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미안하구려, 부인!
2002년 들어와서 현장 활동이다. 대의원활동이다.”하면서 잦은 모임에 귀가가 늦어지는 터에 2002년 임금인상 교섭위원이 되면서“야간당직이다. 교섭준비다”하여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생기고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러한 생활을 이해하는 아내였지만 요사이 무척 신경이 날카로운 모양이다. 거기에는 지나친 음주와 흡연으로 건강이 안 좋다는 건강진단 때문에 아내의 잔소리가 많은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날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당직근무를 하고 다음 날 저녁 7시쯤에 귀가한다고 전화를 해 놓고 보니 저녁 6시부터 “ERP 대책위원회”회의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ERP 회의에 참석하면서 깜박하고 아내에게 귀가가 늦어진다는 전화를 잊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평소 전화를 잘 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리고 ERP 회의를 마치고 ERP 멤버끼리 저녁식사나 먹자는 소리에 아무 생각 없이 “응”하고 난후 아내에게 전화를 준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뿔싸! 시계를 보니 저녁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순간 재빨리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미안해. 모임이 있어서 깜박 잊고 전화를 못해서, 그리고 모임회원끼리 저녁식사하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저녁식사하고 10시 조금 넘어서 들어갈게”하고 말을 건네자 갑자기 전화기에서 불같은 소리가 들려왔다.“자기 마음대로 해”아내의 신경질적인 말을 듣는 순간 집에 무슨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뻔 듯 들었다. 나는 몸을 번개같이 차에 실었고 ERP 멤버 한명에게 전화를 걸어“먼저 집에 갈께”하면서 집으로 총알같이 달려갔다.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자 아내는“일찍 귀가 하시는군요”하면서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미안해, 집에 무슨 일 있어”하면서 고개를 숙이자
아내는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로“저녁식사하고 온다면서”
“응, 저녁식사 못해서”
“그럼, 피곤할 텐데 샤워하고 나와”
아무 말 못하고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 아내는 나를 더욱 미안하게 만들었다.
바로! 저녁상에 삼계탕이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랬구나! 아내는 저녁 7시에 귀가한다는 말을 듣고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삼계탕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는데 그런 아내의 마음도 모르고 전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행동한 자신이 미울 뿐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내의 혼쭐에 이틀을 넘어 오늘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이들의 방에 잠시 들렸다. 아이들은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너희한테도 미안하구나! 그러나 딸, 아들아! 너희들이 사는 세상은 아빠가 사는 이 땅보다 좋아야 하지 않겠니. 너희들을 보지 못하는 시간만큼 좋은 세상이 하루 빨리 다가올 수 있다고 믿고 싶구나? 밝은 꿈꾸어라”하고 인사를 나눈 후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미안해. 생활비도 충분히 벌어주지도 못하면서 ….”
그리고 가슴속으로 아주 크게 외쳤다.
“이 모든 것은 자본, 너희들이 만들고 있다”
한라공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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