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 기후정의파업의 의미와 전망

[이슈] ‘반자본’ 드러난 급진적 요구, 강화된 당사자 중심성, 서울을 탈피하는 지역의 반란


어찌 보면 414 기후정의파업은 처음부터 조금은 무리스러운 기획이었다. 3만 명 이상이 운집했던 924 기후정의행진 이후의 계획이 제시되지 못하는 상황, 1월 발표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무책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 러시아 침공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속에서 전기/가스 요금이 갑절로 오른 현실, 또한 에너지와 교통, 의료 등 모든 영역에서 진행된 민영화의 물결을 마주하면서 남은 것은 절박함이었다. 보다 급진적인 요구를 전면에 내세운 채 서울이 아니라 정부 부처들이 모여 있는 세종시에서, 그것도 주말이 아닌 평일 ‘기후정의파업’이라는 기획이 제안됐던 것도 이 절박함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414 조직위는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이 기업들에 있으며 에너지 위기의 비용이 일반 서민들에게 전가돼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고 이 때문에 이전까지 기후환경 단체들이 요구해왔던 에너지 요금 ‘현실화’ 혹은 ‘정상화’ 대신 ‘요금 인상 철회’를 첫째 요구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고 급기야 몇몇 단체가 조직위에서 탈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모두가 기후위기의 절박함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이 절박함이 어떤 행동으로 표출돼야 할지 합의를 이루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평일의 집회는 많은 이들에게 현실적 부담을 안겼고, 세종에서 열리는 집회에 서울과 수도권의 참여가 제약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414 기후정의파업을 3주가량 앞둔 지금 이 순간, 준비는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다. 사회공공성 강화를 통한 정의로운 전환과 자본의 이윤을 위한 생태학살을 멈추라는 2대 방향에 걸맞게 석탄발전 노동자들이 조직화에 앞장서고 있고, 전국 각지의 토건개발 사업이 만든 생태학살의 현장에서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도 증폭되고 있다. 지역의 생활협동조합에서부터 청소년, 소수자, 농민, 종교 모임들까지 참여가 늘면서 조직위 참여 단체는 350여 개를 돌파했다. ‘대중교통 공공성 강화로 기후위기 대응하자’는 버스 노동자들의 기후정의파업 참가선언문을 필두로 다양한 참가 단위들의 참가선언문도 준비되고 있다.

414 기후정의파업, 더욱 선명해진 요구와 커진 당사자성

온전한 평가와 전망은 414 당일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준비 과정을 통해서도 눈여겨볼 점들, 또한 이후 전망과 관련해 생각해봐야 할 점들은 드러나고 있다.

첫 번째는 요구의 선명성, 급진성이다. 924 기후정의행진 당시 조직위는 화석연료와 생명파괴 체제 종식, 불평등 끝내기, 기후위기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3대 요구안을 내걸었다. 이는 위정자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 혹은 위탁했던 2019년 기후행동의 요구보다는 진일보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후정의의 원칙을 천명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정세적인 요구를 구체화하는 데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개별 발언자들을 따라 많은 참여자들이 ‘체제전환’이나 ‘자본주의 타파’와 같은 구호를 외치기는 했지만, 조직위 안에서는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논쟁이 될 만한 요구는 피해 가며 기후위기가 가져올 재난 상황에 호소하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출처: 워커스 자료 사진]

그러나 414 기후정의파업은 달랐다. 조직위는 처음부터 ‘반자본 대정부 투쟁’이라는 기치 아래 반자본, 사회공공성 강화와 생태파괴를 대가로 자본을 위한 각종 난개발에 반대한다는 요구를 선명하게 내세웠다. 또한 기후운동 일부에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이기도 하는 재생에너지 확대도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부문의 주도성에 반대하면서 민간 에너지 기업의 초과이윤 환수와 공공주도 재생에너지 전환을 요구로 내걸었다. 에너지 요금 인상 철회 요구도 에너지 소비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많은 서민에게는 필수재일 수밖에 없는 가정용 에너지가 아니라 이윤 추구라는 사적 목적을 위한 산업계의 에너지 소비를 공공의 힘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처럼 급진적 요구를 정식화하는 것은 분명 리스크가 따르는 일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봤을 때 모두에게 쉽게 수용되지 않을지라도 요구와 행동의 급진화는 중장기적으로 사회운동에 이로움을 준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들이 상상력의 범위를 확장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지속됐던 전장연의 처절한 투쟁과 요구, 2015년을 전후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터져 나온 다양한 요구들, 그리고 보다 최근에 등장한 동물권 운동의 낯선 주장은 처음에는 당혹감과 저항감을 자아냈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인식 지평과 상상력은 그만큼 넓어졌다.

