹은 트랜스젠더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말하는 이 사회에 트랜스젠더의 행복도 진짜로 있다고, 행복할 수 있다고 외치는 것이다.

불행 속에서 행복을 단언하기

“‘트랜스젠더의 행복은 진짜다’라고 나 자신에게 말할 필요가 있었어요. 실제 존재하는 것이고 나도 가질 수 있다고요.” 행복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알지 못하는 행복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순전한 악의로 혐오 표현 스티커를 붙이는 정체 모를 이와 싸우는 삶은 고되지만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이 자신의 작품에 감동했다는,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오면 조금은 힘이 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궁금해한다. “‘트랜스젠더의 행복은 진짜다’라고 적힌 그래피티를 열두 살에 봤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지”를.

  영화 《트랜스젠더의 행복은 진짜다(Trans Happiness is Real)》 스틸컷 [출처: https://www.bfi.org.uk/flare/films/trans-happiness-real]

조금 더 구체적인 행복을 보여주었다면 좋았을까. 예컨대 멋진 공연이나 미술가로서 즐겁게 작업하는 모습, 혹은 친구들과 놀거나 적어도 누군가와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장면 같은. 트랜스젠더가 그저 혐오만을 마주하며 사는 것이 아님을, 그 속에도 어딘가 즐거움이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어느 열두 살 트랜스젠더에게 조금 더 힘을 줄 수 있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일정한 노력과 약간의 운이 있다면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를 행복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이것은 소수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행복을 이야기하는 많은 방식은 종종 사람들을 속인다. 게다가 트랜스젠더도 누릴 수 있을지 모를 어떤 행복과 트랜스젠더의 행복은 아마도 조금 다를 것이다.

영화 속에서 루카는 이따금 어딘가 허전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내내 무거워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다. 행복이란 말을 떠올리기 힘든 표정으로 “트랜스젠더의 행복은 진짜” 라고 몇 번이고 반복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자신과 동료들을 위안하거나 속이는 말은 아닐 것이다. 누려 보지 못한 행복을 단언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이 가능할 조건을 만드는 말이다. 상상하기는 쉽고 갖기는 어려운, 어쩌면 처음부터 가짜인 어떤 행복을 받아들이고 욕망하는 대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어떤 행복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말이다. 혼자가 아닌, 카메라를 들고 그를 좇는 이가 함께, 또한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이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 볼 수 있을 행복의 가능성을 여는 말이다.

“바느질 솜씨가 어설퍼도 상관없어”

문득 2019년에 본 연극,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의 〈빛나는〉을 생각했다. 장애인시설 참사랑재활원의 ‘핑클 4인조’가 시설 관계자들의 감시를 피해 핑클 콘서트에 가기로 한 날의 좌충우돌을 그린 탈시설 이야기다. 이 공연은 시설이 얼마나 끔찍한지 혹은 콘서트에서 맛본 자유가 얼마나 달콤한지에 집중하는 대신 “장애여성이 취약한 존재, 불쌍한 사람, 피해자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을 경계하며 일상에서 시도하는 수많은 ‘일탈’과 ‘저항’의 장면들을 포착”한다. 시설 담장을 넘는 장면은 물론 서로 다투는 장면까지, 흔히 말하는 행복이나 자유와는 다른 것들이 무대 위에서 벌어진다.

하지만 일부에게만 허락되는 행복을 얻어내는 대신 일탈과 저항의 장면들에서 새로운 행복을 찾고 또 만들 수 있다면, 핑클 4인조도, 루카도 이미 어떤 행복을 누리고 있는 셈일 것이다. 물론 지난한 싸움이 그 자체로 즐겁고 행복하기는 쉽지 않다. 여전히 우리는 행복을 모른 채 그저 싸우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누려보지 못한 채 다만 꿈꾸고 열망하는 우리는 행복에 관해서라면 언제까지나 아마추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마추어 같은 비전문성은 우리를 새로운 주제와 도전으로 이끈다. 정해진 전문성을 쫓지 않고 이야기꾼답게 위태롭게 실수인 듯, 실패인 듯 무대를 채워갈 때 온전히 우리의 몸은 자유롭다.”

루카는 작업에서 스프레이 페인트와 함께 직물을 많이 사용한다. 헝겊에다 페인트 스프레이로 (이번에도 역시 “트랜스젠더의 행복은 진짜다”라는) 글을 쓰기도 하고 수를 놓기도 한다. 재봉틀로 헝겊을 꿰매며 그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한다. “제 바느질 솜씨가 어설퍼도 상관없어요. 메시지는 전달해야 하거든요.” 행복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설퍼도 상관없다. 단언할 수 있다면,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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