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성과 급진성

《워커스》와 디자인

  일상의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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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을 시작하며 우리는 사회적 실천의 목소리를 담아 자체 작업을 진행했다. 그 작업들을 통해 ‘일상의실천’이라는 이름의 구체성을 정립할 수 있었고,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성을 디자인을 통한 운동이라는 실천적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매년 지속됐던 그 작업들은 작업의 주제뿐만 아니라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도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범주의 확장을 모색할 수 있었던 시도였다. 

용산 지역 재개발의 비극,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립, 세월호 참사,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박근혜 게이트 등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시대의 아픔과 갈등을 주로 담아냈던 그 작업들은 필연적으로 사회,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는데,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가 자체적으로 내는 목소리는 메시지의 확장성에 있어서 분명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디자인이 가진 가장 강력한 특성인, 사회 구성원 사이 시각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좀 더 보편적인 사회운동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메시지의 확장에 더욱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사회적 함의를 담아 세상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는 단체와의 협업은 그렇게 시작됐고, 인권, 환경, 구호, 아동, 젠더, 노동 단체와의 작업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의 작업을 통해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슈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시각화하는 과정을 통해 그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는 시각 언어를 습득하고 세상에 내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비영리단체와의 협업은 생각처럼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그들 스스로 만들어놓은 시각 이미지를 대하는 관습의 벽은 생각보다 두꺼웠고, 그 벽을 깨는 과정에서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는 갈등을 겪는 일도 빈번했다. 투쟁이라는 문구가 쓰인 머리띠와 조끼를 입고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가 등장하는 노조 홍보물, 머리를 짧게 자르고 피어싱과 문신을 한 탈코르셋 여성이 등장하는 여성 단체의 포스터,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군중의 모습을 담은 인권 단체의 책자 등 우리는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전형적인 이미지 속에서 각자의 고유성을 잃어가는 그들의 목소리에, 그 소리의 내용이 담고 있는 주제에 맞는 색과 형태를 부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사회의 고정관념을 전복하려는 그들의 정치, 사회적 급진성과는 달리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는 신기할 정도로 보수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관습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어떻게든 관습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모순적인 태도는 사람들이 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가를 알 수 있는 역설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될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급진적인 사고였고, 우리에게는 평범한 디자인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급진적인 변화였다.

그런 이유로 《워커스》와의 지난 7년간의 작업은 사회의 변혁을 외치는 ‘급진적 목소리’에 기성의 질서를 벗어나는 ‘급진적인 디자인’이라는 꼭 맞는 옷을 입힐 수 있었던 매우 이례적이고 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중적인 디자인’이라는 실체 없는 유령과 매 순간 싸워야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워커스》는 작업의 즐거움을 환기해주었던 놀이터이자, 스스로 규정한 표현의 한계를 극복해내야만 했던 시험지이기도 했다.

디자인되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것은, 각각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지닌 구체성을 드러내 입체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눈에 익은 익숙한 이미지를 뒤집어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불편한 과정을 동반한다. 그 불편한 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디자이너는 이야기에 적합한 옷을 상상해낼 수 있다. 그 과정이 때로 나에게 급진적인 변화로 느껴질지라도, 세상을 향한 나의 (급진적인) 목소리와 나를 향한 (급진적인) 변화의 제안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가진 급진성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과의 작업은 언제나 새롭고 근사한 결과를 만들어내곤 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의 급진성이 서로에게 건강한 자극으로 이어지기를, 《워커스》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디자인을 통해 근사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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