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폭격’ 죽어가는 아이들

“검게 그을린 차에는 어머니와 어린 세 아이의 불에 탄 몸뚱이만 남아 있었다. 찢겨진 손은 문에 걸려 있고, 피가 흥건하게 길바닥에 흘렀다. 머리는 저만큼 나동그라져 있었다.”

모래폭풍이 불어닥친 25일 오전(현지시각)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시아파 서민들이 주로 사는 아부 탈레브 거리에 미군 전폭기가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한 직후 현장을 찾은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특파원 로버트 피스크는 경악했다.
첨단기술로 목표물을 타격하는 ‘눈먼’ 폭탄은 군인과 민간인, 어른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는다. 27일로 여드레째 이어진 미군과 영국군의 대폭격 앞에 특히 어린이들은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대통령궁 같은 주요 시설에서 멀지 않은 가난한 사람들의 집도 폭격의 과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국이 효과를 호언장담했던 ‘충격과 공포’의 대공습으로 지금까지 350여명이 숨지고 3600명 가량이 다쳤으며, 그 대부분이 어린이와 여성·노인이라는 게 이라크 쪽 집계다. 죽음과 부상의 공포말고도 시시때때로 땅을 뒤흔드는 엄청난 폭발음과 섬광 때문에 바그다드의 어린이들은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현지의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직원이 전했다.
일주일째 식수가 40%만 공급되는 인구 130만명의 남부 최대도시 바스라는 더욱 위태롭다. 영국군의 폭격 직후 거리에 나선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존 필저는 “곳곳에 어린이들의 주검이 널려 있다”며 이 도시를 포위한 영국군에겐 ‘수치의 날’이라며 분노를 터뜨렸다. 다섯살 미만 10만여 어린이가 죽음의 위협 앞에 놓여 있다고 유니세프는 경고한다. 티그리스강에서 끌어올린 물에는 소금기가 섞여 있고, 단전으로 의료시설의 위생 상태도 악화했다. 한낮이면 기온이 섭씨 40도 가까이 올라 이달 초 75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수열 같은 풍토병이 창궐할 가능성도 높다고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밝혔다.
1991년 걸프전 때 전장이었던 이 도시의 남쪽에서 불어오는 먼지바람은 ‘죽음의 씨앗’을 품은 채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바스라의 한 의사는 당시 미·영군이 쐈던 열화우라늄탄과 관련이 있는 듯 전에 없던 암 탓에 숨지는 어린이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50만여명이 사는 중부 나자프·카르발라, 남부 나시리야 등 격전지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에는 30만~45만명의 피난민 가운데 10%가 산속 동굴 등에서 일주일 넘게 지내고 있다. 폭격을 피하려 모술·키르쿠크 등 도시를 떠난 이들은 추위와 나쁜 위생환경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현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직원이 전했다.
침공 직전 유니세프의 이라크 보고서를 보면, 2400만 인구의 절반이 유엔에서 어린이로 규정하는 18살 미만이며, 이들 8명 가운데 1명꼴로 다섯살이 못 돼 숨진다. 또 다섯살 미만 어린이 넷 가운데 1명이 영양부족 상태이며, 갓난아이의 24.7%가 정상 몸무게에 못 미친다. 걸프전과 12년 동안의 경제제재가 남긴 상처라고 유니세프는 분석했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미·영군의 침공이 빚어내는 참화가 이라크의 어린 생명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수범 기자, 외신종합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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