또한 어느 중간 지점에서 타협이 된다 해도 담론과 상상력의 공간이 확장됐을 경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많아지게 된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입에서 탐욕에 젖은 화석연료 기업들과 거짓말을 일삼는 세계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말이 나오는 것도, 명목적인 수준이지만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손실과 피해’와 같이 기후위기 책임의 문제를 다루는 의제가 합의될 수 있었던 것도, 변방에서 시작된 국제 기후정의운동의—처음에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급진적이었을—요구와 투쟁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겐 당혹스럽고 불편할 수 있었던 급진적 요구와 행동들이 있었기에 한국 기후정의운동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출처: 워커스 자료 사진]

둘째, 보다 강화된 당사자 중심성이다. 414 기후정의파업의 요구가 더 뾰족한 요구안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다소 왼편에 있는 단체들의 참여가 많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급진적 요구에 기반한 대중 운동은 이념적 지향만으로 가능하진 않다. 다양한 주체들이 414 기후정의파업을 결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산업 전환 과정에서 배제된 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싸워왔던 발전과 금속 노동자들, 공공 서비스의 후퇴에 저항해왔던 공공부문 노동자들, 이윤의 논리로 먹거리 생산현장과 공동체가 참담하게 파괴되는 것에 저항해왔던 농민들,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핵발전소나 고압 송전탑에 맞섰던 주민들, ‘아름다운 것을 본 죄’로 수라갯벌과 비자림로, 가덕도 등에서의 생태학살에 맞서 어려운 싸움을 벌여왔던 활동가와 주민 등 생명과 인권 파괴의 현장에서 투쟁해왔던 기후위기 당사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만나고 다양한 요구가 모이는 과정은 탐욕적 자본주의 체제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자본주의는 기후위기를 비롯한 모든 사회적 생태적 해악의 근원의 되며 자연, 인간, 그 무엇이든 이윤의 수단으로 삼는다. 투쟁하는 민중 당사자들의 요구는 중산층을 주된 타깃으로 삼아왔던 기존 환경단체들의 요구와 어느 정도 차이를 노정했다. 그렇기에 이전까지 기후운동을 이끌었던 대형 시민/환경단체들은 참여를 저어했고, 924에 비해 규모도 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414 기후정의파업은 전문가가 주도하는 중산층 중심의 기후환경운동에서 노동자 민중 당사자 중심의 기후정의운동으로 변화하는 진전된 현실을 반영한다. 이는 북반구 백인 중심의 기후운동에서 유색의 남반구 당사자들이 주도하는 기후정의운동으로 변화해왔던 국제적 흐름과도 일맥상통한다.

세 번째로는 414 기후정의파업을 세종시에서 개최하는 의미다. 414 조직위는 개최지 선정의 이유로 세종시가 누가 정권을 잡는지와 무관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 관료체계의 심장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세종에서 개최되는 기후정의파업은 사회운동의 서울 중심주의를 탈피하기 위한 실험이기도 하다. 실제 조직위에 가담한 집행위원들의 대부분은 충청남북도와 세종, 대전에 기반을 둔 활동가들이다. 조직위 출범 당시부터 3,000명을 목표로 하는 참여 인원의 대부분도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 충원될 계획이다. 고립된 채 외롭게 활동해왔던 지역의 단체와 활동가들의 현실을 감안하면 무모할 수도 있는 실험이다.

그러나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거의 전적으로 담당하는 홍보팀은 924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고 있고,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종과 대전을 중심으로 지역 단체들의 조금씩 꿈틀거리는 기운이 느껴진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소속 26개 지회가 모두 조직위에 참여를 결의하는 등 지역 노동조합의 관심도 커지고 있고, 청주의 ‘페미니즘과 기후정의’ 집담회를 비롯해 414를 준비하는 지역 소모임들의 자발적 행사도 눈에 띈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충청 인근 전북과 강원에서도 설명회나 간담회가 진행됐고 이제 본격적으로 영호남 지역의 조직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역의 움직임을 과장해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지역에서 주최한다고 지역의 운동 역량이 갑자기 커지는 것도 아니고, 집행위에 참여한 지역 활동가들의 온도와 지역 단체나 모임 구성원의 온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견고한 서울 중심주의의 폐해는 깊고 변화는 잔잔한 물결처럼 더딘 법이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개최되고 지역 역량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준비되는 기후정의파업을 주목하는 이유는 지역의 희생에 기반한 서울 중심의 불평등 체제에서 투쟁 현장도 지역에 집중되기 때문이자 향후 기후정의운동의 전진도 상당 부분 지역 기후정의운동의 활성화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요금 둘러싼 논쟁을 운동의 발전적 방향으로

마지막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에너지 요금을 둘러싼 논쟁의 조직적 여파다. 2021년 탄중위를 둘러싼 갈등 이후 가장 큰 쟁점으로 부상한 이 논쟁은 기후위기의 원인과 책임의 문제를 둘러싼, 또한 ‘기후정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논쟁을 통해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운동의 발전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영향력을 가진 환경단체들이 탈퇴하거나 참여를 보류하면서 차이 속에서도 지금껏 함께 힘을 모아왔던 한국 기후운동이 분절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도 적지 않다.

기후운동이 끊임없이 분화되는 현실에서 모두가 항상 같은 우산 아래 모이기는 어려울 것이고 논쟁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기후운동에서 서로 완전히 등을 돌리는 일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한편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의 절박성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앞서 살펴봤듯 이런 논쟁과 갈등을 통해 운동의 표준치도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414 기후정의파업을 이끌었던 측에서는 보다 설득력 있는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 및 해법 제시, 그리고 이에 따라 기후(정의)운동 전반을 끌고 갈 수 있는 조직적 역량 확보가 과제로 남는데, 9월에 있을 대규모 기후정의행동이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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