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호 4면] 만도노동조합의 역사(11)

만도노동조합의 역사[11]

어수선한 분위기속의 임,단투 교섭과 사측의 신경영전략의 강화

96년 임금과 보충협약은 캄코지부의 분리문제와 전자공장의 이전문제로 어수선하게 시작되고 사측은 조합의 이러한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공격적인 신경영전략(비젼2000)을 노골화하며 현장을 분리시키기 위한 작업을 시도한다. 96년 3월22일 노동조합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임금인상안, 사회개혁 요구안, 보충협약안, 상급단체 가입건을 확정짓고 26일 회사에 노동조합의 요구안을 발송했으나 회사는 대화도 시작하기전에 단체협약 제98조 1항(법령의 개정 또는 중대한 경제,사회적 여건의 변화로 불가피하게 협약을 수정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의 이유를 들어 보충협약은 할 수 없다며 교섭거부의 입장을 조합에 통보해와 조합원들을 처음부터 분노케한다. 한편 조합 내부의 문제로 청원지부가 조합원 간담회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독립운영을 요구해오고 조합은 일단 청원지부의 요구를 대의원대회의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했는데 이와는 별도로 청원군청에서는 청원지부에 대해서 노동조합 설립에 대한 인가증을 일방적으로 발급 해 준것으로 확인돼 그 당시 현행법상 복수노조 불가에 대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노동조합에서는 이에대한 진상 및 세부조사에 착수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의원 대회에서 본조 이전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이 되었는데 규약 "본조
의 주된 사무실은 대전근교로 둔다"상 함부로 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안양지부의 이전관계로 어수선하고 조합원들의 현격한 인원저하로 투쟁의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이유를들어 임,단투 기간만 한시적으로 아산지부로 이전하게 되고 본조의 완전한 이전문제는 차후의 대의원대회때 확정하는것으로 정되된다. 그리고 회사는 95년 비젼선포식(잠실 역도경기장을 빌려 주병진, 송창식 등을 초빙한 초호화판 놀음)을 가진후 줄곧 선전작업을 진행해오다가 임,단투를 앞두고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추진의 해로 정하고 조직을 개편하는 등 구체적인 도발행위를 감행한다. 사측이 추진하는 신경영전략은 장기적인 공격적 경영형태의 본격화인데 주된 목적은 노동조합의 무력화, 노동강도의 강화, 정규직 인원감원등을 골자로 한 것이다. 지금의 비정규직 양산과 정규직 축소등은 그 당시부터 꾸준히 진행해 온 결과라 볼 수 있다.

지루한 교섭과 관리직의 현장투입 본격화 그리고 구속에 따른 재투쟁의 배치
처음부터 난항으로 시작한 임,단투 교섭은 사측의 교묘한 지연 전술로 인해 80일간에 걸쳐서 진행된다 4월12일에 시작한 첫 교섭은 임금인상분에 대해서는 주2회(화,금요일)로 교섭원칙을 하기로 하고 보충협약은 회사의 말장난에 의해 차기교섭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첫 교섭때부터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교섭위원들의 힘을 북돋워주고 사측에 힘의 우위를 갖기위해 교섭장으로 이동하는 통로에 줄지어서서 노동가등을 부르고 함성을 지르며 투쟁의 당위성을 부각시킨다. 사측의 교섭지연으로 인해 겨우 제5차 교섭에서야 비로소 조합의 요구안을 설명 할 수 있었고 노동조합은 7차교섭때 사측의 비젼2000의 허구를 설명하며 보충협약을 통한 고용안정의 명문화를 유도하게 된다. 이 후에도 사측은 교섭지연을 통해 조합원들을 분리시키기 위한 작업을 시도하고 노동조합은 급기야 5월 30일 더 이상 참지못하고 임시대의원 대회를 열어 대의원 100%의 찬성으로 쟁의발생을 결의하였고 중앙대책위는 중앙쟁대위로 전환한다. 한편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현수막을 사측의 모 상무가 몰래 철거하였다가 조합원들이 거세게 반박하자 철거하였던 그 자리에 갖다놓는 등 본격적인 사측의 도발이 시작된다. 96년 임,단투때는 회사는 관리직 노동자들을 앞세워 생산의 현장을 잠식하는 아주 중요한 부당노동행위를 노골화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당시 안양공장의 총무부 모 이사는 중학교에 다니는 자기 딸까지도 방과후에 생산현장에 투입해서 일을 시키는 몰상식한 행
위를 자행하고 또 평택에서는 노동조합 간부들과 관리사원간의 충돌로 인해 반목의 골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96임투는 조합과 회사의 전면적인 투쟁으로 치달았고 약 80일간의 교섭은 21차 교섭에 가서야 기본급 89,000원. 상여금 O/T 5시간 추가. 보충협약 인사제도개선협의회 노,사 각 5인으로 하는것을 골자로 합의점에 도달하게 되고 6월28일 조인식으로 종결된다.

한편 사측은 노,사간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합의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복진길안양지부장과 김기성평택지부장을 구속시킨다. 안양지부장은 조합원이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간 사이 안양공장의 지하주차장에서 경찰놈이 강제연행해 가고 평택지부장은 96단체교섭 투쟁 속에서 사측이 고소고발한 내용으로 구속된다. 이에 노동조합은 즉각적으로 기만적인 사측의 태도에 재투쟁을 선언하고 조퇴를 통한 면회투쟁을 전개하고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는등 야만적인 행위를 규탄하는 투쟁을 시작한다. 안양과 평택의 조합원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었던 투쟁은 곧 익산과 아산 문막 그리고 경주지부로 들불처럼 퍼져 순식간에 확산되고 급기야 자동차연맹에서는 7월 3일 노동부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으며, 7월 5일 대치동의 한라그룹 사옥에서 항의집회를 갖는등 강력한 투쟁을 전개한다. 대치동 항의 집회에는 약 700명의 조합원이 참석하였는데 조합원들의 투쟁에 놀란 정몽원 부회장을 비롯한 책임있는 그룹 간부들이 도망을 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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