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농사

[유하네 농담農談] 최고의 환경운동은 자연과 함께하는 농부가 되는 것

  풀과 함께 자라는 참깨 [출처: 이꽃맘]

여름 그리고 풀

뜨겁습니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앉습니다. 헉헉 소리가 절로 납니다. 여름입니다.

소나기 예보도 있고 하늘에 구름도 많기에 밭에 나와 앉았습니다. 잦은 비에 콩이며, 팥이며 생강이며 풀 속에 잠겼습니다. 매년 풀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비닐도 덮지 않고 제초제도 쓰지 않는 밭이라 풀이 거침없이 자라납니다. 올해는 반드시 풀을 다 뽑아버리리라 다짐하고 전쟁까지 선포하지만 “내가 졌소”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봄까지야 망초대, 쇠비름, 개비름, 피 등 키 큰 풀들이 자라 그냥 베어 눕히면 되지만 여름에 등장하는 바랭이 앞에서는 정신을 놓습니다. 마디를 땅에 박고 뿌리를 내려 길게 자라는 바랭이. 바랭이와의 싸움은 필패입니다. 이겨보겠다고 뽑으면 내가 심은 작물 뿌리가 함께 뽑혀 나옵니다.

유하 엄마의 고백

짧은 장마에 이은 폭염에 내가 심은 작물 들이 고개를 숙입니다. 그럴수록 바랭이는 작물을 누르고 더욱 힘차게 뿌리를 내립니다. 이길 수 없는 상대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내가 감히 풀을 어찌 이겨”라며 유하 엄마가 고백을 시작합니다.

“할머니들처럼 풀하나 없는 밭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다 뽑아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뽑지 못해 풀이 밭을 덮으면 저 풀을 언제 뽑나 하는 생각에 풀이 무서워지기까지 했습니다. 그 틈새를 노려 풀은 더 힘차게 자랐고요. 이제 깨달았습니다. 내가 저 풀뿌리들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말입니다. 생각을 바꿔봅니다. 뿌리를 들지 말고 잎만 뜯고 베어 눕히자. 풀과 싸우지 말고 진짜 함께 살아보자고 말입니다.”

유하 엄마가 털어놓은 고백에 앞집 아저씨는 “생각 잘 고쳐먹었다. 못 이긴다” 하십니다. 무거운 예초기를 어깨에 메고 나서는 유하 파파가 웃습니다. “그냥 베어 눕히라니까.” 요즘 풀 베는 맛을 알겠다는 유하 파파는 매일 예초기를 메고 대추밭으로 갑니다.

유하네가 풀과 싸우며 비닐과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이것을 만드는 과정부터 쓰고 버리는 순간까지 얼마나 자연을 힘들게 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유하네는 농사가 최고의 환경운동이라 생각합니다.

지구가 끙끙 앓는다

요즘 이상기후가 이슈입니다. 지구가 죽어 간다고 난리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달걀까지 익어버리는 폭염으로 몸살을 앓습니다. 유럽에서는 갑자기 내린 폭우에 사람이 죽었답니다. 눈이 내리지 않는 사막에 눈이 내리고 추워야 할 나라는 춥지 않다고 합니다.

시골에 살다 보니 지구의 끙끙거림을 더욱 가까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유하네가 원주로 내려와 농사를 시작한 2018년은 가뭄과 폭염이 극성을 부린 해입니다. 가래침만 뱉어도 산다는 들깨도 타 죽을 정도의 가뭄이었습니다. 땅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이듬해인 2019년 겨울에는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따뜻해서 겨울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겨울한파에 죽어야 할 벌레가 죽지 않아 매미나방 애벌레가 블루베리 잎을 다 갉아 먹었습니다. 유하·세하와 나무젓가락을 들고 벌레를 잡았던 기억이 나네요.

2020년에는 기록에 남을 두 달간의 장마와 무시무시한 태풍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이 내린 비에 땅이 물러 고추가 다 넘어가고 이어진 태풍으로 키 큰 해바라기가 다 부러졌습니다. 꿀벌이 날 틈도 없이 비가 내려 꿀벌들이 다 굶어 죽었다는 소식도 기억합니다.

올해는 장마가 짧아도 너무 짧습니다. 봄과 초여름까지는 시도 때도 없이 폭우가 내려 흙이 다 쓸려 내려가고 심어놓은 들깨가 누워서 자랍니다. 짧은 장마와 폭염에 유하 파파는 해가 질 때 즈음 호스를 들고 들깨에 물을 줍니다. 주변 분들이 “이제 하늘에 기대어 농사를 짓기 어려운 거 아니냐, 비닐하우스라도 하나 지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걱정하십니다. 요즘은 대추나무도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우니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마지막 노지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유하네는 꿋꿋이 하늘 농사를 짓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편리함과 효율성이 지구를 끙끙 앓게 만들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탄소를 내뿜는 농사

텔레비전에서 어떤 청년 농부가 억대 부자가 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닐하우스에 토마토를 가득 키우는 농부였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풀 하나 찾아보기 힘듭니다. 길에는 콘크리트를 깔고 물에 토마토를 꽂아 키웁니다. 빨갛고 커다란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려 좋다고 했지만 유하네는 흙 한 줌,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비닐하우스가 무섭게 느껴집니다.

탄소배출의 주범이 공장식 축산이라며 채식이 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트에 진열돼있는 대부분의 채소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탄소를 팍팍 배출하며 자란 것이라는 얘기는 없습니다. 사계절 내내 신선한 채소를 키워내기 위해 탄소 덩어리 비닐을 수없이 써야 하고,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써야 한다는 것. 빠른 성장을 위해 뿌리를 화학비료 푼 물에 담가 키운다는 것. 공장식 축산 못지않게 채소도 공장식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부가 내놓는 농업정책이라는 것이 채소 공장을 늘리는 것밖에 없는 현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농업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의 먹거리를 위해 지구를 희생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도 기후 위기 뉴스가 나옵니다. 춥기로 유명한 시베리아에 폭염이 찾아오고, 대기 건조로 산불이 났다는 소식입니다. 150년 중 가장 건조하고 더운 날이 이어지며 얼음이 녹고 수증기가 많아져 마른벼락이 떨어진답니다. 결국 서울의 10배가 넘는 산림이 탔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단단하고 매운 양파

올해 유하네는 처음으로 양파를 수확했습니다. 비닐 대신 지푸라기를 깔아 겨울을 보내고 팍팍 올라오는 풀을 낫으로 베며 하늘에 기대 키운 양파입니다. “이런 양파 오랜만에 만나요.”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유하의 숙모가 칭찬합니다. 오랜만에 양파를 썰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단단하고 매운 양파를 살짝 구우니 단맛이 확 돌아 이제 막 돌이 지난 쌍둥이들도 잘 먹는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 맛에 농사를 짓습니다. 이 맛에 하늘에 기대 농사를 짓습니다. 이 맛에 지구와 어울리며 영원히 가능할 농사를 꿈꿉니다. 이 맛에 오늘도 뜨거운 태양에 짜증을 살짝 내며 밭에 앉아 풀을 베어 눕힙니다.
  동글동글 단단한 양파 [출처: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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