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이후 끈질긴 '어용반대투쟁' 결실
한일병원 김시자 열사 분신 아픔 속 꾸준한 '노민추' 활동
삼중간선제 위헌판결·전력민영화 직권조인 거치며 급물살
우리나라 노조설립 1호는 전국전력노조(위원장 오경호)다. 사상 처음으로 신고필증을 받아 56년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전력노조는 그러나 철도노조와 함께 수십년 동안 '어용노조'의 대명사였다. 악명 높은 3중간선제를 통해 노조임원을 선출, 조합원들의 가장 기본적인 노조활동 참여를 원천적으로 막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50년 넘게 장수하던 어용노조에도 지난 90년대초부터 '민주화'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94년 1월 최태일 당시 집행부가 전국에서 최초로 임금억제선인 3%인상에 합의하고,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임원 13명의 정년을 연장하자 조합원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한전노조민주화추진위 한안숙씨는 이에 대해 "당시 한국노총의 임금가이드라인 5%는 고사하고, 회사쪽의 일방적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특정인의 정년연장을 보장받았다는 걸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울산화력지부는 규탄성명서를 전국에 전송했고 며칠 뒤 영등포에 있는 노조사무실 점거투쟁을 벌였다. 이 농성에는 33일 동안 23개 지부, 분회 위원장들이 농성에 결합했고, 그 해 2월4일 드물게 조합원 1천5백여명이 집회를 열기도 했으나 큰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위기에 닥친 최태일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지난 81년 전두환정권이 일방적으로 삭감한 퇴직금 환원투쟁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9월에 한다던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갑자기 취소했다가 두 달 뒤 '찬반투표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놓고 찬반투표를 벌이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투표 결과 '찬반투표를 해야한다'는 데 98%가 압도적으로 지지하자 11월5일 1만여명 규모의 전력인 총궐기대회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당일 아침에 갑자기 취소돼 이에 분노한 울산화력 조합원 50여명이 본사항의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96년 1월12일에는 김시자 전력노조 한일병원지부 위원장이 노조민주화를 요구하며 분신을 감행,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다음날 새벽 숨져 노동계에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최태일 집행부는 이에 앞서 열린 중앙위에서 김 위원장과 당시 오경호 광주전력지부 위원장(현 전력노조 위원장)을 '규약위반'을 이유로 징계에 올린 바 있으며, 김 위원장은 "양심대로 생활하는 조합원은 행동을 보여주기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분신대책위가 구성됐고, 출범한지 두 달된 민주노총도 이 투쟁에 적극 결합했다. 그러나 회사쪽은 1월21일 새벽 조합원들의 참가를 막은 채 일방적으로 장례식을 치러버렸다. 분신대책위는 민주노총의 제안에 따라 노민추로 전환됐고 조합원들에게 3중간선제 폐지 촉구 등 꾸준한 노조민주화 활동을 펼쳤다.
한편 지난해 1월14일 대법원의 3중간선제 위헌판결로 노조민주화에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전력노조 직선제추진위가 결성돼 조합원들한테 서명을 받고 직선제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권원표 당시 위원장이 사퇴하고, 현 오경호 현 위원장이 남은 임기를 맡게 됐다.
오경호 위원장이 오랫동안 나름대로 노조민주화 운동을 벌여왔다는 점에 비춰 노조민주화는 급물살을 타는 듯 했으나 그는 12월3일 전력민영화에 직권조인하고 말았다. 오 위원장은 그 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노사협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았다. 발전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오 위원장이 직선제로 규약을 바꾸는 등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직권조인을 하는 바람에 조합원들에게 쓰라린 배신감을 안겨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전력노조민주화투쟁연대가 올 1월 결성돼 오위원장 불신임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나 회사쪽의 방해공작으로 목표달성에는 실패했다. 결국 지난 4월2일 5개 화력부문과 1개 수력원자력부문이 민영화 전단계 조치로 전력에서 분리됐다. 이어 4월말 조합원들은 90% 이상이 '전력노조 잔류'가 아닌 '분리 후 노조설립'에 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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